▲ 정상영 회장 | ||
현대그룹 고위 관계자의 말이다. 이 말 속에는 그동안 현대그룹 경영권을 둘러싸고 일어났던 문제에 대한 복잡한 심정이 담겨 있는 듯했다.
국내 기업들의 주총이 한 달여 앞으로 다가왔다. 올해 주총의 최대 하이라이트로 손꼽히고 있는 곳은 고 정몽헌 회장이 이끌던 현대그룹의 경영권 향배를 결정짓는 현대엘리베이터.
지난해부터 시작된 현대그룹의 경영권 다툼은 주총 날짜가 한 달 앞으로 다가오면서 막바지로 치닫고 있다. 특히 정상영-현정은 회장의 경영권 다툼이 연일 계속되고 있지만, 사실상 이 문제는 외부인들에 의해 결정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 ‘범 현대가의 진위를 파악하라’, ‘오는 11일 증권선물위원회의 결정에 주목하라’는 등의 말이 나오는 것도 이 같은 이유 때문.
이런 와중에 최근 현대엘리베이터의 지분과는 상관이 없는 여성단체까지 목소리를 높이고 나서 관심을 끌고 있다.
최근 강기원 여성경영자총협회 회장, 변주선 세계걸스카우트 아태지역 의장, 김효선 여성신문사 대표 등 여성계 인사 1백여 명이 모여 ‘현정은을 지키는 여성들의 모임’ 결성식을 가진 것.
결국 현대그룹의 경영권 문제는 정상영 KCC명예회장이나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보다 ‘외부인’의 입김이 더 강하게 작용하는 묘한 상황이 벌어지게 됐다.
이렇게 되자 양측에서는 ‘외부 관계자’들을 한 명이라도 더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분위기다.
현대 관계자는 “솔직히 현대엘리베이터의 주식을 보유하고 있거나 관계가 있는 사람이라고만 하면 누구든 붙잡고 싶은 심정이다. 하지만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도 있고…”라며 답답한 속내를 드러냈다.
▲ 현정은 회장 | ||
현재 지분 비율은 정상영 회장측이 가장 높다. KCC그룹 14.46%, KCC의 계열사인 금강종합건설 1.66%, 정 명예회장이 단독 사모펀드를 통해 사들인 12.81%와, KCC측 계열사들이 뮤추얼펀드를 통해 매입한 7.82% 등 총 36.75%다.
현 회장측은 모친인 김문희씨 19.4%, 현대증권 4.98%, 현정은 회장 3.37%, 현대엘리베이터 자사주 1.75%, 부친인 현영원씨 0.5%, 현 회장의 팬임을 자처하고 나선 하늘교육 0.36% 등 총 30.36%다.
그러나 이외에도 흩어진 지분이 많다. ‘범 현대가’로 분류되는 사람은 고 정주영 회장의 동생인 정순영 성우그룹 회장, 여동생 정희영씨의 남편인 김영주 명예회장과 고 정몽헌 회장의 형인 정몽근 현대백화점 회장, 동생 정몽준 현대중공업 고문 등 네 명. 이들이 보유하고 있는 현대엘리베이터 지분은 15.4%에 달한다.
정순영 성우그룹 회장의 현대종합금속이 5.02%, 김영주 명예회장이 이끄는 한국프랜지공업이 2.74%, 울산화학 이2.54%를 보유하고 있다. 정몽근 현대백화점 회장은 현대백화점을 통해 0.07%, 현대백화점H&S를 통해 1.44%, 현대지네트를 통해 1.44%를 갖고 있고, 정몽준 현대중공업 고문이 회사 명의로 2.14%를 보유중이다.
▲ 현대엘리베이터 지분 2.14%를 보유하고 있는 정몽준 현대중공업 고문. 그는 형수와 숙부 중 누구 편을 들까. | ||
그러나 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약간 차이가 있다.
KCC는 이들이 자신들의 편에 서주지 않을까 내심 기대하는 한편, 현대그룹측은 중립선언을 기대하고 있다. KCC 관계자는 “우리가 그룹 경영권을 확보하려는 이유도 바로 ‘현대’의 명맥을 이어가기 위함이다”며 범 현대가의 지원을 바라는 눈치.
반면 현대그룹 관계자는 “그분들 역시 무척 곤란한 상황 아니겠느냐”며 “주총에서 중립을 유지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현 회장이 처음에는 집안 어른들에게 도움을 요청키 위해 전화를 한 적도 있지만, 최근 들어서는 이 문제와 관련해 (어른들께) 일절 말을 꺼내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현대그룹 내부에서는 ‘범 현대가’가 현대엘리베이터 지분을 매입하게 된 배경을 두고 ‘때늦은 후회’도 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당초 현대그룹 계열사들에게 지분 매입 요청을 한 곳이 다름아닌 현대그룹이기 때문. 또다른 현대그룹 관계자는 “고 정몽헌 회장 생전에 경영권 방어를 위해 계열사에 지분을 매집해줄 것을 부탁했던 것인데, 우리에게 화살로 돌아와 버렸다”며 안타까워했다.
현대엘리베이터의 소액주주 1만5천여 명의 목소리도 또 다른 관건 중 하나. 업계에서는 현대그룹의 경영권을 두고 여성단체, 사회단체 등이 저마다 목소리를 높이고 나선 것도 이런 소액주주들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니냐는 표정을 짓고 있다.
실제로 이번에 결성된 현 회장의 경영권을 지지하는 여성들은 서명운동을 벌여 그 명단을 금감원 청원서에 함께 제출하는가 하면, 현대엘리베이터 주주되기 운동도 전개하고 있다.
아무튼 이번 경영권 다툼은 정씨 일가와 소액주주 1만5천여 명의 마음이 정상영 명예회장에게 기울 것이냐, 현정은 회장에게 기울 것이냐가 관건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