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정태 국민은행장 | ||
금융감독원은 지난 4월부터 5월까지 국민은행에 대한 감사를 실시했다. 그리고 그 결과가 8월에 발표될 예정이다. 하지만 그 감사 내용이 하나둘씩 알려지면서 예상치 못했던 파문이 일고 있다.
내부적으로 김정태 행장의 연임에 반대하는 세력이 은행 내에 만만치 않게 자리잡고 있는 데다, 외부적으로 이헌재 부총리가 현 정부의 부총리로 컴백하기 전 ‘야인’ 시절에 월 5백만원씩 국민은행으로부터 고문료를 받았다는 게 알려지면서 ‘국민은행 회계 처리-김정태 행장 연임’ 문제는 국민은행 차원을 넘어서 정부 고위 관료문제와 뒤엉켜 있다.
문제가 되고 있는 내용은 국민은행이 2003년 회계결산을 하면서 최소한 수천억원 정도의 회계 기준을 위반(분식회계)했다는 것. 금감원의 정식 발표가 나기 전이지만 금융가에는 제법 구체적인 내용까지 나돌고 있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국민은행의 분식회계 규모는 최소 3천억원에서 최대 7천억원 사이인 것으로 전해졌다.
국민은행이 국민카드(이미 합병)를 지원한 금액인 1조6천억원을 합병 전에 결손처리해야 했음에도 합병 뒤에 손익처리해 3천억원 정도의 세금감면 혜택을 본 점, 카드사업 부문에서 자산유동화증권(ABS)을 발행할 때 예상 손실액을 충당금으로 설정해야 했음에도 정해진 기준보다 적게 설정하거나, 합병 등으로 인한 건물 등 부동산 자산의 비용처리 방식에서도 결과적으로 국민은행의 적자폭을 줄이는 방식으로 회계 처리가 ‘변칙’으로 이뤄졌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국민은행은 국민카드와의 합병 당시 회계 처리 기준은 이미 금융당국과 협의를 거친 문제이고, 회계법인으로부터 자문을 받아 실행한 것이라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금융감독원에선 ‘문제점이 밝혀진 이상 징계를 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져 ‘징계 범위와 수위’가 관심의 초점이 되고 있다.
예상 징계 대상은 국민은행 법인 자체와 국민은행 임직원들. 특히 ‘변칙회계’의 논란을 부른 국민은행 사업부의 결재라인에 있던 임원들은 징계를 피하기 힘들 듯하다.
문제는 이 결재라인의 책임을 어디까지 물을 것이냐 여부. 만약 김정태 행장까지 책임을 묻게 된다면 오는 10월 임기가 만료되는 김 행장의 연임 구도는 자동으로 물 건너 가게 된다. 때문에 금감원의 감사결과 발표와 징계 수위가 관심을 모으고 있는 것이다.
김 행장의 연임은 올해 은행가 최대 이슈 중의 하나. 김 행장은 지난 DJ정부 시절 주택은행장에 임명돼 통합 국민은행장까지 오른 금융가 최대 스타다. 정권이 바뀌고도 김 행장을 뒷받침해준 최대의 우군은 ‘시장론자’라는 여론의 호응이었다. 경제 논리로 은행 경영을 해야 하고, 주주의 이익을 우선시한다는 그의 경영 방침은 노무현 정부가 들어서고, 카드 부실 문제가 불거지면서 금융당국과 충돌을 빚었지만 ‘시장론자’라는 것 자체에 대해서 아무도 공개적으로 문제 삼지 못했다.
하지만 ‘정치논리에 맞서 시장 논리를 통해 은행이 경영되고, 은행장이 뽑혀야 한다’는 김 행장의 최대 우군도 이번 감사에서 국민은행의 ‘변칙 회계’ 논란이 빚어지면서 타격을 입을 전망이다.
실제로 통합 국민은행 내에선 김 행장의 연임을 반대하는 목소리도 상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전산문제나 은행 부실 경영문제에 대해선 옛 국민은행 노조 등에서 계속 문제 제기를 해왔다.
때문에 금융가에선 이번 금감원의 감사 결과 발표가 국민은행의 차기 행장 선출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끼칠 사안으로 보고 있다.
현재 국민은행은 차기 행장 선출을 위해 행장추천위원회를 구성해 놓은 상태다. 이 행추위는 지난 4월23일 행추위 관련 규정의 개정을 통해 이루어졌다.
과거에는 주주대표 3명, 사외이사 3명, 외부전문가 1명으로 이뤄졌던 구성을 사외이사 6명, 주주대표 1명으로 행추위 구성을 바꾼 것.
국민은행쪽에선 지난 3월 주주대표 3명이 들어간다고 밝혔지만 4월 개정 때는 전원 사외이사로 구성하는 쪽으로 방향을 바꿨다. 때문에 새 행장 선출에 현직 은행장의 입김이 가장 크다고 볼 수 있다. 지난해 겨울 정부의 국민은행 지분을 사들여 ‘독립’을 이룬 국민은행에선 이번 행장 선출도 ‘독립적’으로 하겠다는 준비를 단단히 한 셈이다.
때문에 별다른 돌발 변수가 생기지 않는 한 김정태 행장의 연임도 불가능한 시나리오가 아니었다는 게 금융가의 시각이다. 하지만 금감원 감사라는 돌발변수가 터졌고, 이제 국민은행 새 행장 선출은 금감원의 말문이 먼저 터지길 기다려야 할 형편이 됐다.
이것이 금감원의 국민은행에 대한 ‘감사결과’가 기다려지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