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메뚜기도 한철이라며 자신을 냉정하게 평가하는 정성훈, 그래서 더욱 팬들의 기대는 뜨겁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
정성훈의 별명은 ‘4차원’과 연결돼 있다. ‘똘끼’ ‘정성병자’ 등으로 대변되는 그는 인터뷰할 때는 말수도 적고 하고 싶은 말만 하는 스타일이지만 야구장에 들어서면 몸 개그는 물론 다양한 쇼맨십으로 팬들에게 볼거리를 선사한다.
―요즘 정성훈 선수를 보고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라는 말을 많이 한다. 생애 처음으로 4번 타자를 맡았다는 사람이 한때 홈런 1위를 내달렸으니 말이다.
▲스프링캠프 마지막 날에 김기태 감독님으로부터 4번을 치게 될 거라는 얘기를 듣고 처음에는 농담인 줄 알았다. 그런데 농담이 아니었다. 속으로 큰일났다 싶었지만 팀 사정을 잘 알고 있으니까 못하겠다고 말씀드릴 수 없었다. 그때부터 다른 팀 4번 타자들을 유심히 살펴봤다. 내가 제일 후졌더라. 다들 체격도 크고 장타도 시원하게 날리는데, 난 장타자도 아니고 그렇다고 체격이 좋은 것도 아니고…. 뭐 하나 나은 점이 없었다. 그렇다보니 시범경기 동안 내 타격을 하지 못하고 자꾸 오버스윙을 하게 되더라. 그래서 시즌 개막 전부터는 그냥 내가 할 수 있는 타격을 하자라고 마음먹었다. 팀배팅도 해주고, 포볼 나갈 때 나가주고, 하다 보면 팀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었다.
―팬들 중에는 ‘혹시 약 먹은 거 아니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지난해 홈런이 10개였는데 올해 벌써 8개째를 기록하고 있으니, 이걸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약 먹었으면 내 덩치가 이렇게 왜소하겠나(웃음)? 나도 초반에 이렇게 좋은 페이스를 보인 적이 없어서 솔직히 이유를 잘 모르겠다. 아마 김무관 타격 코치님으로부터 타격폼을 수정받고 그 코치님의 지도를 믿고 따라가다 보니 이런 결과가 나온 것 같다. 프로 생활 올해로 14년차다. 오래 하다 보니 타격에 사이클이 있다는 걸 알고 있다. 올라갈 때가 있으면 떨어질 때가 있는 법이다. 잘한다고 우쭐해 하지 말고 평소와 다름없이 생활하려고 노력한다.
▲ 4월 최우수선수(MVP)에 뽑힌 정성훈. 사진제공=LG 트윈스 |
▲말하기 조심스럽지만, 아무래도 한화전에서 박찬호 선배를 상대해서 때린 홈런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그 홈런은 박찬호 선배가 한국 마운드에서 처음으로 맞은 홈런이었다. 그래서 죄송하기도 했다. 97년인가, 98년인가 제1회 박찬호배 야구대회가 열렸었는데 그때 내가 학교 대표로 뽑혀서 그 대회에 참석한 적이 있었다. 당시 메이저리그에서 맹활약 중이었던 박찬호 선배를 직접 볼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가슴이 뛰었던 기억이 있다. 그 당시에는 멀리서 바라보는 입장이었는데 이번에는 박찬호 선배와 타석에서 맞붙은 것이다. 얼마나 설레었는지 모른다. 타석에 서는 것만으로도 영광이었다. 그런데 홈런을 쳤다. 그것도 역전 홈런을. 박찬호 선배한테 죄송했고, 개인적으로는 팀에 도움이 되는 홈런을 쳐 기분 좋았다.
―그 다음날 류현진 선수를 상대로 해서 또 홈런을 쳐냈다.
▲내 생각에는 청주구장이라 홈런이 나온 것 같다. 만약 잠실이었더라면 장타를 칠 생각조차 안했을 텐데 청주는 다른 구장보다 잘 넘어간다는 생각에 외야플라이를 치겠다고 한 게 홈런으로 이어졌다.
―올 시즌이 끝나면 FA가 된다. 생애 두 번째 FA가 되는데, LG팬들은 정성훈 선수가 LG에 남을 것인지의 여부에 관심이 크다.
▲LG가 날 원한다면 당연히 남는다. 하지만 다른 팀에서 훨씬 더 좋은 조건으로 제안이 들어온다면 생각해 볼 문제가 아니겠나. 이런 질문에 대답하는 게 가장 곤란하다(웃음).
―강정호 선수랑 홈런 선두를 달리다 1위 자리를 내주고 말았다. 강정호 선수의 홈런을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들었나.
▲‘아, 잘 친다’라고 생각했다. 난 홈런왕 스타일이 아니다. 어차피 1위에서 내려갈 것이라고 예상했기 때문에 홈런 선두 자리에 대해 별다른 욕심을 내지 않았다. (강)정호는 광주일고 후배다. 학교 때도 잘 치는 선수였고 넥센에서도 잘하는 걸 보고 왔기 때문에 나랑은 비교할 수 없다. 그런데 정호 나이 정도면 그 정도 해야 하는 거 아닌가(웃음)?
―어느 인터뷰에서 ‘나는 4번타자가 아니라 4번째 타자다’라고 말한 게 기억난다. 자신감 없는 대답으로 들렸다.
▲내가 아는 4번 타자는 장타를 치고 그 팀의 중심으로 자리 잡으면서 해결사 역할을 하는 선수였다. 그런데 난 그런 일을 할 만한 선수가 아니다. 좌타자 위주의 팀에서 특별한 우타자가 없다 보니 내가 4번을 치게 됐고, 그래서 4번이 아닌 4번째 타자라고 말한 것이다. 진정한 4번 타자가 되려면 3~4년 뛰어보고 어느 정도 성적을 내야 인정받을 수 있다고 본다.
―그렇다면 정성훈 선수가 선호하는 타순은 몇 번인가.
▲작년에는 1번을 쳤었다. 1번이 생각보다 재밌더라. 어렸을 때는 주로 3번, 5번, 6번을 많이 쳤다. 그런데 가장 해보고 싶은 타순이 2번이다. 작전이랑 팀배팅에는 자신이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여러 타순을 생각하면서도 4번은 단 한 번도 떠올려보지 않았다(웃음).
▲ 사진제공=LG 트윈스 |
▲아무래도 오랜만에 수비를 하다 보니까 익숙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목동구장의 내야 잔디가 조금 바뀐 터라 바운드가 좀 더 튀었고 그에 대한 내 반응 속도가 느렸다고 본다. 몇 게임 더 치르고 나면 적응할 수 있을 것이다.
―3루수는 민첩성과 장타력을 중요시한다. 장타가 있는 이대호와 민첩성이 돋보이는 조동찬 중에서 어떤 선수가 더 유능한 3루수라고 생각하나.
▲난 최정 같은 3루수를 좋아한다. 수비도 좋고 장타도 있고, 골고루 좋은 조건을 갖춘 선수다. 내가 봤을 때 앞으로 10년 동안 대표팀의 3루는 최정이 책임질 것 같다. 솔직히 난 박석민의 팬이다. 야구장에서 보여지는 그의 플레이가 너무 좋다. 박석민 때문에 내가 많이 묻힌 면도 있다. 그래도 난 그가 좋다.
―아직 골든글러브를 수상한 경험이 없다. 올 시즌 수상하게 된다면 3루수와 지명타자 부문 중 어느 것을 받았으면 좋겠나.
▲난 상 받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런 상을 받으면 인터뷰를 많이 하게 된다. 그래서 싫다. 이런 일도 있었다. 2006년 시즌 마치고 내 예상으로는 3루수 골든글러브 수상을 내가 할 것 같았다. 당연히 내가 받을 것으로 믿었다. 그래서 시상식이 있기 전, 4주간 기초군사훈련을 받으러 논산훈련소에 입소했다. 같은 팀에 있었던 이택근한테 대신 수상해달라고 부탁까지 하고 들어갔다. 그런데 훈련 마치고 나와 보니까 내가 아닌 이범호가 받았더라(웃음).
―황당했겠다.
▲전혀. 어차피 받았다고 해도 난 인터뷰 안 했을 테니까 상관없다.
―다른 건 몰라도 보호대 색깔이 정말 튄다. 노란색, 핑크색을 주로 사용하고 있지 않나.
▲원래 노란색을 좋아한다. 노란색 보호대를 2년 정도 썼다. 이번에 변화를 주기 위해 핑크색으로 바꾸려 했다가 내가 원하는 핑크색이 안 나와서 다시 노란색으로 바꿨다. 사복은 깔끔하게 입는 편인데, 이상하게 보호대만큼은 튀는 걸 좋아한다. 이런 스타일이다보니 프로 첫 팀이었던 해태(KIA)에서 얼마나 부대끼고 힘들게 생활했겠나. 결국엔 현대로 트레이드되고 말았지만 말이다.
정성훈은 오는 12월 15일 또는 16일에 결혼할 예정이라고 느닷없이 고백을 한다. 날짜를 못 박은 건 이번이 처음이라고 한다. 상대는 같은 팀 동갑내기 이진영 아내의 후배이고 부산에서 첫 만남을 가졌다고 한다.
인터뷰 말미에 그는 김병현과의 추억을 끄집어낸다. 지난 5월 8일, 넥센 김병현이 1군 무대에 첫 등판을 하는 순간이었다. 순서대로라면 정성훈이 첫 타자로 나가야 했다. 그때 김기태 감독이 정성훈한테 “너 칠래?”하고 물었고, 정성훈은 “바꿔주십시오”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그 이유에 대해 정성훈은 재미난 설명을 곁들인다.
“박찬호 선배님이 등판했을 때 두산 이종욱이 인사하고 들어갔다는 얘기를 들었다. 병현 형이랑은 광주일고 선후배 사이라 내가 나가면 허리를 90도로 꺾어서 인사해야 할 판이었다. 그게 고민이 됐다(웃음). 더 솔직한 이유로는 병현 형 공을 치기 어렵다는 걸 고등학교 시절 같이 연습하면서 이미 터득한 터라 자신도 없었다. 그래서 바꿔달라고 했더니 광주일고 후배인 (이)대형이가 나가더라. 타석 들어가기 전에 병현 형한테 인사하라고 말했는데, 대형이는 인사 안 하고 그냥 안타를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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