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7월 17일 박용만 두산 회장과 영국왕실골프협회 피터 도슨 총괄 디렉터가 영국 디오픈 두산 홍보 부스에서 중장비 기증식 후 기념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
지난 2007년 11월 두산인프라코어가 밥캣을 인수할 당시 기업 인수·합병(M&A) 분야 전문가뿐 아니라 재계는 깜짝 놀랐다. 밥캣은 세계적인 소형 건설기계 업체였다. 그런 회사를 국내 기업이 인수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대단한 일이었다. 얼마 전 휠라코리아가 골프용품 업체 타이틀리스트를 인수한다는 소식보다 더 놀라운 일이었다.
하지만 인수금액과 두산의 인수금액 마련 방안을 알고 나서는 대부분 고개를 가로저었다. 51억 달러(약 6조 원)라는 인수금액에 입이 쩍 벌어졌던 사람들은 두산이 마련한 자금은 고작 4억 달러에 불과하고 8억 달러는 재무적 투자자, 나머지 39억 달러는 국내외 금융사에서 빌린다는 데 우려를 금치 못했다.
‘무리한 인수’라고 평가가 계속 나왔다. 그나마 4억 달러도 비축해둔 돈이 아니라 삼화왕관 등 알짜 회사를 매각해 마련한 것이었다. M&A를 여러 차례 겪어본 대기업 관계자는 “어쩌면 금호그룹 ‘승자의 저주’가 터지기 전의 일이어서 가능한 일이었을지 모른다”고 회고했다. 즉 금호 사태가 터진 다음이었다면 자의든 타의든 진행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얘기다. 금호 사태 이후 대기업들이 이전보다 M&A에 신중해진 것은 사실이다.
결국 두산은 밥캣 인수가 걸림돌로 작용하면서 지난 몇 년간 계속 유동성과 관련해 위기설에 시달렸다. 걸핏하면 유동성 위기설에 증자설이 나돌자 그룹 측은 지난해 5월 유상증자설이 나돌 때 “악성루머에 강력 대응하겠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비록 유동성과 관련해 온갖 루머에 시달렸다고는 하지만 두산그룹이 지난 몇 년간 재무적으로 어려움을 겪어왔던 것은 사실이다. 그룹 측에서도 재무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증권가 두산 전문가들은 하나같이 “무리한 밥캣 인수가 원인”이라고 말했다.
51억 달러라는 인수금액도 그렇지만 더 큰 문제는 인수금액을 조달한 방법이라는 것이 금융 전문가들의 말이다. 인수금액 51억 달러 중 무려 47억 달러가 빌린 돈이다. 이자를 비롯한 금융비용에 대한 부담이 막대하다는 것.
무엇보다 재무적 투자자들로부터 끌어들인 8억 달러가 가장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재무적 투자자들은 밥캣을 인수하기 위해 두산인프라코어가 설립한 두산홀딩스유럽, 두산홀딩스USA의 전환우선주(발행일부터 5년 후 보통주로 전환할 수 있는 우선주)에 투자했다. 만약 이들 해외 지주사가 상장될 경우 큰 시세차익을 거둘 수 있다.
보통주로 전환하지 않더라도 두산 측이 투자금액에 연복리 9%를 가산한 금액으로 매입해야 한다는 풋백옵션이 달려 있다. 연복리 9%라면 재무적 투자자들은 가만히 있어도 큰 수익을 거둘 수 있는 수치다. 금호그룹이 대우건설을 인수할 당시 재무적 투자자들의 풋백옵션 ‘3년 연복리 6~9%’와 비교하면 이해가 쉽다.
이 같은 금융비용 부담을 줄이기 위해 두산 측이 올 하반기부터 재무적 투자자들에게 지급해야 할 금액을 조기 상환할 것이라고 알려졌다. 하지만 최근 재무적 투자자들과 두산 측 사이에 상환과 관련, 협상이 무산됐다는 이야기도 있다. 한 M&A 전문가는 “최근 두산이 재무적 투자자들에게 전환우선주를 되팔라고 요구한 적이 있다”며 “두산이 제시한 가격이 맞지 않아 재무적 투자자들이 거부했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두산인프라코어 측은 “전혀 사실 무근”이라며 부인했다.
박용만 회장은 지난 2007년 밥캣 인수를 주도했다. 그는 빅딜 직후 “인수하길 잘했다”고 한 뒤 이렇다 할 자랑을 하지 못해왔다. 그동안 밥캣과 관련해 수많은 질타를 받은 박용만 회장 입장에선 올해 들어 밥캣 실적이 좋아지자 기다렸다는 듯 직원들을 격려할 법도 하다.
그러나 앞으로 갈 길은 멀어 보인다. 앞서 언급한 M&A 전문가는 “물론 밥캣이 이 상태로 계속 간다면 효자 노릇을 할 것”이라면서도 “그러나 이 상태가 1~2년도 아니고 최소한 5년은 가야 안정적이다”라고 평가했다. 다시 말해 ‘밥캣 리스크’ 해소의 시작에 불과하다는 것. 밥캣 리스크의 해소 여부를 판단하는 시기를 재무적 투자자들과 계약이 끝나는 내년 말로 보는 전문가도 적지 않다.
현재 중국 내 굴삭기 시장점유율 2위를 달리는 두산인프라코어의 중국사업이 관건이라는 관측도 있다. 중국에서 크게 성장해야만 밥캣도 안정적인 궤도에 오를 수 있다는 것이다.
임형도 기자 hdli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