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건 후 변호사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셰릴(앞줄 왼쪽)과 라나 터너. |
쟈니의 폭력으로 라나는 결별에 대한 의지를 굳히게 된다. 여배우의 얼굴에 멍 자국을 내는 상식 이하의 행동을 용납할 순 없었던 것이다. 라나는 베벌리힐스 노스 베스포드 730번지의 저택에 1958년 4월 1일에 입주 예정이었고, 새 집에서 딸 셰릴과 함께 새로운 삶을 꿈꾸고 있었다. 하지만 쟈니는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이사 후 상점에서 여러 집기들을 살 때도 쟈니는 라나 주변을 맴돌고 있었다. 4월 4일도 마찬가지였다. 쟈니는 라나 곁에 진드기처럼 들러붙어서 함께 상점을 돌아다녔다. 다행히 밤이 되자 쟈니는 보스인 미키 코헨의 부름을 받고 어떤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떠났다.
그날 밤 친구들과 함께 집에서 술을 마시던 라나는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친구 중 한 명이 쟈니와 함께 군 복무를 했는데 알고 보니 쟈니는 무려 일곱 살이나 나이를 속이고 있었던 것. 그는 자신이 39세라고 했지만 사실은 32세였고 연하와의 관계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던 라나 터너는 분노했다. 친구들이 돌아간 뒤 쟈니는 일을 마치고 라나의 집으로 돌아왔다. 라나는 쟈니와 대판 붙었고 밖에서의 일로 뭔가 심기가 불편했던 쟈니는 “얼굴에 상처를 내 주겠다”며 라나를 협박했다. 다툼은 점점 고조되었고, 방에서 숨죽이고 있던 라나의 딸 셰릴은 히스테리컬한 상태가 되어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 셰릴. |
라나는 주치의에게 전화를 걸었고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셰릴은 생부인 스티븐 크레인에게 연락했다. 도착한 의사는 쟈니가 죽은 것을 확인한 후 라나에게 소리쳤다. “빨리 제리 기즐러를 불러요!” 기즐러는 당시 할리우드 최고의 변호사였다. 야심한 밤에 도착한 기즐러는 상황을 파악한 후 경찰에 전화를 걸었고 갱 보스인 미키 코헨도 자신의 보디가드가 저승 사람이 된 것을 알게 되었다. 라나는 재판 결과보다 코헨이 킬러를 보내 자신과 딸 셰릴을 죽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엄청난 두려움을 느꼈다. 게다가 코헨은 공개적으로 “나는 라나와 셰릴 모녀가 쟈니를 죽였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누군가 제3자가 들어와 쟈니를 죽인 게 분명하다”고 주장했고, 할리우드가 라나를 감싸며 사건을 은폐하려 한다고 분노했다.
코헨은 꼼수를 부리기 시작했다. 먼저 그는 죽은 쟈니의 집을 뒤져 라나가 보낸 메모들을 찾아냈고 그것들 중 라나가 다시 관계를 시작하자며 보낸 메모 하나를 찾아내 언론에 공개했다. 그들이 대립 관계가 아니었다는 걸 부각하려는 속셈이었다. 하지만 언론은 라나 편이었다. 그러자 코헨은 초강수를 두었다. 라나가 자고 있을 때 쟈니가 몰래 찍은 누드 사진으로 협박한 것이다. 라나와 변호사 기즐러는 네거티브 필름을 입수해 불태워 버렸다. 사건이 일어난 지 며칠 후 LA의 지방검사인 윌리엄 맥키슨은 기자회견을 열어 유명인사가 관련되었지만 원칙대로 조사될 거라고 강조했다. 한편 당시 14세였던 셰릴은 LA 지역의 소년원에 잠시 머물렀다. 쟈니 스톰파나토의 사체는 일리노이로 옮겨져 참전 군인의 예를 다해 장례식이 치러졌다.
4월 7일에 공판이 열렸다. 미디어의 엄청난 관심 속에 라나 터너는 회색 실크 정장을 입고 등장했다. 최근작인 <페이톤 플레이스>엔 틴에이저 딸을 대신해 눈물을 흘리며 증인석에 서는 법정신이 있었는데, 바로 그 장면에 입었던 옷이었다. 한 시간 동안 이어진 공판에서 라나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는 듯 두어 번 무너지는 모습을 보였고 휴식 시간에 기자들이 몰려왔을 땐 졸도 증세를 일으키며 쓰러졌다.
이어지는 재판. 왜 칼에 스크래치가 있고 날엔 이가 빠졌는지, 왜 칼에 지문이 남아 있지 않은지, 쟈니가 죽은 방엔 왜 핏자국이 없는지, 칼에 묻어 있는 신원을 알 수 없는 머리카락은 누구의 것이며 정체불명의 섬유 조직은 무엇인지 등등. 끊임없이 ‘왜’와 ‘무엇’과 ‘누구’가 이어졌지만 라나의 대답에선 그 어떤 단서도 찾을 수 없었다. 이때 방청석에서 누군가 소리쳤다. “모두 거짓말이야! 엄마와 딸이 모두 그 남자와 사랑에 빠진 거였어!” 그 남자는 끌려 나갔고, 사람들은 아마도 미키 코헨이 심어놓은 작자일 거라며 수군거렸다.
12명의 배심원들은 딸 셰릴이 자신과 엄마의 목숨에 위협을 느낀 나머지 저지른 ‘정당방위에 의한 살인’이라고 만장일치 합의를 보았다. 검사는 사건을 종결했고 이후 쟈니의 유족들이 민사 소송을 제기했지만 조용히 합의로 끝났다. 법원은 라나가 부모로서 부적합하다며 셰릴에게 할머니와 지내도록 명령했고, 이후 셰릴은 LA의 산 페르난도 밸리에 있는 보호 시설로 옮겨졌다. 심리적 충격을 치료하기 위한 거라는 명목이었지만 그곳에서 셰릴은 두 번이나 탈출을 기도했다가 잡혀왔다.
제리 기즐러를 비롯 당시 LA의 유명한 변호사들이 총출동했던 그 사건에 대해 대중은 라나 터너가 죽인 후 딸에게 덮어씌웠다고, 법정에서 보여준 모습은 터너의 인생에서 최고의 연기라고 수군거렸다. 하지만 죽은 자는 말이 없는 법. 딸 셰릴은 1988년에 낸 자서전에서도 자신이 쟈니를 죽였다고 기록했다. 한편 소설가 해롤드 로빈스는 이 사건을 기반으로 1962년에 <사랑이 지나간 곳(Where Love Has Gone)>이라는 소설을 썼고, 2년 뒤 영화화되었다. 라나 터너 역은 수전 헤이워드가 맡았다.
김형석 영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