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에 출연한 류승룡(왼쪽)과 이병헌. 최준철 기자 choijp85@ilyo.co.kr |
때문에 <광해, 왕이 된 남자>에 출연하며 두 배우가 친구가 되는 과정도 지난했다. “보통 동갑 배우와 연기를 하게 되면 작품 초반에 말을 놓고 친구가 된다”고 운을 뗀 이병헌은 “그런데 류승룡과 나는 그런 면에서 진중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두 사람이 마음을 터놓은 자리는 영화 촬영이 끝나갈 무렵 진행된 부안 로케이션에서 마련됐다. 얼큰하게 술이 취한 상황에서 이병헌이 먼저 “이제 말 놓자”고 제안했고 드디어 두 배우의 팽팽한 줄다리기가 느슨해졌다. 하지만 이병헌은 “다음날 류승룡이 ‘병헌아’라고 부르는데 나는 어색해서 ‘예’라고 대답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광해, 왕이 된 남자> 제작 관계자는 “대세와 대세가 만난 만큼 두 배우가 맞붙는 장면에서는 스태프도 숨을 죽일 정도였다. 평소에도 영화 속 캐릭터의 팽팽한 감정을 유지했기 때문에 더욱 편한 친구가 되기 어려웠는지 모른다”고 전했다.
비슷한 사례는 지난해 개봉된 영화 <퍼펙트게임>의 촬영장에서도 있었다. 주인공을 맡은 조승우는 빈틈없고 꼼꼼한 배우로 유명하다. 힙합 가수로도 잘 알려진 양동근 역시 자기만의 스타일이 강한 배우였기 때문에 극중 선동열과 최동원으로 맞붙는 두 배우의 기 싸움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두 사람 사이에는 관계를 희석시켜주는 이가 있었다. 류승범이 그 주인공이다. 류승범과 조승우는 1980년생 동갑내기였다. 류승범의 손에 이끌려 조승우의 공연을 몇 차례 본 양동근은 이후 안면은 있지만 서로 데면데면한 관계를 유지해왔다. 양동근은 “1년에 한 번 정도 연락하는 사이였다. 원래 보자마자 친해지는 스타일도 아니다. ‘동근 성’ ‘승우 형’ 이라고 서로 존중하며 몇 년간 지냈다”고 설명했다.
관계의 물꼬를 튼 건 조승우였다. 두 사람 모두 군복무를 마친 후 조승우는 양동근에게 전화를 걸어 <퍼펙트게임>에 함께 출연하자고 제안했고 양동근은 흔쾌히 응했다. 양동근은 “먼저 전화를 걸어주면서 조승우와 나의 2막이 시작됐다. 조승우라는 배우가 함께 연기를 하자고 제안했는데 거절할 사람이 있었을까”라고 되물었다. <퍼펙트게임>이라는 공통분모를 안고 다시 만난 양동근과 조승우는 희대의 라이벌이었던 선동열과 최동원을 연기하며 겯고틀며 둘도 없는 친구로 거듭났다.
▲ 차승원-황정민 |
이준익 감독이 연출한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에서는 차승원과 황정민이 검객 대 검객으로 만났다. 당대 최고의 배우들이 검을 두고 대결하는 모습을 보며 이준익 감독조차 “감독인 내 눈으로 봐도 살벌했다”라고 평했다.
촬영을 마친 두 배우는 야구를 통해 동갑내기 친구로 다시금 편하게 뭉칠 수 있었다.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의 배우와 제작진은 당시 방송되던 KBS 2TV 예능프로그램 <천하무적 야구단> 팀과 친선 경기를 가졌다. 이 경기에서 차승원과 황정민은 발군의 실력을 뽐내며 팀을 승리로 이끌었다. 한 영화 관계자는 “연기를 잘하는 배우일수록 영화 촬영 중에는 작품에 몰입하기 때문에 일부러 상대 배우와 거리를 두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결국은 ‘영화인’이라는 이름 아래 하나가 된다”고 말했다.
나이에 의한 교통정리는 영화계 밖에서도 필요하다. MC 강호동을 비롯해 신동엽과 가수 이하늘 등은 호칭 때문에 애를 먹은 적이 있다. 1971년생인 이하늘은 데뷔 초기 ‘빠른 1971년생’인 신동엽을 형이라 불렀다. 하지만 만취한 상태에서 신동엽이 이하늘에게 주민등록번호를 알려준 뒤 이하늘은 “같은 해에 태어났으니 친구로 지내자”고 제안했고 신동엽 역시 응했다.
문제는 신동엽이 학년이 같은 1970년생 강호동과 친구로 지낸다는 것. 술자리에 강호동 신동엽 이하늘 세 사람이 모이면 신동엽은 두 사람과 모두 말을 놓지만 이하늘은 강호동을 형으로 모셨다. 이에 대해 이하늘은 “강호동도 처음에는 나한테 형이 아니었다”며 “강호동과 처음에는 친구로 지냈는데 그가 ‘국민 MC’로 자리를 잡아가자 그 순간부터 형이라고 불렀다”고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동갑내기 연예인들의 미묘한 감정 교류는 비단 나이 많은 이들 만의 문제는 아니다. 선후배 관계가 깍듯한 학창 시절을 보낸 지 얼마 되지 않은 젊은 배우들 역시 기 싸움을 벌이는 경우가 종종 있다.
▲ 김수현-정일우 |
촬영이 진행되면서 조금씩 친분을 쌓던 두 사람이 완전히 마음을 열게 된 건 정일우가 연기한 양명이 죽는 장면을 촬영한 후다. 죽어가는 양명을 품에 안고 이훤 역을 맡은 김수현은 통곡을 했고 촬영이 끝난 후에도 두 사람은 감정이 주체되지 않아 한참 동안 눈물을 훔쳤다.
정일우는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상황에서 죽는 역할은 처음이었다. 진심어린 마음으로 우는 동료들을 보며 나도 울컥했다. 이 장면 이후 김수현과의 관계가 더욱 애틋해진 것 같다”고 회상했다.
한 연예계 관계자는 “함께 연기하는 배우들은 동료이자 라이벌이다. 게다가 메소드 연기를 펼치는 배우들은 극중 캐릭터에 몰입하다보면 개인적인 친분보다 극중 관계를 더 중시할 때가 있다. 이런 상황에서 나이와 경력은 그리 중요치 않다. 서로를 인정하고 마음만 맞는다면 모든 것을 초월해 친구가 될 수 있는 이들이, 바로 연예인이다”라고 설명했다.
안진용 스포츠한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