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왼쪽부터)최한영 현대차 사장, 김익환 기아차 부사장, 심재혁 한무개발 사장, 김영수 LG전자 부사장 | ||
이 같은 현상은 얼마전까지만 해도 드문 일이었다. 홍보실은 후방 지원부서로 인식돼 홍보실 출신 인사가 회사 전체를 책임지는 최고 경영자 자리에 오르는 경우는 좀처럼 보기 힘들었다.
지난 7일 기아자동차는 김익환 전무를 국내영업 및 홍보담당 부사장으로 승진 발령했다. 이로써 현대차그룹은 최한영 사장과 함께 홍보 담당 임원이 두 명이나 사장급에 배치되는 진기록을 세웠다.
김 부사장은 현대정공 출신으로 이른바 ‘MK라인’이었다. 과거 현대차그룹이 분가하기 전 정몽구 현대자동차 회장이 경영하던 계열사 출신 임원을 MK라인으로 부르곤 했는데, 김 부사장은 현대정공(현 현대모비스) 출신에, MK 계열 건설사였던 현대산업개발의 홍보담당 이사를 지내는 등 MK 계열의 대표적인 홍보책임자였다.
김 부사장은 지난 2000년 현대차가 기아차를 인수하면서 홍보 책임자로 기아차에 투입됐다. 그가 현대차 홍보 책임자로 갈 것이라는 예상이 많았지만 정몽구 회장은 그를 기아차에 투입시켰다.
김 부사장 대신 현대차 홍보팀장으로 부임한 사람이 현 최한영 사장이다.
과거 90년대 중반 현대차 홍보실에서 일하다 미국으로 나가 수출 마케팅쪽에서 일하던 최 사장은, 정몽구 회장이 99년 현대차 경영권을 인수하면서 현대차 홍보책임자로 지목돼서 국내에 들어와 경영권이 바뀌는 과정에서 현대차 홍보를 책임졌다.
이후 최 사장은 MK가 이끄는 현대차에서 가장 승진이 빠른 사람 중의 하나가 됐다.
99년 상무로 부임한 그는 2001년 홍보실장 전무로 승진했고, 이어 2001년 12월엔 수출마케팅실장 업무도 겸임하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정몽구 회장이 심혈을 기울였던 여수세계박람회 유치위원회 사무부총장을 맡는 등 정 회장의 신임을 받기 시작했다.
그의 승진 과정을 보면 홍보 책임자에서 점차 현업 부서일도 함께하며 이력을 쌓았던 것을 알 수 있다. 2002년 1월엔 수출지원사업부장을 맡았고, 이어 그 해 8월 홍보 및 마케팅 담당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그리고 2003년 2월엔 기아차 마케팅 부사장도 겸임했다. 이어 지난해 4월에는 현대기아자동차 전략조정실장 사장으로 승진했다.
애초 MK 인맥으로 분류되지 않던 최 사장이 그룹 총수의 신임을 받으면서 홍보맨 출신임에도 사장급으로 승진한 것. 일각에선 이를 정몽구 회장의 독특한 용병술로 보는 시각도 있다. 신뢰하는 경영진에 힘을 실어주고, 상호 경쟁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최 사장이 이렇게 승승장구하는 동안 ‘MK 현대차 시대’를 맞아 ‘만개’할 것으로 예측됐던 기존 MK인맥은 상대적으로 조용했다. 그러다 올 초 김익환 전무가 부사장으로 승진한 것.
기존 현대차 홍보 인맥 중에선 이용훈 부사장이 지난 10월께 전무에서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이 부사장은 MK가 현대차 경영권을 접수하기 전 현대차 홍보실에서 일한 경력이 있다. 99년 이후 다른 보직을 맡다가 지난 2002년 홍보실 전무로 컴백해 지난해 부사장으로 승진해 전북현대모터스 축구단 단장을 맡는 등 신임을 받고 있다.
사실 홍보맨 중에 사장급으로 승진한 인물로는 지난 99년 LG그룹 회장실 소속으로 LG의 홍보책임자로 일했던 심재혁 현 한무개발 사장을 꼽을 수 있다. 한무개발은 인터콘티넨탈호텔을 경영하는 주체로, 심 사장은 지난 6년 동안 계속 사장을 맡아 장수 사장 대열에 합류하고 있다.
한화그룹의 홍보책임자였던 남영선 상무 역시 지난해 11월 (주)한화 사업총괄담당 사장으로 승진했다. 그가 맡은 보직은 한화의 주력 계열사 사령탑으로 홍보맨 경력이 전문 경영인 이력에 보탬이 됐다는 게 중평이다.
남 사장은 홍보쪽에서 잔뼈가 굵었다기보다는 다른 현업부서 경력이 더 많은 편이다. 하지만 홍보팀 책임자에서 승진한 데다, 후임 책임자가 같은 팀에서 승진하는 등 지난해 말 한화 홍보실은 그룹으로부터 ‘칭찬’을 받았다.
홍보로 잔뼈가 굵은 사람으로는 삼성그룹 구조본의 이순동 부사장과 LG그룹의 정상국 부사장, LG전자의 김영수 부사장, 두산의 김진 부사장 등을 꼽을 수 있다.
중앙일보 기자 출신인 이 부사장은 지난 81년 삼성전자에서 홍보업무를 시작해, 지난 2001년 삼성그룹 구조본 기획홍보팀장 부사장으로 승진해 삼성 내에서 홍보책임자로는 가장 높은 직위를 갖고 있고 한국PR협회장을 맡고 있다.
LG그룹 지주회사인 (주)LG의 정상국 홍보팀장(부사장급)은 전임 심재혁 사장이 한무개발로 나간 뒤 LG그룹의 홍보책임을 맡고 있다.
김영수 LG전자 부사장은 LG전자의 홍보 일에 이어 LG트윈스와 LG세이커스를 총괄하는 LG스포츠 책임자로 겸임발령을 받기도 했다. 두산의 김진 홍보실 부사장 역시 두산 계열의 광고대행사인 오리콤의 부사장도 겸임하고 있다.
홍보 조직은 그룹의 궂은 일이 겹칠 때 가장 바쁘고 그룹으로부터 ‘사랑’을 받는 조직으로 분류된다. 때문에 대선 직후 정치자금 문제가 불거지는 1~2년간은 홍보맨이 가장 바쁜 시기로 분류된다. 또 그 기간이 지나면 ‘보상’을 받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최근에는 홍보맨 경력이 단순히 ‘수세적인 성격’의 해결사로 인정받는 데서 벗어나 홍보 과정에서 얻어지는 전략 수립이나 여론 주도층이나 시대의 흐름을 읽는 능력이 기업의 주요한 ‘자산’으로 인정받는 추세다.
홍보 경력을 지닌 최고 경영자가 더 늘어날지 주목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