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단대회 시즌이다. 프로기사가 되고자 하는 기재들, 바둑 입신양명을 꿈꾸는 준재들이 웃고 우는, 이를테면 바둑 동네의 대입시 철이다. 입단대회 요강이 좀 바뀌었다. 지난해까지는 한 번에 한두 명씩, 몇 차례에 나누어 모두 11명이 ‘바둑 고시를 패스’했다. 올해부터는 한 명이 늘어난 12명을 통과시키는데, 종전처럼 찔끔찔끔 뽑지 않고, 시험 횟수를 줄인다. 지난 15일에 끝난 올해 입단대회에서는 한꺼번에 7명이 프로 초단의 영광을 안았다.
입단 문호를 넓히라는 줄기찬 요구를 1차 반영한 것이 이번에 바뀐 요강이다. 늘어난 숫자는 하나에 불과하지만, 한 번에 많이 뽑아 차점 탈락자를 줄이는 것으로 문호 확대의 간접효과를 기대한 것. 예컨대 2명을 뽑는다면 3등을 해도 탈락이고, 다음을 기약해야 하는데, 그것이 입단 대기자 적체 요인이 된다. 게다가 이번에 3등으로 떨어진 응시자가 다음에 꼭 1~2등을 차지한다는 보장이 없다. 차점 탈락이라는 불운의 징크스라는 게 있는 것.
이상헌(24) 정두호(20) 민상연(20) 박경근(20) 김원빈(19) 강병권(20) 변상일(15). 이들이 이번에 입단한 얼굴들이다. 갓 스무 살이 된 동갑내기들이 과반이고, 이상헌이 최고참, 변상일이 최연소다. 이상헌 강병권 김원빈 민상연은 충암도장, 정두호는 양천대일도장, 박경근은 장수영도장에서 갈고닦았고, 변상일은 진주에서 문명근 9단의 지도를 받다가 서울로 올라와 골든벨도장에서 공부했다.
허장회 최규병 양재호 유창혁 도장이 통합한 매머드급 충암도장이 역시 가공할 저력을 발휘하고 있는 셈이다. 장수영 도장과 양천대일, 골든벨이 충암의 거센 파도를 뚫고 있는 모습도 인상적이다. 특히 프로기사가 아닌, 김희용 원장이 운영하는 양천대일이 그렇다. 상상을 뛰어넘는 김 원장의 열정, 양천대일의 스파르타 훈련은 유명하다.
이상헌은 몇 년 전부터 입단 후보 1순위로 꼽힌 실력에 2009~2010년 국가대표로 세계아마대회에 출전했던 스타였음에도 그동안의 대회에서는 전승으로 잘나가다가 종반에 뼈아픈 1패를 당하고, 그러다 동률이 되고, 어찌어찌 하다가 탈락하기를 거듭해 차점 탈락 징크스에 여러 번 분루를 삼켰다. 올해도 그랬다. 6연승인가 질주하다가 뜻하지 않은 곳에서 일격을 맞았다. 그게 컸고 아팠다. 본인도, 응원석에도 “아~ 올해도 전철을 밟는 것 아닌가” 싶었고, 차점 탈락의 악몽을 떠올렸다. 다행히 악몽의 징크스는 더 이상 이상헌을 물고 늘어지지 않았다. 잘생기고 심성이 반듯한 청년. 성적도 내겠지만, 그걸 떠나서라도 바둑계에서 뭔가 의미 있는 역할로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
정두호와 민상연도 아마 시절 경력이 화려한 청년들. 정두호는 아마추어에게도 출전을 허락한 삼성화재배 LG배 BC카드배 등의 프로-아마 오픈전에서 맹활약했고, 민상연은 아마국수를 역임해 입단 전까지 ‘민 국수’로 불렸다.
정두호는 부친도 대단한 사람이다. 국내에서 바둑 서적을 가장 많이 갖고 있다고 한다. 아들을 공부시키려고 구입, 수집하다가 본인이 마니아가 되어 버린 것. 우리나라에서 바둑책을 많이 소장한 사람은 현재 강원도 바둑협회장을 맡고 있는 강릉의 고광록 변호사인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자타가 공인하는 ‘바둑 소장품’ 부문의 전문가 박성균 아마7단의 말에 따르면 “실제로는 두 사람이 난형난제, 쌍벽이다. 정 군 아버지의 경우 중국 같은 곳에 여행을 갔다 올 때 보니 다른 짐은 하나도 없고 트렁크 가득, 배낭 하나 가득, 그게 전부 바둑책이었다”는 것이다. 박 7단의 말이니 틀림없을 것이다.
스무 살 청년들 말고는 변상일이 눈에 띈다. 나이 때문이다. 요즘 같은 판도에서는 나이가 어리면 일단 유리하다.
이세돌 다음은 박정환, 이건 중론이다. 그러면 박정환 다음은? 사람들은 재작년에 입단한 나현 초단(17)과 작년에 등단한 이동훈 초단(14)을 거명한다. 역시 어리기 때문이다. 이동훈은 이제 중학생인데, 몸이 너무 가늘어, 야아 저런 얘가 바둑을 그렇게 잘 두나 할 정도다. 아니다, 나현도 그렇거니와 날렵한 외모와 날카롭게 반짝이는 눈빛이 천재성을 말해 준다고도 한다.
아무튼 그런 견지라면 변상일도 나현-이동훈 계보에 속할 수도 있을 것처럼 보인다. 모두들 한창 크는 사춘기 소년들이라 앞으로 성인이 되고 나이를 먹고 하면 외모가 어떻게 바뀔지 모르지만, 변상일은 나현이나 이동훈처럼 호리호리하지는 않다.
스무 살 청년들은 지금부터가 시작이다. 입단하면 누구나 1~2년은 빛을 발한다. 그러나 그게 잠시 반짝하는 것인지, 타이틀 홀더로까지 가는 것인지는 장담할 수 없다. 시간은 금방 지나간다. 시간을 끌면 후배가 나를 앞질러 달려간다.
▲ 초등학교 6학년 신진서(왼쪽)와 중학교 1학년 신민준. 금명간 입단이 유력한 천재들이다. |
신민준은 신진서보다 한 살 위. 역시 진작부터 아버지와 아들이 프로가 되기로 작심한 경우다. KBS-TV 드라마 <명성황후> <무인시대> <천추태후> 등을 연출했던 신창석 PD가 아버지다. 본인이 열렬 바둑팬이고 신민준이 초등학교 저학년이었던 시절부터 아들의 손을 잡고 고수들을 찾아다닌 사람이다.
변상일과 신진서와 신민준은 어린이 대회 최고봉인 ‘대한생명배 세계어린이 국수전’ 우승자라는 공통점이 있다. 신진서와 신민준이 왜 주목되느냐? 말의 반복인데, 프로를 지망하는 준재들이기 때문이다. 금명간 입단할 것이 유력시 되거니와 게다가 신진서와 신민준은 바뀐 입단대회 요강, 15세 이하 영재 입단의 혜택을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지옥의 랠리’로 불리는 입단대회를 거치지 않고 프로가 될 수 있는 것.
변상일에 이어 신진서와 신민준까지 입단한다면 바둑계 ‘어린 천재들의 전쟁’은 정말 볼 만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쨌거나 바둑계의 아버지들, 아들을 프로기사로 키우려는 아버지들은 앞으로 점점 더 힘들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저런 집념으로 저렇게 뒤를 밀어주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인가. 정열과 돈과 건강과 지식과 대인관계, 이런 것들을 전부 겸비해야 할 테니까 말이다.
이광구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