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복절에 맞춰 독도 수영횡단 행사에 참여한 송일국(왼쪽사진 뒷줄·위 사진)에게 일본 정부는 입국금지를 공표했다. 연합뉴스 |
최근 배우 송일국이 일본 입국을 사실상 금지당하면서 ‘한류 위기론’이 다시 한 번 고개를 들었다. 일본의 야마구치 쓰요시 외무차관은 8월 24일 일본의 한 방송에 출연해 가수 김장훈과 송일국이 광복절에 맞춰 독도 수영횡단에 참여한 사실을 언급하며 송일국을 향해 “미안하지만 앞으로 일본에 오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그게 바로 일본 국민의 감정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외무차관의 이 발언은 곧바로 일본 주요 언론을 통해 보도됐다. 송일국의 입국금지 방침이 사실상 확정된 셈이다.
송일국은 드라마 <주몽> 덕분에 일본에서 높은 인기를 누리던 한류스타 가운데 한 명이다. 일본을 자주 오가며 현지에서 다양한 활동도 벌였었다. 하지만 독도 수영횡단에 따른 후폭풍은 거셌다. 입국금지에서 끝나지 않았다. 일본 위성TV 방송사 BS닛폰은 송일국이 주연한 MBC 드라마 <신이라 불리운 사나이>와 KBS 2TV <강력반>의 방영을 전면 취소했다. BS닛폰은 “드라마를 방송할 경우 시청자의 항의가 쏟아질 것으로 우려해 이런 결정을 내렸다”고 이유를 밝혔다.
일본 정치인뿐 아니라 연예인들까지도 감정싸움에 나서고 있다. 일본 인기 드라마 <전차남>으로 유명한 배우 이즈미야 시게루는 8월 중순 한 행사에 참여해 독도 분쟁을 두고 “한국 스포츠 선수나 가수가 정치적인 언동을 하는 게 가장 문제”라고 지적했다. 지난해 본격적으로 일본에 진출해 인기를 높여가던 김태희는 올해 2월 뜻하지 않은 상황에 마주쳐 광고 모델 활동에 제동이 걸렸다. 7년 전 스위스에서 독도 관련 캠페인에 참여한 사실이 뒤늦게 일본에 알려지면서 논란이 된 것.
정치 현안에 참여하는 한류 스타에게 자국 활동에 강력한 제재를 가하는 일본의 이 같은 방침 탓에 타격을 입는 건 아니러니하게도 한국 연예계다.
일본 역사를 거론하는 드라마와 영화는 배우 캐스팅에 극심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해당 작품에 출연해 자칫 일본 활동에 제약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 탓에 대부분의 연예인이 극도로 몸을 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 드라마 <각시탈>의 주연들. |
<각시탈> 제작 관계자는 “방송 전 두 명의 아이돌 출신 연기자들에게 여주인공 출연 제안을 했는데 모두 ‘일본 활동이 걱정된다’는 이유로 거절했다”며 “남자주인공 역 또한 거의 모든 배우가 거절했는데 이유 또한 비슷하다”고 밝혔다.
한류 스타들은 여전히 드라마 캐스팅 1순위로 꼽힌다. 인지도와 지명도는 물론 드라마 해외 판매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어서다. 한류 스타들의 선택으로 인해 드라마 흐름이 바뀌는 경우도 많다. 때문에 방송가에서는 한류 스타들의 지나친 ‘눈치 보기’로 인해 다양한 드라마 기획 환경이 자칫 위축될 수 있다는 위기론이 확산되고 있다.
일본 내 한류의 기반을 이루고 있는 한국 드라마가 현지에서 얻는 인기도 예전만 못하다. 8월 말 오사카에서 만난 한 방송 관계자는 “한국 드라마를 대하는 일본 방송사의 반응이 2~3년 전보다 식은 게 사실”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이 관계자가 짚은 인기 하락 이유는 “한국 드라마의 질이 점점 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일본에서 ‘대박’을 친 최근의 한국 드라마 <미남이시네요>까지만 해도 기발하고 참신한 작품으로 평가받았지만 “요즘은 감각적인 한국 드라마를 찾아보기 어렵다”는 설명도 이어졌다. 현재 일본에서 방송 중인 한국 드라마는 <자명고> <검사 프린세스> 등 2~3년 전에 방송했던 ‘묵은 작품’들이다.
한국 드라마의 최대 수출국은 일본이다. 여전히 한국에서 방송해 인기를 얻은 대부분의 드라마는 일본으로 곧장 건너가지만 “수출 단가는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는 게 드라마 외주제작사들의 공통된 설명. 드라마 질이 떨어지는 데는 한류스타들의 ‘과잉 몸값’이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최근 막을 내린 어느 지상파 드라마의 경우 주인공을 맡은 한류 톱스타 혼자서 가져간 편당 출연료가 편당 제작비의 3분의 1 수준에 달했다. 가령 드라마 한 회 제작비가 3억 원이라고 치면 주인공 혼자 매회 1억 원씩을 챙겨간 셈이다. 제작사는 나머지 2억 원으로 드라마를 만드는 건 물론 주인공 한 명을 뺀 모든 연기자의 출연료까지 챙겨줘야 했다. 돈이 특정 스타에게 집중되다보니 드라마의 질이 떨어지는 건 예상된 수순이었다. 이 드라마는 방송 내내 경쟁작에 밀려 시청률에서 고전을 면치 못했다.
비록 일부이지만 일본 자본이 직접 한국 드라마에 투자해 자국 입맛에 맞는 ‘맞춤형 드라마’가 나오기 시작한 것도 2~3년 전부터다. 한국 드라마의 질 저하가 곧장 일본 수출 하락과 한류스타의 인기 급락 혹은 활동 제제로 이어지는 악순환이다.
일본 상황이 이렇다보니 최근 중국으로 눈을 돌리는 스타들도 늘어나는 추세. 하지만 중국도 만만치 않은 환경이다. 한국 드라마를 그대로 수입해 방송하는 데 소극적인 중국은 대신 한국 배우들을 자국 드라마에 대거 캐스팅해 철저히 ‘현지화’ 전략을 구사한다. 제작 편수가 많아 한국 스타들의 진출도 빠르게 늘지만 문화 개방에 소극적인데다 외국 배우 출연 제한을 두는 ‘쿼터제’까지 실시하고 있어 이마저도 어느 선까지 도달하면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
밖도, 안도 위기다. 팽팽한 긴장 속에서도 한류를 이어갈 힘은 스타와 드라마가 갖춘 ‘경쟁력’뿐이다.
일본 오사카 = 이해리 스포츠동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