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덤덤했습니다. 3루를 돌아 홈으로 향하는데 저한테 박수를 보내는 팬들과 감독 코치 선수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이전에는 그들의 모습이 이상하게 와 닿지 않았지만, 사람이 큰일을 겪고 보니 지금은 그들의 작은 제스처 하나에도 가슴이 울렁거리는 증상이 생겼어요.
오늘 친 홈런이 결승타도 아니었고, 만루 홈런도 아니었지만 그들은 진심으로 격려의 박수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Choo! We love you!” 더그아웃으로 들어가는 중에 관중석으로부터 들려온 외침이었습니다. 고개를 들어 그들을 쳐다보진 않았어도 진심으로 감사했습니다. 그들 또한 제 과오를 쉽게 이해할 수는 없었을 텐데 그래도 용기를 북돋워주고 응원을 해주는 모습이 참으로 고마웠어요.
오늘은 어느 때보다 일찍 집을 나섰어요. 자꾸 무거워지는 마음을 풀기 위해선 절대적으로 연습이 필요했습니다. 정말 미친 듯이 타격 훈련을 했습니다. 온몸이 푹 젖을 정도로 땀을 흘린 뒤 샤워를 하고 나니 가슴이 한결 시원해지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래서 홈런이 터진 걸까요?
사실, 지난 원정 경기 후 클리블랜드로 돌아와선 몇 경기 쉴 생각도 했습니다. 가족들도 애리조나에서 모두 클리블랜드로 이사를 한 탓에 정리할 시간도 필요했고, 무엇보다 한두 경기라도 쉰 다음 몸과 마음을 가다듬고 경기장에 나가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정말 존경하고 좋아하는 존 누널리 타격 코치가 제 생각들 듣고선 이렇게 말씀하시더라고요. “추, 네가 쉬면 누가 뛰지? 우리 팀은 네가 절대적으로 필요해. 지금은 네가 없는 라인업은 생각할 수가 없어.” 방망이가 안 되면 수비라도, 수비가 안 되면 도루라도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으니, 그것만 보여줘도 충분하다며 절 안심시키시더라고요.
팀이 한창 상승세를 타고 있는 상황이라 오히려 전, 제 문제로 인해 팀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까 싶어 노심초사했는데, 팀에선 제가 더 필요하다고 하니, 고맙기도 하고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클리블랜드가 오늘 경기 전까지만 해도 2연패에 빠졌습니다. 지난 시즌 같으면 2연패, 3연패는 흔한 일들이라 크게 개의치 않았을 텐데, 올 시즌 대부분 연승 가도를 달리며 신바람 야구를 하고 있다 보니, 최근의 2연패는 저한테도 적지 않은 부담을 안겨줬습니다. 그러나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재빨리 분위기 전환을 해나가는 선수들을 보면서, 지금의 우리 팀 모습이 ‘일시적인’ 상승세가 아니라는 확신을 갖게 해줍니다. 오늘도 시애틀한테 계속 끌려가다가 9회말에 해프너의 홈런으로 역전승을 거뒀잖아요. 올 시즌 역전승만 9번이나 있을 정도로 클리블랜드의 저력이 만만치 않은데요, 선수들이 이런 얘기를 합니다. 이전과 달리 지금은 더 이기는 경기를 해야 한다고요. 그래야 추한테 화살이 돌아가지 않게 된다고요. 저, 참 행복한 선수죠? 선수들도, 코칭스태프도, 그리고 팬들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 응원하고 믿어주고 있으니까요.
요즘 저한테 팬레터가 많이 와요. 그동안 팬레터나 선물은 흔치 않은 일이었는데, 그 일 이후로 부쩍 많은 편지를 받게 됩니다. 한국 팬들의 격려 편지도 있고, 미국 팬들이 보내온 메시지도 있습니다. 대부분 절 걱정하는 내용들이 많네요. 정신적인 부담으로 인해 야구하는데 지장을 초래할까 싶어 마음 쓰지 말고 힘내라고 얘기를 해주시는데, 이미 전 그 아픔에 빠져서 야구를 그르치기보다는, 새로운 인생의 스타트 라인에 서있는 기분으로 야구를 더 잘해보고 싶은 욕심과 열정을 갖고 있습니다.
한국에선 여전히 저에 대해 불편한 시선들이 많은 것 같아요. 충분히 이해하고, 충분히 감당할 생각입니다. 어떤 말보다도 야구를 통해 보여드리는 게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인 것 같습니다.
클리블랜드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