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 선거가 끝나고 대통령 선거를 향해 정치권이 한창 부산한 요즘, 왜 하필 ‘노무현’일까. 오는 8월 15일부터 9월 2일까지 설치극장 정미소에서 연극 <노무현 3story>가 공연된다. 이번 연극은 고인돌 연극농장의 첫 번째 프로젝트이기도 하다. 고인돌 연극농장은 연극 예술이 한 개인의 미적 욕구를 만족시키는 데 그치지 않고 사람 사는 세상에서 사람과 사람 사이를 아름답게 하는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만들어진 연극인들의 모임이다.
다양한 논란이 예상되는 연극이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싫어하는 이들은 물론이고 고인을 지지하는 이들 사이에서도 논란이 야기될 여지가 있다.
우선 연극 <노무현 3story>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추모하는 인물극이 아니다. 대신 정치인 노무현이 아닌 인간 노무현을 통해 한국 사회의 다양한 풍경을 그린 작품이다. 제목처럼 세 편의 단막극이 모인 작품인데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세 편에 모두 직접 등장하지 않는다. 심지어 첫 번째 이야기인 ‘얼굴 없는 여자’는 현대극도 아닌 사극이다. 연극 전반에 ‘노무현 정신’과 ‘사람 사는 세상’이 흐르고 있지만 이 연극이 주로 얘기하고자 하는 바는 바로 ‘노무현을 통해 본 한국 사회의 문제들’이다.
이동준 은세계 씨어터컴퍼니 대표는 “1대 99, 교육문제, 환경문제 등 다양한 한국 사회의 사회문제들에 대해 고민하던 중 가장 앞에 있는 사안을 고 노 전 대통령으로 봤다”면서 “이번 프로젝트를 시작으로 고인돌 연극농장은 이런 다양한 사회문제를 다루는 연극을 무대에 올릴 예정”이라고 말한다.
<노무현 3story>가 다루고자 하는 바는 바로 한국 사회의 다양한 문제점이다. 이를 위해 오히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하나의 도구로 쓰였다고 봐도 될 정도다. 두 번째 이야기 ‘육시랄’은 참여정부 말엽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당시 고위층 인사의 부인들이 모여 고 노 전 대통령을 욕하는 것이 이야기의 주된 내용이다.
이들의 욕을 통해 당시 고위층 인사들(심지어 청와대에 근무하는 고위직들까지)이 당시 고 노 전 대통령과 영부인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또 참여정부의 다양한 정책에 얼마나 큰 불만을 갖고 있는지가 적나라하게 그려진다. 이 과정에서 1대 99 사회, 교육 문제, 보수 언론 등 한국 사화의 문제점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결국 연극의 형태가 고인이 된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욕일 뿐, 관객들은 오히려 무대 위에서 욕하는 배우들을 욕하며 한국 사회의 현실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어쩌면 <노무현 3story>는 제목을 ‘노무현’에서 ‘이명박’으로 바꿔도 무방할 정도다. 연극 전반에 흐르는 한국의 사회 문제에 대한 비판적인 시간이 현 정부에 대한 비판으로 연결되는 대목이 자주 눈에 띄기 때문이다. 첫 번째 이야기 ‘이름 없는 여자’는 비록 과거 어느 시점의 이야기지만 마치 4대강 사업의 공사현장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게 한다.
두 번째 이야기 ‘육시랄’은 더욱 공격적이다. 시점이 참여정부 말엽인 터라 이들의 대화는 고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욕과 당시 이명박 대통령 후보에 대한 장밋빛 희망이 주류를 이룬다. 서울 시장으로 일궈낸 업적을 찬양하며 경제 대통령이 새롭게 열어갈 대한민국의 앞날을 이야기한다. 그렇지만 이미 그 시점보다 5년 뒤에 살고 있는 요즘 관객들 입장에선 당시의 장밋빛 환상과 현실의 암울한 현실을 자연스럽게 비교할 수밖에 없다.
그만큼 <노무현 3story>는 논란의 여지가 많은 작품이다. 고 노 전 대통령을 추모하기 위해 극장을 찾은 관객은 전혀 예상치 못한 이야기의 흐름에 당황할 수 있다. 아니 한국 사회의 다양한 문제점을 부각시키기 위해 노 전 대통령을 하나의 도구로 사용했다는 점에서 격분할 수도 있다.
이명박 대통령의 현 정부를 지지하는 이들에게도 당연히 불편한 작품이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처럼 직접 이야기의 전면에 나서 있진 않지만 이야기는 끊임없이 현 정부와 기득권층에 대한 비판의 날을 곧추 세우고 있기 때문이다.
노사모 회원들이나 현 정부 관계자, 친노 진영의 대선후보나 새누리당의 대선후보, 회사원이나 자영업자, 아니 그 누가 봐도 불편하고 화가 날 수 있는 연극이다. 적어도 오늘날 한국 사회를 살아가며 수많은 문제점들은 피부로 느끼고 있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그렇다면 왜 지금 이 시점에 연극인들은 노무현을 들고 이런 논란을 야기하려 하는 것일까. 고인돌 연극농장 창립준비위원장을 맡고 있는 박장렬 연극집단 반 대표는 “연극인들이 왜 노무현을 얘기하는지, 왜 이런 연극을 하는지가 논란이 되는 것이 우리의 목표”라고 단호히 말한다. 그는 “지금껏 연극인들은 무슨 일이 있어도 아무 얘기 없이 지내왔다”며 “연극인들이 지금껏 아무 말도 없었다는 것이 문제라고 공감한 연극인들이 모여서 한국 사회의 다양한 문제들이 제 목소리를 내려 한다”고 강조한다.
결국 연극 <노무현 3story>가 갖는 가장 큰 의미는 고인돌 연극농장의 창립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가와 닿아 있다. 지금껏 침묵하던 연극인들이 이제는 연극을 통해 한국의 사회문제에 연극인들의 목소리를 내겠다는 것이 그들의 창립 취지다. 이를 위해 연극인 100여명이 동참했다. 이번 연극 역시 그렇게 동참한 연극인들이 재능기부 형태로 모여 무대 위에 올린 것이다.
첫 번째 프로젝트인 <노무현 3story>를 그 시작으로 연극인들은 고인돌 연극농장을 통해 다양한 한국의 사회 문제에 제 목소리를 내려 한다. 그 의미 있는 자리에 동참하는 것도 유난히 더웠던 2012년 여름을 마무리하는 좋은 방법이 아닐까 싶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