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민체육진흥공단 전경(왼쪽)과 공단 이사장 최종 후보 3인에 오른 정정택 전 뉴라이트전국연합 상임대표. 연합뉴스, 윤성호 기자 cybercoc1@ilyo.co.kr |
#대한체육회장에 비견되는 막강한 자리
88서울올림픽 수익금으로 세워진 국민체육진흥공단(공단)은 스포츠토토와 경마, 경륜, 경정뿐 아니라 국민 스포츠 전체의 재원을 관장하는 체육 단체다. 쉽게 말해 공적으로 조성된 엄청난 자금을 체육진흥을 위해 쓰는 단체다. 많은 돈과 사업이 있으니 체육계 현실에서 그 영향력은 엄청나다. 그래서 대한체육회(박용성 회장)와 함께 체육계 2대 단체로 불리는 것이다.
이런 공단 이사장에 대한 임명권은 사실상 대통령이 가지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대통령에게 제청하는 절차를 거쳐 청와대에서 최종 낙점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전통적으로 이 자리는 친 여권, 특히 권력의 실세와 가까운 사람들이 차지했다. 이는 보수 정권은 물론, 김대중·노무현 정권 때도 모두 정치권 낙하산 인사였다. 공모제와 임원 추천위원회를 통해 이사장을 선출한다고는 돼 있으나 유명무실했다.
예컨대 지난 6월 취임 2년 만에 사퇴한 김주훈 전 공단 이사장(현 국기원 이사장)의 경우도, 태권도인 출신으로 조선대 체육학과 교수와 총장을 거쳐 17대 대통령선거에서 한나라당 체육청소년분야 공동선대위원장을 지냈다. 또 임기가 2+1년인 공단 상임감사도 서울시체육회 상임부회장, 국회의원 등을 거치고, 지난 대선 때 ‘아세사’라는 조직을 만들어 이명박 대통령을 크게 도운 이만재 씨가 발탁됐다.
정치 선진국에서도 ‘섀도(그림자) 내각’이 있고, 선거캠프의 유력인사가 새 정부에서 활약하는 것은 일반화돼 있는 까닭에 이 정도는 그러려니 할 수 있다. 둘 다 체육 전문성을 갖춘 인물들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전 이사장 사퇴 이후 석 달이 넘도록 후임자를 결정하지 못하고 있는 이번 인선 잡음에는 체육과는 전혀 관계없는 인물의 사전 내정설, 이에 대한 여권 내의 반발, 이어지는 체육계의 불만 등이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이다.
#친이계 소장파에 힘 실어주는 체육계 여론
익명을 요구한 한 체육계 고위 관계자는 <일요신문>에 이렇게 제보했다.
“김주훈 전 이사장이 국기원으로 옮겨가면서 사퇴하자 일찌감치 정정택 전 뉴라이트전국연합 상임대표가 내정됐다는 얘기가 나왔지요. 아마도 확실할 겁니다. 정 씨는 육사 23기, 하나회 출신이죠. 이명박 정부 들어서 하나회가 부상하고 있고, 특히 예비역 소장인 정 씨는 뉴라이트 활동을 하면서 지난 대선에서 공헌이 컸습니다. 그런데 김태호 국무총리 내정자, 신재민 문화관광부 장관 내정자 등이 청문회를 겪으면서 낙마했고, 이 과정에서 여권 내부에서 문제가 생긴 겁니다.”
공단은 지난 7월 9일 ‘임원추천위원회’ 이름으로 “21세기 스포츠복지 국가의 선도자 국민체육진흥공단에서 최고의 전문성과 역량을 갖춘 이사장을 모십니다”라는 공고를 냈다. 확인 결과, 정 씨를 포함해 총 10명이 응모했고 이 가운데 정 씨와 이만재 전 공단 감사, 이상철 전 한체대 총장 등 3명이 청와대에 최종후보로 올라가 있다.
재미있는 것은 ‘정정택 내정론’이 흔들린 과정이다. 한나라당 내에서 체육 관련 일을 하고 있는 A 씨는 “정 씨는 현 여권 내에서도 SD(이명박 대통령의 형인 이상득 국회의원) 계열로 통한다. 당초 신재민 내정자가 문체부 장관으로 취임하는 즉시 정정택 공단 이사장이 확정될 예정이었다. 그런데 최근 정두언 한나라당 최고위원 등 소장파들이 불법사찰, 인사파문 등과 관련해 SD측과 치열한 친이계 내부싸움을 벌이고 있는 과정에서 당(한나라당)에서 청와대의 임태희 실장에게 직접 ‘정정택 불가론’을 전달한 것으로 안다. 이에 청와대가 문체부 장관 인선 등과 맞물려 최종 후보 3인을 놓고 고민을 하고 있는 상태다”라고 설명했다. 즉, 이미 정정택 공단 이사장으로 당초 상황이 정리된 상태였는데 정치권의 불똥이 체육계 쪽으로 번지며 일이 복잡해졌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청와대 인사시스템에 대해 강력한 비판을 하고 있는 한나라당 소장파는 ‘체육계 목소리’를 근거로 내세우고 있다. 이만재 전 감사(태권도)나 이상철 전 총장(럭비)은 모두 체육계 출신으로 전문성이 있는 반면 정정택 카드는 완전히 낙하산 인사로 체육계 반발 및 여론악화가 우려된다는 것이다. 두 이 씨는 이명박 대통령(MB)과도 코드가 잘 맞는 편이다. 이만재 전 감사는 대선 때 공헌은 물론 MB의 서울시장(서울시체육회장) 시절 상임부회장으로 깊은 인연을 맺었다. 이상철 전 총장도 고려대 66학번 동기다.
체육계에서는 이상철 전 총장이 다소 밀린 가운데 ‘정정택 VS 이만재’ 양파전으로 최종인선 작업이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체육인들은 정치논리를 떠나 일단 ‘반 정정택 분위기’로 쏠리고 있다. 전문 체육행정가 등 체육을 잘 아는 인물이 선임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은 것이다. 결과적으로 친이계 소장파에 힘을 실어주고 있는 셈이다.
한 종목의 감독은 “정치는 잘 모른다. 특히 이상득 혹은 정두언 등 한나라당 내부 권력다툼은 관심이 없다. 단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체육과 전혀 관련이 없는 육사, 그것도 하나회 출신의 전직 장성이 국민체육진흥공단으로 오려고 하는지 이해가 안 된다”고 지적했다.
유병철 스포츠전문위원 eine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