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사이트 ‘차원국’ 200쌍에 결혼증명서 발급…여대생 17% 캐릭터에 연애감정 ‘픽토섹슈얼’ 확산
“차원을 초월한 사랑의 증인이 되어드립니다.” 최근 일본에서 주목 받고 있는 사이트 ‘차원국’은 캐릭터와의 결혼증명서를 발행하는 비공식 기관이다. 법적인 효력은 없지만, 희망하는 사람에게 증명서를 발급하고 있다. 가격은 8700엔(약 8만 6000원)이다.
사이트 운영자 와타나베 야스아키 씨는 “나 또한 애니메이션 ‘전희절창 심포기어’의 주인공과 결혼했다”고 밝혔다. 20대 초반에는 보통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법률혼을 맺어 부부생활을 한 적도 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아르바이트처에서 만난 여성과 결혼. 아이도 낳았지만 3년 만에 이혼했다고 한다. 이후에도 두 명의 여성과 교제해 결혼 이야기까지 나왔으나 결국 파국을 맞았다.
현재의 ‘인생 파트너’를 알게 된 것은 5년 전의 일이다. 와타나베 씨는 “회사에서 제작하는 포스터를 보고 귀여운 외모에 이끌렸다”고 전했다. “무슨 캐릭터냐”고 물었더니 동료가 “심포기어라는 애니메이션 주인공”이라며 추천해줬다.
그날 곧장 애니메이션을 찾아봤고, 주인공 타치바나 히비키의 매력에 흠뻑 빠졌다. 가혹한 운명에 휩쓸려도 밝고 긍정적인 성격이 좋았다. 남몰래 고민하는 모습이랄지, 눈물을 흘리면서도 처한 상황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모습에 ‘애틋한 감정’이 싹텄다고 한다. 하지만 애니를 추천해준 동료조차 이런 마음을 이해하지 못했다.
끌리는 마음이 혼란스러웠고, ‘사랑’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상황이 괴로웠다. 인터넷에 검색했더니 자신과 똑같이 2차원(2D) 인물을 사랑해 고민하는 사람이 많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와타나베 씨는 “그런 사람들에게 뭔가 도움이 되고 싶어 생각한 것이 차원국이었다”고 덧붙였다. 요컨대 사랑하는 캐릭터와 ‘혼인신고서’를 제출하면 ‘결혼증명서’를 발급해준다. 2020년 11월 서비스를 시작해 지금까지 200쌍 이상에게 결혼증명서를 발급했다. 다만, 증명서에는 저작권 침해 문제로 캐릭터의 일러스트가 들어있지 않다.
‘오타쿠’ 활동으로 가볍게 신청하는 사람이 많을 줄 알았는데 의외로 사연들은 간절했다. “오랫동안 좋아해 온 상대와 드디어 함께할 수 있다니 기쁘다” “좀 더 다양한 종류의 사랑과 행복을 인정하는 사회가 되길 바란다.” 와타나베 씨는 “차원국으로 도착하는 편지를 읽을 때마다 하나같이 진지한 연애 감정이 담겨 있었다”고 말했다. 그에 의하면 “최근 해외로부터 문의 및 취재도 잇따르고 있다”고 한다. 비단 일본에서만 일어나는 현상은 아닌 것 같다는 분석이다.
캐릭터와의 결혼에 대해 혹자는 ‘무슨 엉뚱한 소리냐’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사물과의 연애는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일”이라고 지적한다. 도쿄전기대학의 사이조 레이나 교수는 “가령 마음에 드는 인형을 소중히 여기고 말을 건넨다거나, 자신이 아끼는 물건을 타인이 만지는 것이 탐탁지 않다고 느끼는 등 인간은 물건에 대해 애착을 가진다”고 전했다. 의사소통이 없어도 충분히 사물과 상호적 관계를 맺는 것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사이조 교수는 “그것이 누군가에게는 연애 감정이 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캐릭터에 연애 감정을 갖는 사람을 흔히 ‘오타쿠’라고 부르는데, 이는 일본의 독특한 문화적 배경에서 나온 호칭이다. 해외에서는 좀 더 중립적인 표현으로 ‘픽토섹슈얼’이라 표현한다. 성적(性的) 지향의 하나로 본다. 요미우리신문에 따르면 “픽토섹슈얼이라는 단어가 일본에서도 퍼지고 있어 국내외 당사자들이 연대하기 쉬워졌다”고 한다.
30년 넘게 ‘2차원과의 연애’에 대해 연구해온 인물도 있다. 하부치 가즈요 히로사키대 교수(사회학)다. 그는 “1990년대, 2000년대, 2010년대를 거치는 동안 애니메이션이나 게임 캐릭터가 연애에 미치는 영향이 커졌다”고 전했다.
한 예시가 1992년 16~29세 일본인 남녀를 대상으로 한 표본조사다. ‘연애관에 영향을 주는 것’을 물었는데 8.4%가 ‘만화에 큰 영향을 받고 있다’고 응답했다. 2002년에는 미소녀 게임이 히트한 것을 염두에 두고 ‘비디오게임 캐릭터에 애정을 느낀 적이 있는가’라는 질문을 신설했다. 그 결과 응답자의 10.1%가 ‘있다’고 답했다.
2017년 일본 성교육협회가 발표한 ‘청소년 성행동 전국조사’도 흥미롭다. 중학생과 고등학생, 대학생들에게 각각 ‘애니메이션(게임) 캐릭터에게 연애 감정을 가지고 있는가’라는 설문을 실시했다. 그랬더니 남녀 모두 10% 이상이 ‘있다’고 회답했다. 그중에서도 여성 대학생은 17.1%로 비율이 가장 높았다.
하부치 교수는 “적어도 30년 전부터 2차원과 연애하는 사람이 사회에 있었다는 걸 알 수 있다”고 지적했다. 2002년 조사에서는 설문 용지에 좋아하는 캐릭터의 일러스트를 그려 넣는 등 강하게 ‘어필’하는 대답이 잇따랐다고 한다. 관련 질문을 받은 것에 대해 ‘사회에서 인정받았다’며 기뻐하는 것 같았다. 교수는 “캐릭터와 진지하게 연애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평했다.
요미우리신문은 “사회가 다양성을 인정하게 되면서 2차원 캐릭터에 성적 매력을 느끼는 사람들이 자신의 입장을 나타내기 쉬워진 것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실제로 2018년 11월 도쿄에 사는 공무원 곤도 아키히코 씨는 우리 돈으로 약 2000만 원을 들여 캐릭터 하츠네 미쿠와 결혼식을 진행해 화제를 모았다. 이 결혼식은 국내외에 널리 보도되면서 픽토섹슈얼이라는 말이 확산하는 계기가 됐다.
곤도 씨는 “절대로 배반하지 않을 것이라는 안도감이 든다”며 결혼생활에 만족하고 있다. 이와 관련, 요미우리신문은 “메타버스나 인공지능의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캐릭터나 가상 인물과 연애하는 사람이 더욱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가까운 미래, 어쩌면 ‘차원을 초월한 연애’가 드물지 않은 시대가 펼쳐질지도 모를 일이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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