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순국 사진전문기자 |
사실 저한테 간절히 필요했던 건 홈런보다 자신감이었어요. 시간이 지날수록 타석에 들어서는 부분이 이전처럼 썩 편하지가 않았습니다. 아무래도 시즌 개막 후 한 달이 지났는데도 불구하고 부상과 빈볼 등으로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경기력에까지 영향을 미친 것 같아요. 누구보다 잘해야 한다는 생각과 삼진을 당하지 않아야겠다는 강박관념이 방망이를 무디게 만든 셈이었죠. 그런 방어적인 태도가 타석에 설 때 절 불편하게 만들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 경기를 앞두고 한 시간 동안 지난 시즌, 제가 잘 쳤을 때의 장면만 모아둔 비디오를 봤어요. 동영상을 보면서 ‘아, 내가 저런 공도 쳐냈구나’ ‘투수가 실투하지 않았는데도 안타를 쳤네’ ‘저런 공을 칠 수도 있는데, 왜 지금은 안 되지?’하며 자신감을 가지려고 노력했습니다.
팀 성적도 좋고, 선수들 모두 잘하고 있는데, 제가 제일 못하니까 말 못할 스트레스가 심했습니다. 부상에 대한 부담으로 인해 매사에 조심하려고 애쓰는 부분들이, 특히 일주일 만에 복귀하다보니 투수의 공이 이전처럼 잘 보이지 않더라고요.
시즌 전만 해도 야구하면서 스트레스 받지 말고 매 경기에 출전하는 데 대해 감사하자고 굳게 결심했지만, 저도 사람인지라 2~3일 성적 못 내고 부진하면 속상하고 걱정되고 열 받고 하더라고요.
오늘 어떤 기자분이 경기 후 이런 질문을 하셨어요. 그동안 홈런이 터지지 않은 데 대해 부담을 느끼지 않았느냐고요. 솔직히 말씀드려서 5월이 됐는데도 홈런이 나오지 않아 걱정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내색할 수가 없잖아요. 아무렇지 않은 척, 홈런이 없어도 괜찮은 척, ‘척’ 하며 살아야 했습니다.
오늘 홈런 치고 나서 베이스를 돌며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이제 시작이다’라는. 그렇습니다. 이제 시작입니다. 너무 힘들게 첫 홈런이 터졌지만, 이제부터 홈런 개수가 하나둘씩 쌓여갈 것이라고 믿습니다. 투런 홈런 이후 베이스를 밟고 더그아웃으로 돌아가니까 악타 감독님도, 선수들도 팔짱을 낀 채 가만히 앉아 있는 거예요. 하이파이브도 안 하고, 아예 모른 척하더라고요. 그 순간 어찌나 웃음이 나는지, 간신히 참았습니다. 일부러 그러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거든요.
그리고 지금 6번 타순에서 치고 있는데, 전 3번이든 6번이든 전혀 상관없습니다. 감독님이 부상에서 복귀한 저를 배려해서 하위 타순으로 내려보내신다고 말씀하셨지만, 전 중심타선에는 타격감이 가장 좋은 선수가 배치돼야 한다고 봐요. 이름값으로만 야구하는 시대가 아니잖아요. 그래야 저도 긴장감 갖고 더 노력하게 되겠죠.
텍사스 3차전에는 다르빗슈가 선발투수로 나옵니다. 한일 투타 맞대결을 놓고 관심이 쏟아지고 있는데요, 전 그저 다르빗슈가 일본인 투수가 아닌 메이저리그의 한 투수라고 생각하고 상대할 겁니다. 그렇게 해서 제가 이겼으면 더 좋겠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