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원 방 아무개 씨(33)는 동료들 사이에서 커피 마니아로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는 사무실에서 커피를 즐기지 못한다. 사무실에는 커피믹스 한 종류만 비치되어 있는데 그의 기호와 맞지 않기 때문이다. 최근 그는 커피믹스 한 종류를 더 구비해 줄 것을 회사에 건의했다. 이처럼 커피를 즐기는 인구가 늘고 취향이 세분화하면서 요지부동이던 커피믹스 시장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3조 2000억 원으로 추산되는 국내 커피 시장에 인스턴트커피는 40%인 1조 3000억 원을 차지한다. 그중 대부분이 스틱형 커피믹스다. 커피믹스 시장은 15% 가까운 영업이익률로 ‘블루오션’으로 여겨지고 있지만 정작 그 진출은 녹록지 않다. ‘커피믹스=맥심’이라는 등식이 성립될 만큼 동서식품의 독주체제가 굳어졌기 때문이다.
지난 1987년 국내 최초로 스틱형 커피믹스를 출시한 동서식품은 한때 네슬레의 등장으로 시장 점유율이 60% 가까이 떨어진 적도 있었다. 하지만 ‘맥심’ 브랜드에 집중하고 4년 주기로 디자인을 바꾸는 등 대대적인 마케팅으로 다시 점유율을 끌어올렸다.
한데 최근 동서식품의 ‘맥심’과 네슬레의 ‘테이스터스 초이스’가 8:2로 나누던 이 시장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그 시작은 지난해 12월 남양유업 ‘프렌치카페 커피믹스’가 등장하면서부터다. 남양유업은 커피믹스에 들어가는 ‘프림’을 차별화하는 데 포커스를 맞췄다. 남양유업은 “프림 속 화학적 합성품인 ‘카제인 나트륨’을 빼고 무지방우유로 맛을 냈다”는 카피로 대대적인 마케팅에 들어갔다. 그 결과 세계적인 식품회사 네슬레를 제치고 업계 2위로 등극했다. 남양유업으로선 출시한 지 6개월 만의 쾌거였다.
그동안 별다른 대응 없이 독야청청하던 동서식품은 카제인 나트륨의 무해함을 알리고 카제인 나트륨이 남양유업 다른 제품에도 사용된다며 반박했다. 동서식품은 또 남양유업의 광고가 비방 광고라며 식품의약품안전청에 민원을 제기해 중단시켰다. 이에 남양유업은 동서식품이 영업방해를 했다고 공정위 제소 방침을 밝혀 한때 진흙탕 싸움으로 번지기도 했다. 하지만 동서식품은 지난 8월 자사 제품에 카제인 나트륨을 빼기로 해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1등 업체의 굴욕’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이 시장에 가장 최근에 뛰어든 주자는 스타벅스다. 지난 16일 스타벅스는 1회용 포장 인스턴트커피 ‘비아(Via)’를 출시했다. 비아는 이미 전 세계 매출 2억 달러(2011년 3월 기준)를 돌파한 제품. 한국은 12번째 출시 국가다. 국내에서는 출시 5일 만에 10만 개(낱개 기준)가 팔렸다고 한다. 스타벅스코리아 관계자는 “비아는 커피믹스가 아닌 커피전문점 고유의 맛을 4분의 1 수준 가격으로 즐길 수 있는 새로운 인스턴트 제품군”이라고 밝혔다.
이처럼 시장이 요동을 치자 올 하반기부터 후발주자들의 공세도 거세지고 있다. 8월 SPC그룹 계열 ‘파스쿠치’에서도 두 종류의 커피믹스를 출시한 바 있다. 또 다른 계열인 ‘던킨 도너츠’도 지난해 2월 티백형 커피 제품을 출시해 누적 매출 20억 이상의 수익을 올리고 있다.
업계에서는 남양유업과 함께 높은 점유율을 가져갈 가능성이 가장 큰 업체로 롯데칠성음료를 꼽는다. ‘레쓰비’ ‘칸타타’ 등 커피음료 부문 선두주자인 롯데칠성음료는 지난해 7월 ‘칸타타 오리지날 골드’로 커피믹스 시장에도 진출했지만 현재까지 별다른 재미를 보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남양유업의 2위 입성을 지켜보며 고무되어 있다는 후문이다.
그동안 커피사업부문에서 B2B(기업 간 거래)에 안주하며 소극적인 경영을 펼치던 대상 역시 전열을 가다듬고 있다. 대상은 지난 2001년 분사된 ‘로즈버드’의 사업권 계약이 완료되는 11월에 맞춰 사업권을 회수하고 시장 공략을 위한 활로를 모색 중에 있다.
AC닐슨 자료에 따르면 국내 인스턴트커피 시장은 6월 기준 동서식품 77.1%, 남양유업 11.3%, 한국네슬레 9.7%로 후발주자들의 영향력은 여전히 미미한 수준이다. 동서식품 관계자는 “이번에 출시된 스타벅스 비아의 경우 우리 제품과 가격대나 수요 포지셔닝 자체가 다른 제품”이라고 거리를 뒀다. 또 업계의 경쟁 양상에 관해서는 “장기적으로 시장 파이가 커지는 일이므로 환영할 일”이라며 자신감을 보였다.
한편 일부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가격 인상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커피전문점과 유가공업체들의 과도한 경쟁으로 그 비용이 소비자들에게 전가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스타벅스 ‘비아’ 같은 값비싼 제품이 다른 업체의 가격 인상만 부추길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업계 관계자들도 소비자들이 커피믹스를 찾는 가장 큰 이유는 저렴한 가격에 있다는 사실을 부인하지 않는 만큼 가격 인상을 현실화한다면 시장에 더 큰 회오리가 일어날 수도 있다.
김임수 인턴기자 imsu@ilyo.co.kr
커피전문점-식품회사 동지에서 적으로?
지난 16일 스타벅스에서 인스턴트커피가 출시되면서 ‘동서식품과 불편한 관계가 시작됐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그동안 두 회사는 커피전문점과 식품회사로, RTD(Ready To Drink, 병·캔·페트 음료)부문에서는 협력 관계를 유지해 왔다. 현재 스타벅스가 출시하는 커피음료는 전량 동서식품에서 만들어지고 있다.
그런데 스타벅스 측이 인스턴트커피 시장에 진출하면서 협력 관계가 와해되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동서식품 측은 “우리와 달리 스타벅스 비아는 소매점에서 판매되지 않기 때문에 점유율에 잡히지도 않는 제품”이라며 “앞으로도 스타벅스와의 협력 관계는 변함없다”고 밝혔다.
국내 커피 시장은 커피전문점 1조 원, 인스턴트 커피 1조 3000억 원, 커피 음료 7000억 원 등으로 나뉘어 있다. 하지만 한 장소에 원두커피와 RTD, 인스턴트커피까지 모두 이용 가능한 추세로 바뀌고 있어 사실상 영역 없는 경쟁이 시작됐다.
‘할리스’와 제휴를 맺어 RTD를 생산 중인 웅진식품의 경우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그동안 판매 장소와 가격대가 달라 경쟁이 되지 않았다가 할리스에서 티백형 인스턴트커피를 출시했는데 설상가상 가격대마저 비슷해졌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빠른 시일 내에 업체들 간 파트너십이 깨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하지만 앞으로는 경쟁 구도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여 이제 업계 간 경쟁을 넘어 국내·외 커피 브랜드와 경쟁을 치러야 하는 식품업계에 적잖은 부담이 될 전망이다.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