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지영 대표는 SNG ‘타이니팜’ 등을 선보이며 스마트폰 게임시장에서 눈에 띄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우태윤 기자 wdosa@ilyo.co.kr |
“어렸을 적 시골 오락실은 입구에 항상 커튼이 쳐 있고 열어보면 어두컴컴한, 궁금하긴 한데 차마 들어가 보지 못하는 그런 곳이었습니다.”
1975년 밀양에서 태어난 박지영 대표와 게임, 첫 만남의 추억이다. 그런 게임의 이미지는 그가 중학교 3학년 때, 그의 언니가 대학 전산과에 입학하면서 달라졌다.
학업에 열중하며 가끔 게임으로 스트레스를 풀던 여고생은 게임이 준 영감을 따라 고려대학교 컴퓨터학과에 입학한다. 그리고 신입생 시절 한 게임으로 인생의 전환점을 맞는다.
“‘버추어 파이터 3D’가 나왔는데 굉장히 충격적이었어요. 수업시간에 배우는 입체(3D) 이미지라고 해봐야 공 만들어 굴리고 네모 옮기는 정도에 불과했기 때문이죠. 아, 3D를 잘하면 이런 걸 할 수 있구나. 희열을 느꼈죠. 강의 중간 10분 쉬는 동안 오락실로 뛰어 나가 구경하고 공강시간엔 살다시피 했습니다. 대학 동기이자 남편인 이영일 컴투스 부사장도 오락실에서 게임 하다가 친해졌어요.”
1996년 4학년 때 박 대표는 이영일 부사장 등 셋이 각각 500만 원씩, 1500만 원으로 창업한다. 처음부터 게임 회사는 아니었다. 당시 일반화된 PC통신 관련 사업을 펼쳤다. 그러나 성과는 좋지 않았다. 그러다 유행하던 ‘디디알’(DDR, 음악과 함께 모니터를 보고 센서 판을 밟으며 춤추는 게임)에서 아이템을 얻는다.
“집 PC에 연결해서 즐길 수 있는 장판 형태의 센서 판 한 번 만들어보자고 했죠. 시제품 평이 좋아 자재 사서 외주 공장에서 양산 들어갔는데 중국에서 9000원짜리 패드가 밀려들어오는 거예요. 우리 건 9만 원이었는데…. 공장하고 트러블도 있었고. 그때 2억 원 넘는 빚을 졌어요.”
DDR에 끌려 다니던 와중에 박 대표 팀은 무선인터넷이 상용화된다는 정보를 입수한다.
“PC통신 사업에 실패하면서 배운 건 사람들이 돈을 쓸 데 쓴다는 거였어요. 돈을 써서 돈이 되는 거와 엔터테인먼트. 게임이 돈을 벌 거라는 걸 확신했습니다. 중요한 건 아이디어와 속도였죠. 곧바로 게임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1999년 8월 ‘퀴즈’ ‘심리테스트’ ‘오목’ ‘다마고치’ 등 컴투스의 첫 작품이자 국내 첫 모바일게임이 무료 서비스를 시작했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곧 이동통신 3사가 모두 서비스를 시작했다. 2000년 등장한 컬러 단말기용 게임 ‘춘추열국지’는 첫 달 매출이 2000만 원이나 됐다. 그런데 통신요금이 문제였다.
“어떤 유저는 데이터통화료가 100만 원을 넘었죠. 이런 구조로는 시장이 크지 못하겠다고 생각할 즈음 휴대폰에 다운받아 즐길 수 있는 서비스(JAVA·자바)가 소개됐습니다. 곧 세계 최초로 자바 게임을 론칭했습니다. 야구 고스톱 게임이 그 때 나온 거죠.”
모바일 게임 사업이 본격화하면서 박 대표는 창투사로부터 40억 원을 투자받아 인력을 대폭 충원하고 연구개발에 들어갔다. 그러나 시장은 장밋빛으로 성장하지는 않았다. 2002년 큰 위기가 찾아온 것이다.
“경쟁사가 갤러그를 들여오며 업계 1위를 빼앗겼습니다. 강력한 브랜드에 맞서려면 그에 걸맞은 브랜드를 내세워야 했죠. 우린 테트리스에 사운을 걸었어요. 라이선스를 받고 나서 개발하면 몇 개월 손해니까 관련 게임 3종을 먼저 개발해 놓고 혈혈단신 계약하러 갔습니다. 당시 은행 잔고도 거의 다 떨어져 빚내서 계약금 준비할 정도로 배수진을 치니 되더군요. 그때 안 됐다면 회복하기 힘든 타격을 입었을 겁니다.”
‘모바일 테트리스’와 함께 ‘붕어빵타이쿤’ 등 전 작품이 히트를 치며 2003년 모바일 게임업계 최초로 매출 100억 원을 넘겼다. 기쁨도 잠시. 2004년 상장에 실패하면서 컴투스는 어려움을 겪는다. 그러나 구조조정 속에서 되레 직원들은 결속력을 다져 ‘미니게임천국’ 시리즈 등을 히트시키며 2007년 상장에 성공했다. 이제 2012년이 밝았다. 컴투스에겐 새해가 대목이다. 지난 연말에서야 스마트폰 앱스토어 게임 카테고리가 열렸기 때문이다.
“지난해 스마트폰이나 해외매출 비중이 올라간 반면 일반 피처폰은 빠르게 축소됐습니다. 무엇보다 경쟁이 치열한 상황에서 우리 콘텐츠 경쟁력을 입증한 한 해였죠. 지난해 발표한 ‘타이니팜’ 외에 올해 SNG(Social Network Game) 타이틀 두 개를 더 발표합니다. 이를 통해 명실공히 SNG 회사로 자리매김하는 해가 될 겁니다.”
박 대표의 꿈은 “매출 수조 원대의 세계적 회사들과 경쟁해 최고의 글로벌 모바일 게임 회사로 우뚝 서는 것”이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 ‘배틀’은 시작됐다.
이성로 기자 roilee@ilyo.co.kr
1. 실패 속에서 배워라. 성공할 수 있는 이유보다는 실패할 이유가 더 많다. 실패 자체가 중요한 경험이다. 같은 실패를 반복하지 않도록 답을 찾아라.
2. 좋은 파트너를 구하라. 위대한 천재가 아닌 이상 한 사람이 항상 옳은 결정을 할 수는 없다. 이를 보완할 수 있는 파트너, 충분히 자기 의견을 내면서 현명한 결정을 할 수 있는 팀을 구성하라.
3. 포기하지 말라. 계속 실패하더라도 성공할 때까지 하면 된다. 인생은 정말 긴 싸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