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허정무 인천 감독이 2010년 8월 취임 이후 1년 8개월 만에 자진 사퇴를 선택했다. 일요신문 DB |
그러나 인천에서의 시간은 허 전 감독한테 쉽지 않은 나날이었다. 유쾌함과도 거리가 꽤 멀었다. 오히려 축구 지도자로서 입을 수 있는 상처와 멍에를 모조리 뒤집어썼다.
작년 한바탕 K리그를 휘몰아쳤던 승부조작 광풍을 고스란히 직면했다. 젊은 골키퍼 고 윤기원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시작된 사태는 “인천이 가장 승부조작이 심했는데, 별 탈 없이 끝났다”는 확인되지 않은 루머들로 이어졌다. 작년 시즌 상반기까지 그럭저럭 끌고 갔던 성적은 후반기 들어 곤두박질쳤다.
인천 서포터스의 행태도 옳지 않았다. 가장 든든한 우군이 돼야 할 그들은 원색적인 비난과 막말을 퍼붓는 데 그치지 않고 사퇴 시위까지 했다. 마음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팀 내 주전 스트라이커로 이름을 날린 유병수도 이 과정에서 사우디아라비아로 떠났다.
▲ 허 감독은 각종 악재로 간판 공격수 유병수(오른쪽)도 떠나보내야 했다. 일요신문 DB |
고위층은 허 전 감독을 돕기는커녕, 끊임없이 갈등을 불러일으켰다. 정치적인 인사와 허술한 경영으로 질타를 받아왔던 대전 시티즌과 전혀 다를 바 없었다. 아니, 오히려 더 심할 정도였다. 특유의 낙하산 인사는 끝이 없었다. 인천의 최근 상황을 꾸준히 지켜본 많은 축구인들은 “인천은 잘 되지 못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고개를 저었다. 최승열 단장과 인천시축구협회장을 놓고 갈등을 빚던 조건도 사장이 인천 구단으로 오면서 사태는 극에 달했다. 허 전 감독도 향후 거취를 본격적으로 고민하기 시작한 시점도 바로 이 즈음이었다. 항상 자신의 양복 상의에 사직서를 넣고 다녔다고 한다. 주변 압력을 이기지 못한 조 사장이 물러나면서 잠시 안정이 찾아오는 듯했지만 이번에는 선수단의 임금 체불 문제가 불거졌다. 외부에서는 끊임없이 허 전 감독을 흔들었다. 구단주인 송영길 인천시장도 전폭적인 지원을 하는 대신, ‘나 몰라라’ 지켜보기만 했다. 허 전 감독이 사퇴를 결심할 수밖에 없었던 배경이다.
돈 문제는 정말 컸다. 스폰서 계약은 얼어붙은 경기로 제대로 이뤄진 게 없었다. 명색은 ‘프로’였지만 행정은 ‘아마추어’보다 못했다. 항간의 주장에 따르면 인천은 한 시즌 예산이 190억 원에 달했지만 적자가 50억 원에 이르렀다고 한다. 하지만 허 전 감독이 직접 방만한 경영에 책임이 있는 게 아니라는 점은 삼척동자도 잘 알고 있다. 허 전 감독은 선수단의 수장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더욱이 확인되지 않은 소문도 허 전 감독을 더욱 가슴 아프게 했다. 무엇보다 그가 구단 경영까지 영향력을 미친다는 외부 얘기들이었다. 지나치게 많은 연봉(5억 원+α)을 받는다는 얘기도 들렸다. 하지만 연봉 미지급 사태가 빚어졌을 때 가장 먼저 자신을 비롯한 코칭스태프의 봉급을 포기하는 과감한 결단을 내렸다. 그리고 어떻게 해서든지, 돈을 끌어와 봉급을 늦게나마 책임지는 과감한 모습도 보였다. 인천 지역 기업들의 후원이 줄어들자 직접 투자자들을 찾아다녀야 했다.
하지만 선수단은 허 전 감독의 뜻대로 따라주지 않았다. 한때 ‘태업설’이 나돌 정도로 분위기는 파국으로 치달았다. 허 전 감독이 어렵사리 데려왔던 김남일이나 설기현 등 대표급 고참들의 노력에도 한계가 있었다. 그러나 이는 허 전 감독이 어떻게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었다. 결국 경영은 구단이 책임질 문제였다. 최근 인천은 손대는 사업들마다 거의 실패를 해왔다. 수익 사업 차원에서 구단 자본을 투자했던 중국 단둥의 축구화 공장 사업은 거의 무용지물에 가깝고, 기타 사업들도 어려웠다. 축구전용경기장만 그럴싸할 뿐이다.
작년 여름 인천과의 계약에 따른 조항 바이아웃 150만 달러(당시 16억 원)를 채워 사우디아라비아 알 힐랄로 떠난 유병수의 이적료는 1년 가까이 흘렀지만 아직 들어오지 않고 있다고 한다. 대부분 스폰서들이 계약을 꺼리는데다 당연히 받아야 할 목돈마저 입금이 차일피일 미뤄지자 구단 주머니 상태는 최악이었다.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연합(UAE) 등 중동 축구에서는 돈 문제에 아주 둔감하다는 게 정설. 지금까진 오일머니로 무장했기 때문에 선수들에게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후하게 돈을 주고 있다고 알려져 있지만 반대로 돈을 지나치게 쉽게 생각한다고도 한다. 그래서 수개월간 돈을 주지 않다가 어느 순간 밀린 봉급을 한번에 입금시키는 경우도 허다하다. 알 힐랄도 바로 이런 경우다. 인천 사정에 정통한 한 에이전트도 “유병수의 이적료 지급이 이뤄지지 않아 정작 돈이 필요할 때 쓰지 못했다”고 했다. 이렇듯 안팎으로 행정 문제, 돈 문제에 시달리며 표류하던 인천은 명예로운 마무리를 희망했던 ‘선장’마저 떠나보내야 했다.
남장현 스포츠동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