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하순이었다. 한 언론사가 ‘통신업체 KT가 10구단 창단을 준비 중’이란 기사를 내보냈다. 기사의 핵심은 ‘KT가 지난 6월부터 한국야구위원회(KBO) 측 고위 인사를 통해 물밑 작업을 벌여왔고, 최근 프로야구단을 창단하기로 내부 방침을 굳힌 상태’라는 것이었다. 덧붙여 기사엔 KT가 수원시와 접촉했다는 구체적 사실까지 공개했다.
보도가 나가자 야구계는 흥분 일색이었다. 그도 그럴 게 전북과 수원 등 10구단 유치를 희망한 지역은 있었지만, 창단 의사를 밝힌 기업은 전무했다. 10월 중순 이후 10구단 창단 작업이 더딘 것도 창단 희망 기업이 나타나지 않은 탓이었다.
더군다나 창단 희망 기업이 재계 순위 11위의 KT였던지라, 야구계는 입을 모아 “대환영”이란 입장을 나타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KT는 보도가 나가자마자 “10구단 창단을 계획한 사실이 없다”며 전면부인했다. KT와 접촉했다고 알려진 수원시도 “KT가 먼저 접촉한 사실이 없다”며 보도를 부인했다. 그렇다면 어느 쪽 말이 진실일까. 과연 KT는 10구단 창단 방침을 내부적으로 확정한 것일까.
결론만 말한다면 반은 틀리고 반은 맞다. 먼저 KT가 10구단 창단 방침을 확정했다는 건 다소 사실과 다르다. KT가 먼저 수원을 접촉했다는 것도 사실이 아니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수원에서 먼저 KT를 접촉했다는 게 맞다. 수원시도 인정하는 사실이다. 수원시 실무 관계자의 말을 들어보자. “10구단 창단을 위해 여러 기업과 접촉했다. 그 가운데 KT도 있었다. 하지만, 실무 관계자들도 언제 어떻게 KT와 만났는지 알 수 없다. 기업 접촉은 실무 관계자가 아니라 염태영 수원시장님과 김문수 경기도지사님이 직접 챙기시기 때문이다. 다만, KT와 접촉했을 때 그쪽에서 부정적인 입장을 나타낸 것만은 확실하다.”
<일요신문>의 취재 결과 수원시와 경기도 측이 KT에 먼저 창단 의사를 타진한 것은 사실로 밝혀졌다. KT 측이 수원시에 “여러 가지 이유로 창단이 어려울 것 같다”는 입장을 전달한 것도 사실로 드러났다. 그렇다면 KT가 밝힌 ‘여러 가지 이유’란 무엇이었을까.
수원시 관계자는 첫 번째로 정치적 이유를 꼽았다. “KT는 수원을 연고지로 선택할 경우 전북의 반발을 걱정했다. 알고 보니 전북도 KT와 접촉해 창단 의사를 타진한 터였다. 반(半)공기업인 KT로선 지역 형평성과 정치적 역학구도를 고려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어느 지역을 선택해도 극렬한 반발이 있을 것이라면, 창단 자체를 포기하는 게 낫다는 게 KT의 입장인 것으로 안다.”
이 관계자는 “사외이사와 노조 반발이 예상되는 것도 KT가 창단에 소극적인 이유”라고 설명했다. 2007년 KT는 현대 유니콘스를 인수해 프로야구판에 뛰어들려 했다. 당시 KT는 목동구장을 실사하고, 유니폼까지 맞추는 등 현대 인수를 기정사실화했다. 하지만, 사외이사들과 노조의 극심한 반발로 창단을 철회했다.
마지막 이유는 이석채 KT 회장의 창단 의지가 확실하지 않다는 것이다. 수원, 전북이 차례로 KT와 접촉했지만 아직 KT는 프로야구단 창단과 관련해 내부 TF팀도 만들지 않았다. 회장의 창단 의지가 강력했다면 비밀 TF팀이라도 조직됐을 일이었다. 하지만, 이 회장은 프로야구 창단에 대해 일체의 입장도 밝히지 않고 있다. ‘내부적으로 창단 방침을 굳혔다’는 일부 보도와는 전면 배치되는 상황이다.
그렇다고 KT의 10구단 창단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다. KT야말로 여전히 가장 유력한 10구단 창단 기업이다. 10구단 창단 과정에 깊숙이 개입한 모 야구인은 “이동통신업체 가운데 유일하게 KT만 야구단이 없다. SK와 LG가 프로야구단을 통해 홍보와 자사 가치 향상을 꾀하고 있지만, KT는 메이저 스포츠인 야구에서 철저히 배제돼 있다. 이런 상황에서 KT 내부적으로 ‘프로야구단 창단으로 통신업체 간 경쟁구도를 만들자’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으로 안다. 수원과 전북의 접촉에 KT가 순순히 응한 것도 어느 정도 창단 의지가 있기 때문이었다. 만약 수원과 전북이 교통정리만 된다면 두 지역 가운데 한곳에서 KT가 10구단을 창단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귀띔했다.
그러니까 KT의 가장 큰 걱정거리인 ‘정치적 고려’ 문제만 해결된다면 KT가 의외로 쉽게 10구단 창단에 나설 수도 있다는 뜻이다.
KT를 제외하고도 수면 위에 오른 10구단 창단 유력 기업은 2~3개다. 이 가운데 전북은 모 육류 가공업체에 10구단 창단을 타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최대 닭고기 전문업체로 알려진 이 기업은 지난해 3조 5000억 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재계에선 알짜 기업으로 유명하다. 기업 오너가 전북 출신으로, 기업 역시 전북을 기반으로 성장했다.
가뜩이나 이 기업은 최근 전북 익산시 국가식품클러스터 33만㎡ 부지에 닭고기 가공 및 생산시설을 건설하며 전북과 유기적 관계를 맺고 있다. 전북의 10구단 유치위원회에 이 기업 오너가 포함된 것도 주목할 만하다.
만약 이 기업이 10구단 창단을 공식 발표한다면 기존 구단들도 반대 의사를 나타내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9구단을 창단한 엔씨소프트의 매출규모보다 6배는 큰 데다 재무구조 역시 매우 안정적이기 때문이다.
관건은 이 기업의 창단 의지다. 전북 유치위의 핵심 관계자는 “전북 입장에선 이 기업만한 카드가 없다”면서도 “여러 경로를 통해 이 기업에 창단을 권유하고 있지만, 아직 반응은 미온적”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전북에서 파격적인 기업 지원안을 내놓는다면 극적으로 이 기업이 10구단을 창단할 수 있다는 게 전북 유치위의 생각이다.
한편, 수원 역시 여러모로 10구단 창단 기업을 물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전북처럼 눈에 띄는 기업은 없다. 모 건설업체가 창단 의사를 밝혔지만, 수원은 그보다 큰 기업이 창단 주도세력이 되길 원한다.
야구계는 “창단 기업을 먼저 발표하는 쪽이 10구단 유치에 유리할 것”이라며 “늦어도 11월 중순까진 두 지역 모두 창단 기업을 발표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박동희 스포츠춘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