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산에 업계선 영유아‧어린이 사업 잇달아 철수…‘골드키즈’ 공략 승산 있나
하림산업은 매년 성장하는 ‘골드키즈(Gold kids, 왕자나 공주처럼 귀하게 자라는 외동아이를 뜻하는 신조어)’ 시장을 겨냥해 이번 푸디버디 브랜드를 선보였다고 밝혔다. 그러나 최근 저출산 기조가 이어지면서 식품업계에서는 영유아, 어린이 관련 사업을 철수하고 노년층을 겨냥한 제품에 눈을 돌리고 있다. 최근 식품업계 트렌드와 정반대로 가고 있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앞서 하림이 선보인 ‘더 미식’도 큰 빛을 보지 못한 탓에 제품군을 확대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는 얘기도 있다. 게다가 최근 하림 브랜드 생닭에서 벌레가 다량 발견됐고 매끄럽지 못한 김 회장의 해명이 푸디버디 론칭에 재를 뿌렸다는 비판도 나온다.
하림산업은 지난 1일 어린이식 브랜드 ‘푸디버디’ 론칭 기념 기자간담회를 열고 즉석밥 3종과 라면 4종, 국물요리‧복음밥‧튀김요리 5종, 핫도그 5종 등 신제품 24종을 출시한다고 밝혔다. 하림산업 관계자는 “푸디버디의 모든 제품은 하림의 식품철학에 따라 가장 신선한 자연 식재료로 제대로 만들어졌다”며 “부모들이 안심할 수 있도록 전문 영양사를 통해 어린이의 성장과 발육에 맞춘 영양학적 제품 설계까지 강화했다”고 소개했다.
어린이식 브랜드 ‘푸디버디’ 론칭은 우리아이에게 좋은 것만 먹이려는 부모들의 심리를 잘 공략한다면 승산이 있을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유아차나 아이 옷 등 가공품은 해외 프리미엄 브랜드 수입 제품을 사용할 수 있겠지만 먹거리는 그렇지 않다. 아무리 시대가 변해도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국산의 좋은 먹거리를 먹이려 할 것”이라며 “다만 기존 하림의 이미지는 저렴하고 신선한 닭고기를 파는 기업인데 식품 브랜드를 론칭하면서 프리미엄 전략을 펼치는 점은 소비자에게 혼선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식품업계 한 관계자는 “맞벌이 부모가 일일이 밥 짓고 국 끓여 아이를 먹일 수 없다. HMR 제품을 사서 먹이는 부모들이 늘고 있고, 되도록 아이 건강 고려해서 좋은 재료로 만든 제품을 먹이려고 할 것”이라며 “또 어린이 식품은 미래 잠재고객을 키우는 시장이라 생각한다”고 밝혔다.
우려도 짙다. 저출산 기조가 계속되면서 식품업계는 영유아‧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사업을 속속 철수하고 중‧장년층 이상을 대상으로 한 건강기능 식품이나 단백질 제품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LG생활건강은 2022년 11월 10년 만에 영유아 식품 사업에서 철수했다. LG생활건강은 2012년 액상 타입의 분유 ‘베비언스 퍼스트밀’을 시작으로 분유 시장에 진출했다. 당시 LG생활건강은 차세대 신사업 중 하나로 분유 사업을 선택했다. 그러나 매출이 예상에 미치지 못했고 전체 실적에도 영향을 주기 시작하자 사업을 중단했다.
롯데웰푸드도 지난해 10월 파스퇴르 베이비푸드 브랜드 ‘아이생각’ 사업을 철수했다. ‘아이생각’은 2018년 8월 롯데웰푸드가 칭한 이유식 브랜드로 주문하면 바로 만들어 배송해주는 배달 이유식 서비스도 운영했다. 당시 롯데웰푸드도 사업 철수 이유를 설명하며 저출산으로 향후 시장 확장이 제한된다는 점을 들었다. 이외에 매일유업‧남양유업도 일부 분유제품을 단종시켰다.
앞서 하림은 2021년 간편식 브랜드 ‘더 미식’을 론칭하며 기존 종합식품기업으로 도약할 목표를 세웠다. 라면, 즉석밥, 국물요리, 만두 등 프리미엄 간편식 포트폴리오를 확장하며 다양한 제품군을 선보였지만 실적은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 하림의 더 미식 장인라면은 현재 라면 시장에서 점유율 1% 수준에 그친다. 지난해 3월 출시한 더미식 백미밥의 시장 점유율 역시 한 자릿수에 머물러 있다. 더 미식 론칭 후 적자도 확대됐다. 하림산업의 지난해 매출액은 461억 원으로 전년보다 224억 원 늘었다. 그러나 영업손실은 868억 원으로 전년보다 279억 원 확대됐다.
2021년 ‘더 미식 장인라면’을 포함한 면 부문 매출액은 62억 원에서 지난해 134억 원으로 크게 늘었다가 2023년 1분기 35억 원으로 떨어졌다. 2021년 ‘더 미식 백미’를 포함한 쌀가공 매출은 4800만 원에서 2022년 85억 원으로 급격히 성장했고, 2023년 1분기 34억 원의 매출을 보였다. 더 미식 면과 쌀 가공 식품의 매출은 늘었지만 매출원가가 매출액의 2배를 넘어서고 판관비도 꾸준히 증가해 하림산업 영업이익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하는 데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하림산업의 매출원가 변화 추이를 살펴보면 2020년 203억 원, 2021년 596억 원 , 2022년 980억 원으로 최근 3년간 4배 이상 급증했다. 판관비 역시 2020년 134억 원에서 2021년 209억 원, 2022년 349억 원으로 더 미식 론칭 이후 3배 가까이 증가했다. 하림산업 관계자는 “더미식은 출시한 지 만 2년밖에 안 된 브랜드기 때문에 초기 투자 단계로 이해해달라”고 말했다.
영유아 HMR 제품을 판매하는 한 식품업계 관계자는 “사실 HMR 제품은 잘 되는 것만 잘 되는 특징이 있어 새롭게 제품군을 늘려서 성공하긴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종우 아주대 경영학과 교수는 “브랜드 인지도나 이미지를 고객에게 각인시키려면 제품 하나를 제대로 키워야 하는데, 삼양식품의 불닭볶음면이 그 예”라며 “라인업 늘리는 문어발식 확장으로는 성공할 수 없고, 제대로 된 제품 하나를 잘 키워내는 게 더 효율적”이라고 말했다.
최근 하림이 판매한 동물복지 생닭에서 벌레가 발견돼 위생 문제가 불거진 것도 ‘푸디버디’ 론칭의 악재로 꼽힌다. 특히 김홍국 회장은 지난 1일 푸디버디 론칭 기자간담회에서 생닭 벌레와 관련한 해명을 하다 구설에 올랐다. 김 회장은 이날 “곤충을 식용으로 쓰는 부분이 있다. 딱정벌레(애벌레인 밀웜)도 그중 하나라서 실질적으로 큰 문제는 없지만 위생적으로 ‘이물질’로 분류되기 때문에 들어가면 안 된다”고 설명했다.
하림산업 관계자는 “현재 유아식 제품들은 고품질 식재료를 바탕으로 개발돼 매우 높은 시장가가 형성돼 있다. 첨가물을 넣지 않고 맛을 내려면 많은 양의 식재료가 필요하기 때문”이라며 “하지만 하림산업의 푸디버디는 식재료 구매와 손질, 제조, 포장, 출고까지 전 생산라인을 갖춰 부가적인 비용을 최소화해 가격을 합리적으로 책정했다”고 밝혔다. 저출산 기조에 대해서는 “조제분유 시장 규모는 감소하지만 영유아식 시장 규모는 꾸준히 상승하고 있다”며 “생활양식의 변화로 어린이 전용 HMR에 대한 니즈가 증가하고 있다. 어린이식의 새로운 시장을 열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김정아 기자 ja.kim@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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