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년 만에 국내 리그에 복귀한 김병현. 홍순국 사진전문기자 |
#풍운아 13년 만의 ‘귀향’
“정말?”
김병현의 넥센 입단 소식이 알려지며 야구계 인사들은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김병현 자신이 넥센 입단을 강력하게 희망하지 않았고, 넥센도 김병현 영입을 공개적으로 진행하지 않았다. 여기서 잠시 김병현이 걸어온 길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1999년 애리조나에 입단해 보스턴 레드삭스, 콜로라도 로키스, 플로리다 말린스,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등에서 9시즌 동안 394경기 54승 60패 86세이브 평균자책 4.42를 기록한 김병현은 메이저리그를 대표하는 마무리 투수였다. 2001년 애리조나에서 뛸 때 한국 선수 최초로 월드시리즈 무대에 나서 챔피언 반지를 끼었고, 2004년 보스턴에서 한 번 더 우승을 거머쥐었다. 내셔널리그, 아메리칸리그에서 동시에 월드시리즈 우승을 경험한 아시아 투수는 당시로선 김병현이 유일했다.
하지만, 빅리그 마운드를 호령하던 김병현의 활약은 2008년 이후 중단됐다. 2007시즌을 끝으로 어느 팀과도 계약하지 못한 채 미아로 남았다. 2008, 2009년을 허송세월로 보낸 김병현은 2010년 5월 미국 독립리그인 골든베이스볼리그 오렌지 카운티에 입단했다. 하지만 독립리그는 한계가 있었다. 리그 수준은 둘째치더라도, 그간 풀어진 몸을 담금질할 만한 여건이 되지 않았다. 당장의 실전투구보다 재활이 급했던 김병현은 결국 독립리그를 나와 일본 무대로 눈을 돌렸다.
마침 마무리가 필요했던 라쿠텐은 잇달아 외국인 투수들의 입단이 무산되자 김병현을 영입 후보로 올렸다. 구단 내부에선 “몇 년간 쉬는 통에 정상적인 투구가 어려울 것”이란 비관적 전망이 우세했지만, 스카우트팀의 적극적인 권유로 라쿠텐은 김병현을 영입했다.
스프링캠프 때만 해도 라쿠텐 코칭스태프는 호평 일색이었다. 호시노 감독은 “3년간 쉰 선수의 몸이 이렇게 좋을 수 있느냐”며 “2군에서 착실히 몸을 만들면 시즌 후반부터 1군에서 요긴하게 쓸 재목”이라고 평가했다.
김병현도 열심히 했다. 라쿠텐 관계자들은 “메이저리거였을 당시 대단한 사고뭉치라고 들었으나, 훈련하는 걸 지켜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며 “역시 큰물에서 뛰던 선수는 달라도 한참 다르다”고 극찬했다.
그러나 김병현은 한번도 1군 무대에 서지 못했다. 라쿠텐 관계자는 “김병현보다 뛰어난 외국인 마무리 투수가 있어 어쩔 수 없이 1군 승격이 좌절된 것”이라고 설명하면서도 비보도를 전제로 “2군 코칭스태프의 평가가 매우 좋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이 관계자는 평가가 좋지 않았던 이유로 2군 코칭스태프와 김병현의 갈등 관계를 꼽았다.
실제로 김병현은 시즌 중반 2군에서 호투를 거듭했지만, 2군 코칭스태프는 선수평가서에서 매번 ‘아직 1군 무대에 설 정도의 투구는 아니다’라는 부정적 의견을 내놨다.
애초 김병현을 영입할 때 2011년을 재활기간으로 잡고 2012년부터 1군 무대에 투입하려던 라쿠텐은 각종 부정적 평가가 제기되자 김병현과의 재계약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였다. 김병현 역시 부당한 평가에 마음이 상했는지, 미련 없이 짐을 꾸려 일본을 떠났다.
#이장석이 밝히는 계약 뒷얘기
▲ 김병현을 영입한 이장석 넥센 사장. |
이 사장은 2009년부터 김병현을 영입하려고 비밀리에 움직였다. 2010년엔 연락처를 수소문해 직접 연락을 취하기도 했다. 당시 김병현과의 통화에 성공한 이장석은 “다시 전화를 주겠다”는 김병현의 말만 믿고, 몇 날을 기다렸다. 하지만 전화는 오지 않았다. 자존심에 상처를 입을 법도 했지만 이 사장은 김병현 영입을 포기하지 않았다.
18일 목동구장에서 만난 이 사장은 “김병현이 우리 팀에 꼭 필요한 선수이기 때문에 결코 포기할 수 없었다”고 털어놨다.
“2008년 창단 후 지난해까지 히어로즈는 경영정상화에 초점을 맞췄다. 그러다보니 팀 성적에 다소 무관심한 것처럼 비쳤다. 하지만 지난 시즌 적자폭을 상당히 줄이면서 올 시즌부터 팀 성적 향상을 화두로 삼았다. 김병현 영입은 FA(자유계약선수) 이택근 영입에 이어 히어로즈의 상위권 진출을 위한 두 번째 프로젝트다.”
그렇다면 2009년부터 시도했던 김병현 영입이 2012년에야 이뤄진 배경은 무엇일까. 이 사장은 “김병현이 우리의 영입 제안을 선의로 받아들였기에 가능했던 일”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12월 구단 부사장이 김병현과 연락을 취하며 입단을 적극적으로 권유했다. 다행히 우리 쪽에서 연락을 취했을 때 그도 어느 정도 국내 무대에서 뛰겠다는 결심을 굳힌 것 같았다. 걸림돌은 거의 없었다. 몸값 문제를 두고 다소 이견이 있었으나 처음부터 김병현이 많은 돈을 요구하지 않아 쉽게 해결하면서 17일 오후 계약에 최종 합의했다”고 밝혔다.
야구계 일부는 “넥센이 김병현을 트레이드 카드로 활용할 것이다” “넥센이 김병현을 고향팀 KIA로 보내고, KIA 주력선수를 받는 재트레이드를 추진할 것”이란 예상을 내놓기도 한다.
이런 관측에 대해 이 사장은 신중한 표정으로 “김병현 트레이드? 그렇진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계약 협상 당시 김병현이 ‘넥센 입단 후 국내 구단으로의 트레이드를 원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를 사장인 내가 적극 수용하기로 했다. 그런 의미에서 김병현 트레이드는 글쎄, 그렇게 되지 않을 것 같다.”
이 사장이 ‘절대 트레이드는 없다’ 대신 ‘그렇지 않을 것 같다’는 다소 유보적인 단어를 쓴 건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이 사장은 “김병현이 KIA로 갈 확률은 0%”라고 못박아 항간의 KIA 재트레이드설이 낭설임을 강조했다.
박동희 스포츠춘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