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1일 매일유업이 ‘불가리아’ 요구르트를 내놓자 남양유업은 4월25일 서울중앙지법에 부정경쟁행위 금지가처분 신청을 제기했다. 광고 및 판매 금지를 요청하는 소송이다. 이 때만 해도 업계 1위인 남양유업의 자존심이 세워지는 듯했다.
그러나 매일유업의 반격은 의외로 거셌다. 지난 5월17일 매일유업은 서울중앙지법에 남양유업 불가리스의 판매와 광고를 금지하는 부정경쟁행위 금지가처분 신청을 제기했다. 오히려 남양유업의 불가리스 상표 사용이 불법이라는 것이다. 아울러 불가리스의 상표 관련 특허 취소소송까지 제기했다.
지난 5월25일 불가리아 대사관조차 자진해서 불가리아는 매일유업에만 유산균을 독접공급하고 있다고 밝히는 기자회견을 열어 남양유업의 처지를 더욱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
남양유업의 불가리스는 1991년 출시되어 하루 55만 개가 판매될 정도로 장 요구르트 시장에서 부동의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제품이다. 그러나 지난 4월 매일유업이 제품 출시와 동시에 대대적인 마케팅을 통해 불가리아의 판매를 늘려나가자 남양유업의 제품 판매에도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매일유업은 할인점에서 4개를 사면 1개를 끼워주는 식으로 출시 이벤트를 하고 있어 평균적인 판매량은 잡히지 않고 있지만 하루 판매량 최대 15만 개에 이르는 등 불가리스의 아성에 도전하고 있다.
남양유업 입장에서 보면 매일유업이 불가리아라는 이름으로 제품을 내놓은 게 여간 신경이 쓰이는 일이 아니다. 매일유업이 기존의 남양유업 제품 이름과 흡사한 이름을 내세워 급속히 판매량을 늘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남양유업이 매일유업을 고소하기에 이른 것이다. 불가리아는 ‘불가리스’ 제품명과 앞 세 글자가 똑같고, 둘 다 국가명인 불가리아를 연상케 하기 때문에 소비자들의 혼란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다.
매일유업 또한 만만치 않았다. 매일유업에 따르면 불가리아 내에서 요구르트 생산의 독점적 지위를 가진 국영업체 ‘LB불가리쿰’과 정식으로 라이센스를 맺은 제품은 국내에서 자사 제품이 유일하다는 것이다. 남양유업의 제품은 독일업체의 유산균을 쓰고 있으므로 불가리아와 전혀 관련이 없는데도 장수국가로 유명한 불가리아를 연상케 하는 이름을 쓴 것이 부당경쟁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원조를 따지자면 오히려 매일유업에 더 승산이 있다는 것이다.
▲ 지난 25일 알렉산더 사보프 주한 불가리아 대사가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
일본의 경우 하루 2백만 개가 팔리는 요구르트 시장에서 불가리아 업체와 라이선스 계약을 맺은 제품이 판매량의 40∼50%를 차지하고 있다. 개당 가격의 3%를 로열티로 가져가는 불가리아로서는 무시할 수 없는 시장인 것이다. 한국의 경우는 시장상황에 맞춰 0.5%의 로열티를 받고 있다.
알렉산더 사보프 주한 불가리아 대사는 “기자회견의 목적은 불가리아와 정식으로 계약을 맺은 것은 매일유업의 불가리아라는 것을 알리기 위한 것이며 남양유업을 비난하거나 두 업체의 분쟁에 편을 들려는 것은 아니다”며 애써 논란의 한가운데 서는 것을 피해갔다. 이날 사보프 대사는 매일 불가리아 신제품 출시 행사에 참석하지 않기를 바란다는 내용의 문서를 남양유업에서 보내온 사실을 언급했다가 기자들의 집중 질문을 받자 “이 문제에 대해 더 이상 언급하지 않았으면 한다”고 해명하기도 했다.
한편 남양유업은 “이미 불가리스는 1991년에 등록돼 15년간 사용된 상표다. 불가리아의 한 업체와 한국의 한 업체의 계약이 법 위에 존재할 수는 없는 것이다. 오히려 매일유업이 15년간 소비자들에게 익숙해진 불가리스의 유사 상표를 만들어 손쉽게 판매량을 늘리고 있는 것 아닌가. 또 동구권보다 독일, 덴마크, 스위스 등 서유럽의 낙농업이 더 발달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도 왜 불가리아 국호와 비슷한 불가리스를 상표로 썼는지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다.
남양유업은 현재 이 문제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 것’이 공식 입장이다. 논란이 확대될수록 매일유업 제품의 광고효과만 커진다고 판단하고 있기 때문. 실제로 매일유업은 이번 논란으로 자사 제품의 광고효과가 엄청나다며 내심 반기는 표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