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 최윤원 회장의 생전 모습. | ||
SK가의 장손이자 최태원 회장의 사촌형인 최윤원 전 SK케미컬 회장과 관련한 사생활 문제가 튀어나온 것이었다. 최윤원 전 회장은 지난 2000년 8월31일 이미 작고했다. 따라서 그의 사생활과 관련된 문제가 불거진 것은 작고한지 2년이나 흐른 뒤였다.
그가 뜬금없이 친자확인 소송을 당한 것이었다. 물론 이 사건은 전혀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다.
사건의 전말은 다음과 같다.
당시 SK그룹 오너 가족들과 검찰에 따르면 고 최 전 회장 유족들을 상대로 중년인 A씨가 “자신의 자식이 최 전 회장의 2세”라며 친자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홀로 자식과 함께 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A씨는 그동안 최 전 회장의 유족들을 상대로 자식에 대한 친자 인지를 요구해오던 터였다.
그러나 최 전 회장의 유족들은 당사자가 작고한 이후 친자 인지를 요구한 데다, 친자 인지를 해야 할 이유가 없다며 A씨측의 요구를 거부했다.
이에 불만을 품은 A씨는 최 전 회장이 작고한 후부터 유족들과 실랑이를 벌였지만 뜻을 이루지 못하자 변호사를 선임해 친자확인 소송을 제기하고 나섰던 것이다.
이 사건은 외부에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 더욱이 당시 SK그룹 상황을 보면 최태원 회장이 SK글로벌 사건으로 구속 위기에 처한 데다, 그룹 전체가 위기에 빠져 있어 이 문제에 신경을 쓸 겨를이 없었다.
SK그룹의 한 고위 관계자는 A씨의 친자확인 소송 사실이 있었음을 확인하면서 “일단 소송이 제기된 이상 법정에서 고 최 전 회장과 A씨의 자식에 대한 염색체 DNA 검사를 해봐야 사안을 판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A씨측도 당시 기자의 확인 요청에 “소송을 제기했으며, 변호사를 통해 고 최 전 회장의 유족들과 접촉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A씨측은 “2세의 장래와 유족들과의 원만한 타협을 위해 신분 등 구체적인 사실은 공개하지 말아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A씨측 주장에 따르면 A씨가 고 최 전 회장을 만난 것은 90년대 초반이었다. 당시 SK인더스트리 부회장이던 최 전 회장은 우연히 A씨와 알게 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A씨와 최 전 회장은 작고하기 오래전부터 만나지 않았으며, 최 전 회장의 지병인 간암이 도져 미국으로 장기 치료를 떠나면서 사실상 연락이 끊겼다.
SK 관계자들에 따르면 최 전 회장이 작고한 후 A씨측은 직·간접적인 루트를 통해 2세에 대한 친자인지를 요구했으나, 유족들은 이를 거부했다는 것.
유족들이 A씨측 요구를 거절한 것은 “당사자가 죽고 난 후에 이 같은 주장을 하고 나선 것에 대한 의문점이 많다”는 게 이유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친자 인지를 할 경우 최 전 회장 유족들과 상속권 문제를 다퉈야 하는 등 법률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이 발생한다.
실제 고 최 전 회장은 SK가의 장남이었던 데다 SK케미컬의 회장이자 대주주라는 점에서 사후에 재산문제를 정리하는 과정이 간단치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때문에 악의적으로 이같은 문제를 들고 나올 수 있을 것이라는 추측도 가능했다.
과거에도 재벌총수를 상대로 터무니없는 소송을 제기하는 사례가 더러 있었다. 외부에 공개되진 않았지만 L그룹 C회장이나 S그룹 L회장의 유가족들도 그같은 불미스런 일을 당하기도 했다. 물론 이들 재벌가의 경우 나중에 무고가 드러나 명예를 회복하기도 했다.
어쨌든 고 최 전 회장 유가족들 역시 A씨측이 소송을 제기한 사실을 통보받은 뒤 변호사를 선임하는 등 법적 대응에 나설 준비도 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친자확인 소송이 제기될 경우 법정에서는 소송 당사자를 대상으로 DNA검사, 정황증거 확인 등 구체적인 조사를 실시하게 된다. 무엇보다 DNA 검사 결과가 친자 여부를 가름하는 가장 중요한 판단기준이 된다는 게 법조계의 설명이었다.
소송 결과 A씨의 자식이 고 최 전 회장의 2세임이 확인될 경우 고 최 전 회장이 작고한 이후 매듭됐던 상속문제 등이 원점에서 다시 절차를 밟아야 하는 등 복잡한 상황이 생길 수도 있었다.
고 최 전 회장은 생전에 1남3녀를 두었으며, 생전에 소유하고 있던 SK케미컬 지분 6%를 비롯한 부동산 등 개인 재산은 대부분 상속절차를 마무리짓고 상속세까지 모두 낸 상태였다.
최윤원 전 SK케미컬 회장은 SK그룹의 전신인 선경그룹의 창업자 고 최종건 회장의 장남이다.
최 회장은 부친 최종건 회장이 작고한 직후 한때 그룹의 경영권 대통을 이을 수도 있는 위치였다. 그러나 부친 최종건 회장이 작고할 당시(73년) 그는 23세에 불과한 유학생이었다.
결국 최종건 전 회장의 유언에 따라 삼촌인 고 최종현 회장이 2대 총수로 SK그룹의 경영을 맡았다.
최윤원 전 회장은 지난 78년 미국 엘론대학을 졸업하고 귀국해 SK인더스트리 부장으로 입사했다. 그 후 그는 이 회사의 이사, 전무, 부사장을 거쳤으며, 작고하기 직전에 SK인더스트리의 후신인 SK케미컬의 회장으로 승진했다.
그는 SK인더스트리를 맡아 그룹 경영에 참여하면서 최종현 회장의 지원 아래 사실상 독립경영의 수순을 밟기 시작했다. SK인더스트리는 그의 부친인 최종건 회장이 처음 사업을 시작한 선경직물이 효시였다.
때문에 그가 이 회사의 경영을 맡은 것은 부친의 사업을 이어받은 셈이나 마찬가지였다.
최 전 회장은 표면상 SK그룹의 그늘에 있었지만, 독자적으로 이 회사를 꾸려갔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후 이 회사는 SK케미컬로 이름을 바꾸게 됐고, 최종현 회장도 생전에 그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 전 회장의 형제로는 신원, 창원씨 등 남동생과 정원, 혜원, 지원, 예정씨 등이 있다. 여동생들은 모두 출가했다.
손아래 동생인 신원씨는 현재 SKC의 회장으로 재직중이고, 막내 창원씨는 SK글로벌의 부회장으로 그룹경영에 참여했다가 SK사태가 터지면서 퇴진했다.
고 최 전 회장은 지난 98년 최종현 회장이 작고한 후 그룹경영권 승계문제로 주변에서 말이 많자 “태원이가 그룹 경영을 맡는 게 좋겠다”며 현재의 최태원 회장 체제를 인정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처럼 가족의 장자로서 화합을 위해 노력했던 것으로 알려진 고 최 전 회장은 대인관계가 원만했을 뿐 아니라 경영에 대해서도 상당한 열정을 보였다.
그는 자신의 동생인 신원-창원씨와 사촌동생인 태원-재원씨 등과 ‘SK 오너일가 5인회’를 구성해 정기적인 모임을 가지면서 형제간의 우의를 다지는 데 앞장서 재계의 부러움을 사기도 했다.
그런 그가 사후에 예상치 못한 스캔들에 휘말리자 당시 재계 관계자들은 매우 놀라는 눈치였다. SK의 한 고위 관계자는 “평소 최 전 회장의 성품에 미뤄 믿기 어렵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어쨌든 SK 오너가를 곤혹스럽게 만들었던 이 사건은 우여곡절 끝에 A씨가 소를 취하함으로써 법정대결에 나서지 않고 원만하게 마무리됐다.
정선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