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승 행진을 하며 1위를 달리는 수원 삼성의 윤성효 감독. 윤 감독은 “계속 이렇게 갔으면 좋겠다”며 밝은 미소를 보였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
―지난해 K리그는 물론, FA컵과 AFC챔피언스리그에서 실패하는 바람에 한 개의 우승컵도 들어 올리지 못했다. 그 한이 올해 조금씩 풀리고 있는 것 같다.
▲아직은 단정 지어 말하기 어렵지만 계속 이렇게 갔으면 좋겠다(웃음). 스코어가 재미있다. 부산과의 개막전에선 1-0, 인천과의 숭의전용구장 개장전에선 2-0, 그리고 강원전에서 3-0으로 이겼다. 매 경기마다 1점씩 추가하면서 상승세를 이어갔다. 제주전에서 4-0으로 이겼으면 하는 바람이지만, 그게 현실적으로 가능하겠나.
―경기를 보면서 지난 시즌을 마치고 ‘칼’을 많이 간 듯한 느낌이 들었다.
▲많이 힘들었다. 지도자 생활하면서 처음으로 사지에 몰린 기분이었다. 무엇보다 자존심이 크게 상했다. 수원삼성 코치 시절부터 숭실대 감독까지 해마다 우승컵을 품에 안았다. 그런데 지난해 처음으로 빈손인 채 시즌을 마쳤다. 물론 분명한 이유는 있다. 공격 자원의 부족과 부상, 그리고 대표팀 선수 차출 등으로 베스트11을 제대로 가동조차 못했다. 그래도 변명하기 싫었다. 팬들의 비난도 올곧이 받아들였고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 빠르게 움직였다. 가장 먼저 경찰청에 입단한 염기훈의 자리를 대신할 외국인 선수 영입을 위해 스카우터를 3개월가량 브라질로 보냈다. 그래서 얻은 선수가 에벨톤이다.
▲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
▲라돈치치에 대해선 여러 가지 반응이 나왔다. 워낙 오랫동안 한국 생활을 한 덕분에 ‘꾀병’이 많은 선수다, 다루기 힘든 선수다, 한번 ‘필’ 받으면 그만한 공격수도 없다는 내용들이다. 그러나 아무리 다루기 어려운 선수라고 해도 난 감독이고 그는 선수다. 훈련이나 경기 중에 불성실한 태도를 보일 경우 게임에서 제외시키면 그만이다. 라돈치치와 처음 만났을 때 분명히 해둔 말이 있다. 이전 팀에서 했던 나쁜 행동을 삼성에서 계속 한다면 경기에 나갈 수 없을 것이라고. 그래서인지 라돈치치가 완전히 달라졌다. 코치들이 쉬게 하려고 해도 더 연습해야 한다며 휴식을 거부한다고 들었다. 자기가 쉬면 감독이 게임에 안 내보낼지도 모른다면서. 아무래도 스테보의 존재가 라돈치치한테 경쟁심리를 심어주는 것 같다.
―2010년 6월에 부임했으니까, 시즌을 제대로 치른 건 작년이 처음이다. 부임 첫 해, 팬과 여론과 ‘밀월관계’를 이뤘다면 지난해에는 참 많이 부대낀 시간들이었을 것 같다.
▲경기 잘 풀리고 성적이 좋으면 문제가 될 일도 문제없이 지나간다. 그러다 성적이 좋지 않으면 문제가 안 될 일도 문제가 되는 게 이곳의 생리인 것 같다. 수원삼성에서 코치 생활을 했지만 갑자기 감독으로 부임하게 되면서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첫 해에는 전임 감독이 만들어 놓은 틀을 크게 흔들 수가 없었기 때문에 일단은 변화보다 유지를 해나가자고 생각했고, 작년부터가 개인적으로는 첫 시즌이라고 여기며 준비했던 게 외국인 선수 영입부터 틀어지면서 계속 엇박자가 난 것 같다. 한마디로 우왕좌왕의 연속이었다.
―특히 지난해 승부조작 사건이 일어났고 소속팀 선수인 최성국 선수가 옷을 벗게 되면서 치명타를 입은 부분도 컸다. 최성국은 FA가 되면서 윤 감독이 직접 영입한 선수라 더더욱 큰 충격을 안겨줬을 텐데.
▲정말 엎친 데 덮친 격이었다. 이럴 수가 있나 싶을 정도였다. 사건은 6월에 터졌지만 소문은 4월부터 계속 있었다. 선수를 불러다놓고 직접 물어볼 수도 없고, 그렇다고 해서 누굴 의심할 수도 없고…. 그래도 들리는 말이 있어서 물어보면 다들 아니라고 하고…. 4월부터 3개월가량 정말 힘들었다. 시즌 초반만 해도 4승1무로 1위를 내달리다가 그 얘기가 흘러나오면서 하루아침에 팀이 무너져 내렸다. 1무6패를 했으니까. 지도자 생활하면서 항상 순탄하게 지내왔다. 우승 경험하기가 어려웠던 숭실대를 맡아서 서울 대회까지 포함해 모두 12번을 우승시켰다. 탄탄대로를 달리는 듯하다가 프로 와서 흔들리게 된 것이다. 굉장히 쓴 경험들이었는데, 올해 그 경험들이 제발 도움이 돼 나타나기만을 바랄 뿐이다. 그래야 허탈하지 않을 테니까.
―여러 가지의 비판들 중 ‘이건 정말 억울했다’하는 내용이 있나.
▲지난해 부산과 6강 플레이오프를 할 때이다. 당시 스테보가 징계를 받는 바람에 경기에 출전하지 못했다. 공격수로는 (하)태균이 한 명밖에 없었다. 공격축구를 하고 선수를 교체하려 해도 뛸 만한 선수가 없었다. 팬들은 수비축구를 한다면서 비난을 가했지만 그건 우리 팀 사정을 너무 모르고 하는 얘기로 들렸다. 그때부터 마음 속으로 칼을 갈았다. 적어도 올해에는 그런 비난을 받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윤성효 감독이 지난해 FC서울과의 경기에서 승리한 후 경기장을 나서고 있다. 사진출처=수원 삼성 |
▲글쎄, 내가 차 감독님 밑에선 코치도, 선수 생활도 안 해봐서 그 분의 축구 철학이 어떤지 확실히 말씀드릴 수가 없다. 김호 감독님과는 어느 정도 비슷한 부분이 있다. 세밀한 패싱 게임을 즐기는 부분은. 그런데 이 또한 정답이 아니다. 가장 중요한 건 선수들이 감독의 생각을 얼마만큼 경기장에서 풀어내 보이는지의 여부다. 선수들의 마음을 사는 것도 감독으로선 중요한 일인 것 같다. 지난해 우리가 ‘롱볼축구’를 선보였다며 비난을 하신 분들이 많았다. 그런데 난 그런 축구를 싫어한다. 하지만 선수들이 그런 플레이를 했다면 그 또한 내 책임이다. 내가 선수들의 마음을 사지 못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경기가 열릴 때마다 감독들의 수 싸움이 치열하다. 그동안 경험해 본 바에 의하면 어느 감독과 맞붙었을 때 가장 머리를 쥐어 짜게 되나.
▲평소 친분이 두터운 감독들과 경기할 때가 제일 힘들다. 이기면 이긴 대로, 지면 진 대로, 마음이 복잡 미묘하다. 최근 강원FC와 경기를 벌였다. 강원의 김상호 감독과는 포항에서 선수 생활할 때 룸메이트를 했을 정도로 친하고, 1년 후배다. 서로 프로팀 감독이 돼서 넥타이 매고 벤치에 앉아 있게 됐는데, 1, 2점도 아닌 3-0으로 대승을 거두다보니 김 감독 얼굴 보기가 미안해지더라. 친한 사람들끼리 이렇게 해야 하나 싶기도 하고. 그런 게 어색하고 불편하다. 인천전은 스승님과의 경기였다. 허정무 감독이 포함을 맡고 계셨을 때 선수 생활을 했기 때문이다. 포항 황선홍 감독과도 선수 시절 인연이 깊고…. 전북 이흥실 감독대행과는 1년 위 선배인데다 이미지가 비슷해서 친하게 지낸 바 있다. 다 마음에 걸린다. 안 걸리는 팀이 없다. 그런데 그래도 내가 이겼으면 좋겠다(웃음). 진 경험은 작년에 할 만큼 해봤다.
―요즘 K리그 용병들 사이에선 귀화 바람이 불고 있는 것 같다. 라돈치치도 귀화 의사를 밝혔는데, 귀화한 외국인 선수의 대표팀 발탁에 대해선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궁금하다.
▲그건 대표팀을 맡고 계신 최강희 감독님이 선택하실 문제가 아닌가. 귀화를 희망하는 외국인 선수들은 한국 선수들이 갖고 있지 않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 그런 선수들이 대표팀에 들어가서 장점을 극대화한다면 분명,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본다.
―별명들이 재미있다. ‘스라소니’ ‘세제믿윤’ ‘윤잔디’ 등이다. 혹시 이 별명들을 다 알고 있나.
▲‘스라소니’는 오래 전부터 들어왔던 별명이고, 윤잔디는 지난해 성남 경기에서 잔디 문제를 거론할 걸 빗대어 생긴 별명이라고 알고 있다. 그런데 ‘세제믿윤’은 도대체 무슨 뜻인가?
―‘세상에서 제일 믿음직한 윤성효’라는 뜻이다.
▲하하, 진짜 재미있는 별명이다. 일단 좋은 의미인 것 같아 기분은 좋다. 차가워 보이는 인상 때문에 팬들이 가깝게 다가오지 못한 부분이 있지만, 마음은 절대 그렇지 않으니 앞으로 재미있는 별명을 많이 붙여주셨으면 좋겠다. 전북은 ‘닥공’이고, 울산은 ‘철퇴’ 축구를 한다는데, 수원의 축구는 무슨 축구로 이름지어야 하는지, 팬들의 의견을 기다리고 있다고 전해 달라(웃음).
인터뷰를 마치고 윤성효 감독의 뇌구조 연구에 들어갔다. 그의 머릿속에 어떤 고민들이 똬리를 틀고 있는지 분석을 시작했다. 한참 고민을 하던 윤 감독이 독백하듯이 읊어댄다.
첫 번째가 3월 24일 제주전의 전력 구상이었다. 만만치 않은 상대인 제주를 상대로 어떤 전술을 사용해야 할지, 계속 생각 중이라고 한다. 두 번째가 선수들에게 긴장감 조성하기였다. 3승을 거두며 순항하는 상황에서 자칫 잘못하면 선수들이 자만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안타깝게도 지난 24일 제주에 패하며 연승 행진도 멈췄다). 세 번째가 미국 시애틀에서 유학 중인 아들, 딸 윤수근, 윤혜경에 대한 걱정이었다. 치안과 건강에 대한 염려가 끊이질 않는 아버지였다.
네 번째가 웃긴다. 윤 감독의 머리는 헤어젤과 스프레이가 없는 세상에선 살 수가 없는 직모다. 경기 때마다 선수단 운전기사가 윤 감독의 전용 미용사가 돼 그라운드의 ‘차도남’ 이미지를 만들어준다고 한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코치들 사이에서 퍼머를 해보는 게 어떠하냐는 건의가 들어왔단다. 그래서 그는 ‘퍼머를 할까? 말까?’를 두고 고민 중이다. 마지막 다섯 번째는 ‘시합 끝나고 뭐할까?’다. 경기 끝나고 놀고 싶은 건 감독이나 선수나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윤 감독의 머릿속에선 ‘산에 갈까? 낚시를 할까?’로 갈등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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