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세청이 최근 삼성 LG SK 롯데 등 현대차를 제외한 5대 기업에 대해 잇단 세무조사를 실시하며 대기업들을 긴장시키고 있다. |
대기업에 대한 국세청의 세무조사 움직임은 이현동 국세청장 취임 이후 곳곳에서 감지되어 왔다. 지난 10월 말경 국세청의 한 관계자는 “주요20개국(G20) 정상회의가 끝나면 (국세청의) 구체적인 움직임이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검찰 수사를 능가하는 파장이 일 것”이라고 귀띔하기도 했다.
국세청 사정에 밝은 인사들 사이에서는 “대상이 문제지 조만간 대기업에 대한 대규모 세무조사가 이어질 것”이란 소문은 거의 정설로 받아들여졌다. 이현동 청장도 G20 정상회의가 열리기 일주일 전쯤 회계법인 대표들과 만난 자리에서 대기업에 대해 비판적인 발언을 쏟아낸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G20 정상회의가 끝나고 며칠 뒤인 지난 16일 국세청이 SK텔레콤에 대한 세무조사를 실시하자 재계에서는 ‘올 것이 왔다’는 반응이 주를 이뤘다. SK텔레콤에 대한 세무조사는 상징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특히 SK그룹은 정보 관계자들 사이에서 다른 대기업과 함께 사정 한파를 맞을 것으로 거론된 기업이었기에 G20 정상회의 이전의 소문이 아주 근거가 없지 않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준 셈이었다.
또한 SK텔레콤 세무조사는 그룹의 심장부를 정조준하고 있다는 점에서 재계가 받아들이는 무게감은 검찰 수사 때의 그것을 넘어선다. 먼저 SK텔레콤에 대한 국세청의 조사는 특별조사 성격이 강하다. 정기조사라는 회사 측의 설명과 달리 세무조사 시작 다음날 투입된 서울지방국세청 조사4국은 특별조사를 전담으로 하는 부서다. 정기조사의 경우 회사 측에 조사시작일과 종료일 등을 미리 통보하지만 SK텔레콤에 대한 조사는 국세청 내부에서도 인원 동원을 자제할 정도로 보안에 각별한 신경을 썼다는 후문이다.
특별조사의 경우 조사 담당자들 외의 직원까지 동원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번에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것은 그만큼 보안에 신경을 써야 할 이유가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공식적으로는 SK텔레콤에 대한 조사라지만 SK그룹의 또 다른 계열사인 SK텔레시스 협력업체와 ㈜SK까지 조사한 것은 이번 조사가 그룹 전반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있음을 시사한다. 국세청 주변에서는 벌써부터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최신원 SKC 회장 계열분리의 정점에 있는 워커힐호텔까지 불똥이 튈 가능성이 언급되고 있다.
이번 세무조사가 청와대와의 조율을 거쳐 시작됐을 가능성도 적지 않다. 지난 11월 초 청와대의 한 고위 관계자가 모 언론사 고위직과 가진 자리에서 공정사회와 관련된 대화를 나누다가 비보도를 전제로 이런 얘기를 했다고 한다.
“불공정의 대표적인 예가 SK텔레콤의 주파수, TV홈쇼핑의 채널 등이다. 전파는 공공재인데 기업들이 이를 지나치게 사유화하고 있으며 이는 공공재를 이용한 과다한 이득의 편취다.”
사정기관 동향에 대해 대부분 보고를 받는 위치에 있는 이 인사가 SK텔레콤을 언급한 점은 세무조사 착수 전 어느 정도 조율이 있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대목이다. 이처럼 겉으론 전격적이지만 속으론 예고된 세무조사의 여파는 다른 기업들에게도 고스란히 미치고 있다. SK에 대한 세무조사가 들어가자 KT LG 등 다른 통신사들은 세무조사가 전체 통신업계에 대한 것이 아닌지 촉각을 곤두세웠다는 후문이다.
또한 SK와 함께 조사 대상으로 거론된 다른 기업들도 국세청의 동향을 파악하기 위해 안테나를 곧추세우고 있다. 특별조사는 아니지만 삼성 롯데 LG GS 신세계 등 정기조사를 받는 기업들도 정기조사라고 해서 마냥 안심할 수 없다는 눈치다. 삼성의 한 관계자는 “정기조사라고는 하지만 특별조사 형식을 띠고 있는 것 같다. 특히 오너들의 지분 내역 등을 들여다보는 것은 심상치 않다”고 말했다.
재계에서는 ‘군기 잡기’라는 표현을 빌려 국세청의 세무조사에 대해 볼멘소리를 하고 있지만 국세청의 사정 드라이브는 당분간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박혁진 기자 phj@ilyo.co.kr
속살까지 들춰본다
국세청의 대대적 세무조사 명단에 삼성그룹 계열사들 역시 이름을 올리고 있다. 삼성그룹은 지난 8월 삼성생명이 정기조사를 받기 시작한 데 이어 제일기획이 조사를 받았고, 지난 15일부터는 그룹 지배구조의 핵심인 삼성에버랜드까지 조사 대상에 이름을 올렸다. 조만간 호텔신라에 대한 세무조사도 예정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세청은 지난 15일 “서울지방국세청 조사1국이 서울 중구 을지로1가 삼성에버랜드 본사에 조사반을 파견해 조사를 벌이고 있다”고 밝혔다. 삼성에버랜드 측도 이번 조사가 2005년 이후 5년 만에 실시되는 정기 세무조사라고 밝혔다. 삼성 측은 계열사에 대한 세무조사가 정기조사라며 태연한 반응을 보이고 있지만 그룹 핵심 계열사들의 속살을 정부에 보여주는 것이 달가울 리 없다.
삼성그룹은 사실상 사장 승진이 예정된 이재용 부사장이 지분 25.1%를 보유한 삼성에버랜드가 삼성생명 주식의 19.3%를 보유하고 있고, 삼성생명이 삼성전자(7.26%)를, 삼성전자가 삼성카드(36.9%)를, 삼성카드가 다시 에버랜드(25.6%)를 지배하는 등의 순환출자 구조를 갖고 있다. 순환출자의 핵심에 있는 삼성생명과 에버랜드가 잇따라 세무조사를 받는 셈이다.
국세청은 이건희 회장에서 이재용 부사장으로의 경영권 승계를 앞두고 오너 일가의 지분 보유 내역 등에 대해서 유심히 들여다보는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