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에서 재활치료를 받던 이청용이 지난해 10월 11일 소속 팀 볼턴으로 복귀하기 위해 인천국제공항 게이트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
#부상악몽
그날은 이청용에게 평생 잊을 수 없는 날이다. 지난 7월 말, 한 여름이었지만 영국 날씨는 너무나 화창해 가만히 바라보고만 있어도 행복할 만큼 좋았다. 이전 시즌과 달리 프리시즌에 조기 합류한 이청용도 산뜻한 날씨만큼이나 컨디션이 좋았다. 6번째 프리시즌 상대는 잉글랜드 서부 뉴포트시티. 정식 프로리그 팀도 아닌 만큼 충분히 여유 있는 플레이를 해도 됐다.
하지만 이청용과 볼턴 선수들의 마음과 달리 뉴포트 카운티의 선수들은 조금 거칠었다. 결국 이청용이 희생양이 됐다. 이청용은 경기 도중 상대 톰 밀러의 거친 태클에 쓰러진 후 일어나지 못했다. 현장에 있던 사람들이 ‘딱’ 하는 소리를 들었을 만큼 부상 순간은 끔찍했다. 이청용은 극심한 고통을 느꼈다. 쇼크 증상이 동반되면서 의식도 사라지고 있었다. 이청용이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이미 병원에 후송돼 수술실로 들어가기 직전이었다. 오른쪽 다리 2중 골절의 중상을 당한 이청용은 장시간의 수술을 끝내고 병실로 돌아올 수 있었다. 이미 다른 병실이 꽉 찬 탓에 이청용은 8명이 쓰는 병실을 함께 써야만 했다. 수술이 끝난 후 의식이 돌아오는 순간은 그야말로 고통이었다. 참을 수 없을 만큼의 통증 탓에 강한 진통제를 써야만 했다. 의식이 제대로 돌아올 수 없었다. 꿈을 꾸는 것인지 몸에 힘이 없는 것인지 구분이 안 갈 만큼 몽롱한 상태가 이어졌다. 강한 통증과 실망감이 교차하는 무시무시한 부상 첫날 밤은 그렇게 지나갔다.
여전히 몸을 제대로 가눌 수 없는 상황, 볼턴의 코일 감독이 이튿날, 날이 새기가 무섭게 병실을 찾았다. 약 기운에 고개만 돌려 코일 감독을 맞이한 이청용은 다시 반대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코일 감독을 보자 그의 눈에서는 멈출 수 없는 눈물이 흘렀다. 참담한 현실 앞에, 자신을 지지해 주던 감독 앞에서 막을 수 없이 흐르던 뜨거운 눈물이었다. 그런 이청용을 지켜보던 코일 감독도 마음이 아팠다. 그 누구보다 선수 부상의 고통을 잘 아는 코일 감독은 그런 이청용을 위로했다. “청용, 울지 않아도 된다. 아직 너에겐 축구 인생이 20년은 더 남아 있다”며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널 사랑하는 가족과 구단의 모든 선수들이 널 응원하고 있다는 사실이다”라고 위로했다. 덧붙여 그는 “이미 일어난 일은 뒤돌아보지 않아도 된다. 앞만 보길 바란다”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코일 감독이 떠난 후 훈련을 마친 동료 선수들이 찾아왔다. 장난기 많은 스테인손을 시작으로 폴 로빈슨, 케빈 데이비스, 무암바 등 거의 대부분의 팀 동료들이 찾아왔다. 말 많은 로빈슨은 엄살 피지 말고 빨리 그라운드에서 보자는 농담으로 분위기를 살렸다.
▲ 로이터/뉴시스 |
이청용은 빨리 퇴원하고 싶었다. 병원에서는 좀 더 지켜보길 원했지만 수술 이후 특별한 치료가 없던 병원에서 오래 머물고 싶지 않았다. 결국 수술 후 이틀 만에 병원을 떠났다. 처음으로 휠체어에 몸을 실었다. 구단에서 마련해 준 승합차에 올라 고속도로 정체로 인해 장장 5시간 정도를 도로 위에서 보내고 나서야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집에 도착하자, 구단 재활 트레이너 해리 브루크가 그가 먹어야 할 약과 목발을 사용하는 법, 그리고 간단히 집에서 시작할 수 있는 재활 동작들을 알려줬다. 사실상 퇴원과 동시에 재활이 시작된 셈이었다. 상처도 남아있고, 피도 흘러나오는 상태였지만 해리는 조속한 재활을 위해서라도 걷는 연습을 서둘러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행히 다음날 한국에서 부모님이 도착했다. 어머니가 해 주신 김치찌개와 한국 음식들을 먹으니 이제야 좀 살 것 같은 이청용이었다.
목발을 짚고 익숙해지기가 무섭게 그는 한국행을 선택했다. 심리적 안정감을 얻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첨단 장비를 갖춘 한국에서의 재활이 필요했다. 구단도 주저없이 허락했다. 한국에서의 재활은 성공적이었다. 이후 볼턴과 서울을 오가며 재활을 멈추지 않았다. 지난 1월 볼턴으로 돌아온 후부터는 본격적인 그라운드 재활이 시작됐다. 그의 재활 훈련은 오전 오후까지 꽉 찬 일정으로 진행됐다. 겨울엔 해가 짧은 영국이기에 그가 오후 일정을 끝내고 돌아오는 길은 꽤 어두울 정도였다. 몸도 자연스레 피곤했지만 재활을 게을리 하거나 멈출 수 없었다. 그라운드에 나서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근육 강화 훈련 등 본격적인 재활이 시작된 지난 2월 말, 이청용은 그라운드에 처음으로 나섰다. 축구화를 신고 발에 공을 대어 봤다. 찌릿한 느낌이 들었다. 아직 완벽히 붙지 않은 뼈 때문에 예리한 움직임에서는 고통이 따랐다. 시간이 더 필요했다.
#출격 준비 완료
한국에서는 2월 복귀에 이어 3월 복귀 가능성까지 터졌지만 현실은 달랐다. 뼈가 완벽히 붙지 않은 탓에 시간이 좀 더 걸렸다. 이청용보다도 소속팀인 볼턴이 더 애간장이 탔다. 강등권에 놓인 탓에 이청용의 복귀가 절실했다. 재활 훈련 강도도 더 강해졌다. 지난 6일 이청용을 리복 경기장에서 만날 수 있었다. 오후 훈련까지 마치고 온 탓에 다소 피곤해 보이는 듯했다. 다행히 최근 팀 성적이 좋아 기분이 좋다는 그다. 볼턴은 지난 3월 리버풀에 이어 블랙번과 울버햄턴을 연이어 잡는 데 성공했다.
현재 이청용의 몸은 거의 다 완성됐다. 조만간 1군 훈련에 합류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코일 감독은 이청용이 리저브 경기를 소화한 후에 1군 경기에 복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청용도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었다. 잘만 된다면 이달 말 선덜랜드와의 원정 경기에 기회를 잡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늦어도 5월 초 경기를 통해서는 복귀할 것으로 보인다.
많은 이들은 이청용이 그라운드에서 두려움을 가질 것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 이청용은 “아직은 잘 모르겠다. 그라운드에 서 봐야 알 것 같다”며 담담해 했다. 그는 “이번 재활을 통해, 이제는 그 어떤 고통도 걱정되지 않는다. 충분히 이겨 낼 자신이 있다”며 긴 재활을 통해 얻은 자신감을 얻었다고 전했다. 재활 과정 막바지에 있는 이청용은 팀이 1부에 잔류할 수 있도록 힘을 보태고 싶다고 강조했다. 지금 그는 그라운드가 무척 그립다.
영국=조한복 EPL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