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애니메이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의 스튜디오 지브리가 민영방송사 니혼테레비의 산하로 들어간다. 2014년 11월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거버너스 어워드에 참석한 미야자키 감독. 사진=AP/연합뉴스](https://storage3.ilyo.co.kr/contents/article/images/2023/1102/1698901499573676.jpg)
지브리의 탄생은 198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알프스 소녀 하이디’ 등 주로 TV 애니메이션을 담당하던 미야자키 하야오와 다카하타 이사오가 중심이 돼 “예산과 스케줄에 얽매이지 않고 고품질 작품을 만들어 보자”며 발족했다. 특유의 따뜻한 감성과 압도적인 작화, 세세한 부분까지 신경 쓴 지브리 작품은 폭넓은 세대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2002년 개봉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이듬해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황금곰상을 수상했고, 예술성까지 인정받으며 ‘애니메이션 명가’로서의 위상을 확고히 했다.
미야자키 감독을 선두로 히트작은 속속 탄생했으나 ‘뒤를 이을 인재가 없다’는 것이 언제나 숙제였다. 스즈키 사장은 회견에서 “후계자 육성에 모조리 실패했다”고 밝혔다. “후계자로서 이름이 오른 것은 적어도 6명이었다”고 한다. 그중 한 명이 ‘귀를 기울이면’의 감독을 맡아 장래가 촉망됐던 곤도 요시후미였다. 안타깝게도 1998년 47세의 나이로 요절해 지브리의 새로운 시대를 열지 못했다.
![미야자키 감독의 최신작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는 손으로 그림을 그리는 고전적인 작화법을 고수해 제작에만 무려 7년이 걸렸다. 사진=스튜디오 지브리 홈페이지](https://storage3.ilyo.co.kr/contents/article/images/2023/1102/1698901514791536.jpg)
일각에서는 “미야자키 감독의 아들이자 ‘게드전기’의 감독 고로에게 지브리를 승계하자”는 의견도 나왔다. 그러나 “미야자키라는 이름으로 지브리를 지배해서는 안 된다”며 미야자키 감독이 반대했고, 고로 본인도 “회사 장래는 다른 이에게 맡기는 게 좋겠다”며 마다했다고 한다.
이처럼 지브리가 닛테레의 자회사가 되기로 한 이유는 “마땅한 후계자를 찾지 못한 데다, 안정적인 경영기반이 필요했기 때문”이라는 시각이 우세하다. 잘 알려진 대로, 지브리의 작품에는 많은 비용이 든다. 가령 미야자키 감독의 최신작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는 손으로 그리는 고전적인 방법을 고수해 제작에만 무려 7년이 걸렸다. 과거 인터뷰에서 스즈키 도시오 사장은 “한 편의 영화 제작에 400~500명의 스태프가 관여한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스즈키 도시오 사장은 경영권 양도 기자회견에서 “한 사람이 짊어지기엔 지브리가 너무 큰 존재가 됐다”고 말했다. 사진=스튜디오 지브리 홈페이지](https://storage3.ilyo.co.kr/contents/article/images/2023/1102/1698901641355220.jpg)
일본 매체 주간다이아몬드는 “미야자키 감독이 납득할 만한 작품을 만들려면 인력과 시간, 돈을 쏟아부어야 한다”며 “손익분기점을 넘기 위해서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같은 300억 엔 이상의 메가히트작을 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미야자키 감독은 82세, 스즈키 사장도 75세가 됐다. 지브리가 이대로의 체제를 이어가기는 아무래도 어렵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지브리 팬들은 이번 결단을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닛케이마케팅저널이 설문 조사한 결과, 대기업의 자회사가 된 것에 대해서는 ‘기대하지 않는다’가 52%로 ‘기대한다(40%)’를 웃돌았다. “애니메이션 장인들의 집단이라 할 수 있는 지브리가 경제적 합리성을 중시하는 대기업 산하에서 히트작을 계속 낼 수 있을지 걱정”이라는 목소리도 들린다.
![2002년 개봉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300억 엔 이상을 벌어들인 지브리의 메가히트작이다. 사진=스튜디오 지브리 홈페이지](https://storage3.ilyo.co.kr/contents/article/images/2023/1102/1698901655816857.jpg)
일본 언론에 따르면 “지브리는 장편 애니메이션 위주에서 벗어나 짧은 작품 제작도 검토 중”이라고 한다. 그중 하나가 TV 애니메이션이다. 장편 영화는 개봉할 때까지 들어오는 수입이 없지만, TV 애니메이션은 정기적인 수입을 올릴 수 있다. 최근 일본 TV 방송사들도 애니메이션 콘텐츠를 통해 수익을 올리는 방안을 잇달아 강화 중이다. 특히 해외시장 확대를 위한 움직임이 활발하다. 후지TV는 중국 동영상 유통업체인 빌리빌리(Bilibili)와 제휴해 애니메이션 공동제작에 나섰으며, TV도쿄는 동남아시아 시장에 자사 애니메이션 공급을 늘릴 방침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지브리는 스트리밍은커녕 TV 방송조차 원하지 않았다. 작품을 영화관에서 보라는 것이 이유였다. 그런 지브리도 결국 2020년 넷플릭스와 계약을 맺고 일본과 미국, 캐나다를 제외한 190개국에 배포를 시작했다. 일본에서의 스트리밍 서비스를 아쉬워하는 목소리가 많았으나, 닛테레가 지브리를 인수하면서 “같은 그룹 내 OTT 플랫폼 훌루(Hulu)에서 지브리 작품을 볼 수 있는 게 아니냐”는 기대감이 높다.
인수를 계기로 지브리의 글로벌 진출과 지식재산권(IP)의 상품화 및 게임화, 이벤트 개최 등 다중 전개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기업 품에 안긴 지브리는 과연 작품성과 수익성을 양립시킬 수 있을까. 설립 이래 가장 큰 기로에 서 있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