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1월 30일 서울 대치동에 위치한 하이마트 빌딩에서 하이마트 경영권과 관련해 주주총회를 가졌다. 김미류 기자 kingmeel@ilyo.co.kr |
유진그룹 측은 “합의 과정 중에 봉합보다 그 이후에 대한 우려가 많았다”며 “서로 감정적으로 치달으며 너무 골이 깊어 이런 동거가 오래 지속될 수 없다는 것과 유진과 선 회장 모두 책임 있는 경영자로서의 신뢰가 훼손된 상태라는 데 의견을 같이 했다”고 밝혔다.
이 같은 일을 예상한 사람은 드물었다. 전날 주총 직전까지만 해도 유진그룹 측과 선종구 회장 측이 서로 으르렁거리며 경영권 다툼을 벌여왔고 주총 시작 5분 전에야 극적으로 합의했다며 앞으로 잘해나갈 것을 다짐했던 터다.
당장 하이마트 임직원들과 주주들의 반응이 험악하다. 주총 시작 직전까지도 유진그룹과 하이마트가 서로 경영권 다툼에 목숨을 건 듯한 모양새를 띠었다. 양측은 일간지에 전면광고를 게재하면서까지 각자 입장의 당위성을 역설했다. 더욱이 이번 매각 결정이 주총 직전 각자대표체제와 함께 합의한 사안이라는 것이 알려지면서 주주들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1일 한 하이마트 주주는 “어제까지 하이마트에 목숨 걸 것처럼 하더니 하루 자고 나서 같이 판다? 이건 시장과 주주, 직원, 그리고 고객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라고 성토했다. ‘선종구 회장의 배신’, ‘뒤통수치는 처사’ 등 주주들 사이에선 막말들이 쏟아졌다.
임직원들도 마찬가지다. 선종구 회장을 비롯한 하이마트 경영진의 경영권을 지키기 위해 임직원들은 사직서까지 써가며 배수진을 쳤다. 그런 노력들이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된 것이다. 하이마트의 한 관계자는 “소식을 듣고 나서 아노미에 빠졌다”며 “또 다시 같은 사안이 벌어지면 임직원들이 행동을 같이 하게 될지 의문”이라고 털어놨다. 임직원들은 무엇보다 선종구 회장에 대한 신뢰가 와르르 무너졌다고 한다.
그렇다면 유진그룹과 하이마트는 이미 다 합의한 사항에서 왜 각자대표체제만 발표하고 매각 결정은 숨겼을까.
이에 대해 유진그룹 관계자는 “유진기업과 하이마트가 상장사라 공시 등 법률 검토가 필요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발표하는 것마저 법률 검토 과정이 필요한지는 의문이다. 각자대표체제와 함께 이번 사태에 책임을 지고 매각할 것을 합의했다고 발표하는 것은 문제가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이 관계자는 “주총 직전이라 물리적인 시간이 부족했다”고 덧붙였다.
매각이 쉬울지도 의문이다. 경영권 때문에 피터지게 싸운 광경을 목격한 터에 누구 하나 새로운 주인이 되겠다고 나서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설사 새로운 주인이 나타난다고 해도 하이마트 현 경영진이 지금처럼 경영권을 보장해달라고 하지 않으리라는 법이 없다. 선종구 회장이 지분을 전량 매각했다는 이유로 경영권을 순순히 넘겨준다면 이 또한 경영권을 지키려 했던 임직원들에 대한 배신이 된다.
유진그룹도 비판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 매각이라는 방법으로 짐을 벗으려는 것은 무책임한 처사라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이번 사태는 먹고 나니 소화가 되지 않아 토해낸 꼴”이라고 평가했다.
임형도 기자 hdli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