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0월 7일 폴란드와 평가전에서 조광래 감독이 서정진에게 작전 지시하고 있다. 일요신문DB |
# 유럽파 훈련소?
요즘 대표팀의 가장 큰 고민 중 하나는 전력의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유럽파의 부침이다. 중동 원정 엔트리에 발탁된 23명의 태극전사들 가운데 유럽 무대에서 활약하고 있는 멤버들은 7명이다.
하지만 2011~2012시즌 유럽 리그에서 제 몫을 하고 있는 선수들은 그리 많지 않다. 요즘 주가가 폭등한 수비형 미드필더 기성용(셀틱FC)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선수들은 거의 벤치워머로 자리를 지키고 있을 때가 많다.
대표팀 코칭스태프의 고민도 바로 여기서 시작된다. 대표팀 내 에이스인 것은 분명하지만, 정작 소속 팀에서는 극심한 부진에 빠져 있으니 경기력이 항상 걱정스럽다. 여기에 기성용마저 장염 증세로 비상이 걸렸다. 엄청난 이동거리, 과도한 출전시간에 결국 탈이 났다.
정강이 골절을 당한 오른쪽 날개 이청용(볼턴)의 빈자리까지 메워야 하는 대표팀 입장을 볼 때 기성용의 페이스 난조는 달갑지 않은 소식이다.
“유럽파에 대한 신뢰는 변함이 없다. 늘 그래왔듯이 이번 대표단(팀)에서도 잘해 주리라 믿는다”고 강조해온 조 감독도 사석에서 만날 때면 “어떻게 마냥 마음이 편할 수 있겠느냐. 에이스들의 침묵은 분명 우리에게도 큰 손해”라고 말한다.
그래서 요즘 축구계 혹은 각종 축구 게시판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게시물들이 ‘대표팀이 주전 경쟁에서 밀려난 유럽파의 훈련을 위한 트레이닝 센터냐’는 지적들이다. 유럽파에만 특별히 경쟁 없이 태극마크를 달아준다는 일종의 특혜 논란도 종종 빚어진다.
그러나 인정해야 할 부분들도 있다. 잉글랜드 현지에서 들려온 반가운 소식은 극히 적었지만 그간 대표팀의 A매치가 벌어질 때면 항상 중심에 유럽파가 있어왔다는 점이다. 특히 박주영은 지난 6월 이후 치러진 7차례 각급 A매치에서 무려 8골이나 꽂아 넣었다. 지동원과 구자철 또한 꾸준히 모습을 드러내며 좋은 활약을 펼쳐왔다.
# 정해진 주전?
대표팀 명단이 공개될 때마다 불거지는 초미의 관심은 뉴 페이스들의 활약 여부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결국 원점으로 돌아갈 때가 많다. 항상 발군의 기량을 발휘해온 기존의 멤버들이 중심을 이룬다. 한껏 기대했다가 종국에는 ‘그 나물에 그 밥’이란 표현이 괜한 게 아니다. 새로운 선수들에게 주어지는 기회가 지나치게 적다는 지적도 있다.
무수히 많은 새내기들의 승선과 잦았던 실험에 비해 건진 소득이 너무 적다는 분석도 함께 나온다. 굳이 변명을 하자면 과거 감독들에 비해 조광래 감독한테는 선수 발탁과 선수 실험, 조직력 극대화, 신구 조화를 통한 자연스러운 세대교체 등을 동시에 할 시간이 턱 없이 부족하다는 점을 아쉬움으로 꼽을 수 있다.
물론 새내기들의 탄생이 완전히 끊어진 건 아니다. 대표적인 예가 서정진(전북)이다. 서정진은 10월 폴란드 평가전과 UAE와의 월드컵 3차 예선 3차전 홈 경기에서 빼어난 실력으로 당당히 또 한 번 승선의 영광을 누렸다. 여기에 이승기(광주)도 꼽을 수 있다. 이미 조 감독은 이승기를 향해 “볼에 대한 센스가 남다르다. 조금만 다듬으면 크게 성장할 것 같다. 지켜봐도 좋다”고 공언했다. 향후 대표팀 상황에 따라 출전 기회를 노려도 될 만하다. 또 꾸준히 믿음을 받는 이재성(울산)과 풀백 김창수(부산)도 기대를 걸 만한 선수로 꼽힌다.
# 실험 종료 선언 영향은?
조 감독은 중동 원정 명단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앞으로 아주 걸출한 선수가 나오지 않는 한 큰 변화는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실험 종료를 사실상 선언한 셈이다. 물론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될 아시아 최종예선 체제까지로 기한을 정해둔 발언이었으나 더 이상의 체크가 없다는 사실은 다소 의외의 선택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축구인 상당수는 이번 조 감독의 실험 종료 선언이 당분간 조직력을 끌어올리는 데 향후 대표팀 운용의 포커스를 집중시키겠다는 의지로 해석한다.
아시안컵을 끝으로 박지성과 함께 태극마크를 반납한 대형 수비수 이영표는 “항상 어느 대표팀이든 일종의 사이클이 있다. 요즘 부진하다고 외부에서 계속 질타하고 있지만 어차피 수차례 겪을 과정의 일부일 뿐이다. 올라가는 상승 곡선이 있으면 하향세가 언제든 그려질 수도 있다. 전 세계 어디를 봐도 현재 대표팀이 크게 뒤진다고 할 수 없다. 요즘처럼 신구 조화가 탁월하고 거의 완벽하게 이뤄지는 경우는 없었다”고 긍정론을 피력했다.
다만 사령탑의 ‘실험 종료’ 선언이 자칫 현 선수들의 해이한 마음가짐, 곧 좋지 못한 경기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함께 나온다. 더욱이 K리그에서 좋은 플레이를 하고도 더 이상 태극마크를 달 수 없다는 사실로 인해 선수들의 사기 저하까지 가져올 수 있다.
조광래호에 승선했던 아무개 선수는 “더 이상 대표팀 선발이 어렵다면 어디서 동기부여를 가져오겠느냐”며 불평을 토로했다.
남장현 스포츠동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