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이미 잘 알려진 바와 같이 현재 LG그룹 총수인 구본무 회장에겐 아들이 없었다. 이 때문에 구인회-구자경-구본무로 이어진 경영권 장자상속 전통은 끊어질 것이 분명했고 그동안 후계구도와 관련된 무수한 관측들이 끊이질 않았다.
구본무 회장의 친아들인 구원모씨는 지난 94년에 유명을 달리했다. 고 구원모씨는 75년생으로 19세의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난 것이다. 당시 불의의 사고를 당했다는 소문만 전해졌을 뿐 원모씨의 정확한 사망 원인은 아직까지 알려지지 않고 있다. LG 관계자들이 구원모씨 죽음에 대해 일절 함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원모씨가 살아있었다면 지금 29세의 나이로 한창 경영수업에 뛰어들 법한 시기이며 LG는 4대째 장자 경영승계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다른 대기업의 부러움을 샀을 것이다. 구본무 회장은 독실한 불교신자로 알려진 부인 김영식씨와 함께 한동안 아들의 위패가 안치돼 있던 서울 삼청동 소재 칠보사를 자주 찾았다고 한다. 아들을 잃은 슬픔을 달래기 위해서였다.
현재 구 회장에겐 두 딸이 있다. 장녀 연경씨는 78년생으로 이번에 입양된 광모씨와 동갑내기이다. 막내딸 연수양은 구 회장이 51세이던 96년에 태어났다. 아들이 없던 구 회장이 늦은 나이에 얻은 딸이라 한동안 화제에 오르기도 했다. 당시 부인 김영식씨에 대해 중국 등지를 다니며 아들 낳는 데 용하다는 명의들을 찾아다녔다는 소문이 나돌기도 했었다.
그러나 올해로 59세인 구 회장은 동생의 아들을 양자로 받아들이면서 다시금 아들을 얻게 됐다. 이로써 LG는 4대째 장자 경영승계 구도가 가능해졌다는 평을 들을 수 있게 된 것이다.
LG가는 재벌가 중에 자손이 많기로 유명한 집안이다. 창업주인 고 구인회 회장은 6남 중 맏아들이었으며 6남4녀, 즉 10남매를 슬하에 두었다. 고 구인회 회장의 장남인 구자경 명예회장도 4남2녀를 두었다. 고 구인회 회장의 직계만 따져도 37명에 이르며 고 구회장의 방계를 헤아리고 그의 형제들의 직계 방계들의 자손을 다 헤아리면 그 수를 짐작하기 어려울 정도다.
지난 95년 구자경 명예회장의 고희연에 아들들이 함께했다. 앞줄은 구자경 명예회장 부부. 뒷줄 왼쪽부터 셋째 구본준 LG필립스LCD 부회장, 큰아들 구본무 회장, 둘째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 넷째 구본식 희성정밀 부사장.
특히 유난히 아들이 많은 것이 구씨 가문의 특징으로 꼽힌다. 고 구 회장이 여자형제 없는 6형제 중 맏아들이었고 이들 대에서 나온 2세 39명 가운데 23명이 아들이다. 고 구 회장의 직계3세 23명 가운데 13명이 아들이다. LG는 이 아들들이 장성한 이후엔 거의 대부분 거의 각자 능력에 맞게 계열사에 배치시켜 경영수업을 받게 하고 있다.
그러나 이렇게 많은 아들들을 뒀어도 LG가는 철저하게 장자승계 원칙을 지켜왔다. 창업자인 고 구인회 회장 본인도 6남 가운데 장남이었으며 뒤를 이은 구자경 명예회장, 구본무 현 회장 역시 모두 맏아들이었다. 창업 당시 구태회 구두회씨 등 창업주 형제들이 경영에 참여했지만 대권은 물려받지 못했다. 구자경 명예회장이나 구본무 회장 형제들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LG가 아들들은 거의 무조건 그룹 경영에 참여시키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딸과 며느리들은 경영에 관여하지 못하게 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구씨 가문엔 아직도 유교사상이 크게 작용하고 있으며 그만큼 남녀유별이 심하다고 한다. 이 같은 가문 내 풍토 역시 슬하에 두 딸만 있는 구본무 회장이 동생의 아들을 양아들로 입적하게 된 배경 중 하나로 볼 수 있다.
이번에 구본무 회장 양아들로 입적된 광모씨의 친부인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은 구자경 명예회장 슬하의 4남2녀 중 차남이다. 장남인 구본무 회장 바로 아래 여동생 구훤미씨가 있지만 아들 서열로만 치면 구본무 회장 바로 다음인 것이다.
지난 95년 구자경 명예회장은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을 분가시켰다. 희성그룹은 희성전자 희성정밀 희성금속 한국잉겔아드 희성화학 삼보지질 등 6개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는 대기업이다. 장자인 구본무 회장에 대한 후계구도를 확실히 하기 위해 재산분할을 한 셈이다.
광모씨는 구본능 회장의 맏아들이다. 구본무 회장의 맏아들이자 구자경 명예회장의 장손자였던 원모씨가 세상을 떠난 후 광모씨가 구 명예회장의 실질적인 장손자가 된 셈이다. 광모씨의 이번 입적은 호적상으로도 광모씨를 ‘완벽한’ 장손자로 만들어 4대째 경영권 장자승계 원칙을 고수하려는 LG가의 의도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결국 장자승계를 확실히 하기 위해 구자경 명예회장이 재산분할해서 분가시켰던 차남 구본능 회장의 아들이 장자승계의 명분으로 구본무 회장 호적에 입적된 것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구본무 회장의 양아들이 된 광모씨는 지난 78년 구본능 회장과 부인 강영혜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런데 광모씨의 친모인 강씨는 그가 18세이던 지난 96년 세상을 떠나게 된다. 그로부터 2년 후인 98년 구본능 회장은 차경숙씨와 재혼하게 된다. 차씨는 66년생으로 호적상 아들이었던 광모씨와는 불과 열두 살 차이밖에 나지 않는다.
올해 26세인 광모씨에 대해 세간엔 그다지 알려진 바가 없다. 구본무 회장 부친인 구자경 명예회장이 손자 손녀들 중에 광모씨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는 소문만이 전해질 뿐이다. 다만 광모씨가 구본무 회장의 호적으로 입적될 것이란 소문은 몇 년 전부터 재계 일각에 나돌고 있었다고 한다.
한 가지 주목할 만한 점은 구광모씨가 26세란 나이에도 불구하고 ‘젊은 재력가’로서 거론된 적이 있다는 것이다. 구광모씨는 경제전문 웹진 〈에쿼터블〉이 지난 2002년 선정한 ‘한국의 50대 젊은 부호’에 17위로 올랐다. 〈에쿼터블〉은 당시 희성그룹 계열사인 희성전선과 실트론 주식을 보유한 것으로 알려진 구광모씨의 추정 재산을 6백80억원으로 보도했다.
이듬해인 2003년 〈에쿼터블〉이 선정한 ‘한국의 50대 젊은 부호’에서 구광모씨는 41위를 차지해 전년보다 여러 계단 떨어졌다. 그러나 추정 재산은 3백20억원으로 여전히 젊은 재력가로 군림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이 순위 상위권에는 구광모씨와 같은 재벌가 후손들이 상당수 올라 있다. 그러나 이재용 삼성전자 상무처럼 대부분 경영일선에서 활동하는 인사들이며 구광모씨와 같은 20대 연령대는 찾아보기 힘들다.
지난 7월 LG그룹에서 허씨 가문이 이끄는 회사들이 분가해 GS그룹으로 공식 출범했다. 지난 57년간 3대째 내려온 구씨와 허씨의 동업관계가 청산된 것이다. 그룹 차원에서 새롭게 면모를 다져야 할 시점에 이뤄진 구본무 회장의 양아들 입적이 LG그룹의 앞날에 미칠 영향과 함께 구 회장의 양아들이 된 광모씨에 대한 재계의 관심 어린 시선도 차츰 늘어갈 전망이다.
천우진 기자 wjch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