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화로 인해 직장생활에 고충을 느낀다는 ‘전화 담당’ 신입사원이나 여성 직장인들이 상당히 많다. 우태윤 기자 wdosa@ilyo.co.kr |
“마케팅 담당자에게 의견 낼 것이 있다고 하면서 전화가 한 번 왔었어요. 알고 보니 전혀 현실성이 없는 의견을 내놓고 꼭 반영해야 한다고 우기는 고객이었죠. 잘 알았다고 상냥하게 마무리하고 끊으려고 했죠. 그랬더니 굉장히 친절하다면서 어느 부서의 누구냐고 묻는 거예요. 잠시 갈등하다 알려줬는데 그게 실수였어요. 그 뒤로 자주 전화해서 계속 이상한 의견을 내고 사적인 이야기를 합니다. 막무가내로 남자를 만나보라고 하질 않나 고객이라 확 끊어버릴 수도 없고 정말….”
외식 브랜드 기획팀에서 일하는 H 씨(여·29)도 전화 때문에 괴로운 직장인이다. 위에서는 새로운 기획거리를 내놓으라고 난리인데 자리 잡고 앉아 생각 좀 하려고 하면 홍보대행사에서 시도 때도 없이 걸려오는 광고 프로모션 전화에 신경이 곤두선다. 그것도 모자라 매장에서 걸려오는 애프터서비스 신청 전화로 본인 업무를 할 시간도 없다고 하소연했다.
“저희 부서로 걸려오는 전화도 포화상태인데 매장 관리 부서로 오는 전화까지 넘어오니 너무 힘드네요. 담당자들과 통화가 안 되면 매장에서는 무조건 사무실로 전화하거든요. 하지만 담당자들은 주로 외근을 하니까 사무실에 대부분 없어요. 총무팀에서는 자기 부서 관련된 전화가 아니면 여직원 중 막내인 저한테 다 넘겨버립니다. 제가 어떻게 해줄 수 있는 게 없는데도 오후만 되면 수시로 그런 전화가 오니 일이 손에 안 잡혀요. 다급한 매장에서 큰소리로 거칠게 항의라도 하면 하루 종일 뛰는 심장을 가라앉히느라 시간을 다 보내요.”
휴대폰은 받기 싫은 전화번호를 미리 차단하거나 확인하고 받지 않을 수 있지만 사무실 전화는 그렇지 않다. 업무상 받아야 하거나 혹은 아는 처지라 계속 해서 외면할 수도 없는 전화는 괴롭기만 하다. 무역회사에 다니는 C 씨(여·33)의 경우다.
“거래처 사장님 중에 종교에 심취한 분이 있습니다. 메일은 물론이고 전화를 받으면 항상 ‘제가 매일 건강하시라고 기도하는데 별일 없죠?’라고 물어요. 여기까진 좋은데 그 다음부터가 길어집니다. 전도를 하시는 거죠. 개인적으로 종교에 큰 관심이 없어서 그런 이야기를 좋아하는 편이 아니거든요. 익숙하지 않은 용어가 계속해서 들리고 하니까 굉장히 지루해요. 제 입장을 분명하게 밝혔는데도 막무가내세요. 전화벨이 울리면 오늘은 또 얼마나 길게 이야기를 하실까 한숨부터 나와요.”
시스템 관련 업체에 근무하는 O 씨(32)는 최근 받기 싫은 전화가 계속 와서 괴롭다고 이야기했다. 같은 사무실에 있던 직원이 영업 계통으로 이직하면서 끈질긴 전화 공세가 시작됐기 때문이다.
“같은 사무실에서 근무할 때도 각별하거나 그런 건 아니었어요. 그런데 퇴직하고 나서 얼마 있다가 휴대폰으로 전화가 왔더라고요. 신용카드를 하나 만들라고 해서 만들어 줬습니다. 그 뒤에는 휴대폰을 바꿔보라고 하는 겁니다. 거절했는데도 계속 전화가 오기에 번호가 뜨면 받지 않았어요. 그랬더니 사무실로 전화해서 절 찾더군요. 사무실로 걸려오는, 절 찾는 모든 전화를 안 받을 수는 없지 않습니까. 나중에는 보험에 가입하라네요. 괜찮다고 해도 길게 설명을 해요. 얼굴 아는 처지에 매몰차게 굴 수도 없고 조용한 사무실에서 제 전화벨이 울리면 고민부터 앞섭니다.”
패션소품 회사 회계부서에서 일하는 Y 씨(여·29)도 받기 싫은 전화가 있긴 한데 이제는 나름대로 익숙해져서 웃어넘기고 있다. 근절되지 않는 ‘보이스 피싱’, 처음에는 사기인 줄 모르고 중요한 전화가 왔다고 메모를 해서 상사에게 넘기기도 했다. 몇 년간 경험이 쌓인 지금은 그런 전화가 귀찮기만 하단다.
“사무실 전화가 걸리기 쉬운 번호인지 이상한 전화가 많이 오더라고요. ‘검찰청’은 물론이고 ‘우체국’이라고 하는 데서도 전화를 받았죠. 처음에는 얼떨결에 진지하게 응대를 하고 그랬는데요, 두 번째부터는 자연스럽지 않은 상대방 말투가 들렸어요. 너무 티가 나서 몇 번 말대꾸를 해주다가 경찰 얘기를 꺼냈더니 화들짝 끊더군요. 한창 바쁠 때 그런 전화가 오면 확 짜증이 나곤 했어요. 요새는 예전보다는 여유 있게 받긴 해요.”
전자관련 업체에서 일하는 D 씨(여·26)는 아예 모든 전화를 받기 싫은 상황이라고 호소했다. 대표전화를 받아 해당 직원에게 연결만 하려고 하면 뚝 끊겨버리기 때문이다.
“직통번호가 있어도 대부분은 대표번호로 전화가 오기 때문에 제가 전화를 가장 많이 받아요. 한데 전화기에 문제가 있는지 받아서 담당자한테 연결해주려고 하면 자꾸 중간에 끊깁니다. 제 탓이 아닌데도 전화를 건 상대방은 저한테 짜증을 내니 억울할 뿐이죠. 얼마 전에 상사가 외부에서 전화했을 때도 그런 일이 있었어요. 전화 하나 때문에 일 못하는 애로 찍히는 것도 억울하고 분명 제대로 조작했는데도 전화기 탓하는 사람이 없으니 속상해서 이제는 전화 받는 것 자체가 싫어졌어요.”
취직하면 제일 먼저 받는 것 중 하나가 사무실 전화번호다. ‘전화 받기’는 그만큼 중요한 업무 중 하나인 셈이다. 하니 ‘참을 인’자를 마음에 새기며 잘 받는 수밖에.
이다영 객원기자 dylee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