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왼쪽부터 갱스터로 유명한 벅시 시겔과 그의 연인 버지니아 힐, 영화 배우 조지 래프트. 배경은 벅시 시겔이 지은 플라밍고 호텔. |
1920년대부터 1950년대까지 이어진 할리우드의 황금기는 곧 ‘할리우드에서 활동한 갱스터의 황금기’이기도 하다. 갱들은 알 카포네 시기부터 할리우드에 진출하기 시작했다. 금주법 시대에 할리우드는 가장 매력적인 밀주 시장이었고, 게다가 다른 지역보다 비싼 값에 팔 수 있는 곳이었다. 마약 장사도 쏠쏠했는데 상대적으로 경계가 덜한 스튜디오 한구석엔 마약 판매의 본거지가 몰래 차려질 정도였다. 1930년대에 금주법이 철폐되자 갱들은 새로운 사업을 열었다. 대공황 시절 급전이 필요한 영화인들을 상대로 고리대금업을 시작한 것. 하지만 여기서 만족하지 않았다. 그들은 직접 할리우드로 진출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려면 발판이 필요했고 이때 조지 래프트가 등장한다.
1895년에 뉴욕의 대표적인 빈민가인 헬스 키친에서 태어난 래프트는 오우니 매든과 죽마고우였다. 이후 ‘더 킬러’라는 닉네임으로 유명해진 매든은 리처드 기어와 다이앤 레인이 출연한 영화 제목으로도 유명한 ‘카튼 클럽’을 만든 사람으로(영화 <카튼 클럽>(1984)에선 밥 호스킨스가 매든 역을 맡았다), 복싱 프로모터로도 활동했다. 이른바 ‘생각하는 자의 갱스터’로서 뉴욕 범죄 세계에서 존경과 공포를 한몸에 받았던 인물이기도 하다. 그는 1930년대에 뉴욕 지역 갱들의 전쟁을 피해 서부로 이동하는데 이때 조지 래프트와 동행한다.
매든의 목적은 두 가지였다. 갱 전쟁에서 친구인 래프트를 보호하는 것, 그리고 친구를 할리우드 스타로 만드는 것이다. 이후 조지 래프트는 곧 스타덤에 오르는데 그 기반은 갱스터 무비였다. 1930년대 할리우드는 신문의 헤드라인을 장식하는 갱들에 대한 이야기를 소재로 수많은 영화를 만들었고 갱스터 무비는 인기 장르로 떠올랐다. 래프트는 <퀵 밀리언즈>(1931) <스카페이스>(1932)로 방향을 굳혔고, ‘간지’ 나게 쫙 빼 입은 갱스터 캐릭터는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되었다. 그에게 갱스터 연기는 실제 현실에서 온 것이었고 갱들도 자신들이 래프트를 통해 멋있는 모습으로 스크린에 펼쳐진다는 사실에 매우 큰 만족감을 표시했다.
할리우드 사교계에서 중심인물이 된 래프트는 빌리 도브, 캐롤 롬바드, 루실 볼, 베티 그레이블, 노마 시어러 같은 여배우들과 어울렸고, 그들은 래프트의 파란만장하고 굴곡 있는 과거에 흥미를 느꼈다. 이때 래프트가 알게 된 사람이 바로 워런 비티와 아네트 베닝 주연의 영화로 만들어지며 두 사람을 연인으로 만들었던 <벅시>(1991)의 실제 주인공인 벤자민 벅시 시겔이었다. 그는 1930년대 말에 뉴욕에서 파견되어 캘리포니아 갱 조직으로 왔다. 당시 캘리포니아는 ‘LA의 알 카포네’로 불리던 잭 드래그나가 장악하고 있었지만, 사실 그의 조직은 ‘미키 마우스 마피아’로 불릴 정도로 느슨했고 곧 시겔이 장악하게 된다. 그는 불법 마권 사업으로 큰 수익을 거두었다.
▲ 영화 <벅시>. |
1940년대 뉴욕과 시카고의 갱들은 주도권 다툼을 벌였고 서부 지역에서 새로운 사업을 벌이려고 한다(<대부>(1972)에서 돈 코르레오네의 둘째 아들이 서부의 엔터테인먼트 산업에 진출하는 것도 1940년대다). 그 핵심은 네바다의 사막 지역인 라스베이거스를 도박의 메카로 만드는 것이었고 그 책임자가 바로 벅시 시겔이었다. 그는 연인인 버지니아의 별명을 따 ‘플라밍고’ 호텔을 짓기 시작했는데, 1946년 개장했을 땐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했다. 투자자들은 격분했고 시겔은 할리우드 친구인 윌리엄 윌커슨(그는 <할리우드 리포트>를 창간한 사람이다)에게 빌린 돈으로 위기를 넘긴다. 하지만 뉴욕의 보스들은 이미 시겔에 대한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그것은 죽음이었고, 시겔은 1947년 6월 20일에 동부에서 온 킬러에 의해 총에 맞아 숨진다. 버지니아가 유럽에 간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고 죽은 장소는 버지니아의 베벌리힐스 저택이었다.
시겔의 죽음에 래프트는 완전히 공황 상태에 빠졌지만 사건의 전말을 안다고 해서 경찰에 그대로 이야기할 정도로 바보는 아니었다. 그는 사건에 대해 일체 발설하지 않았고 이후에도 긴 시간 동안 갱스터들의 일을 도왔다. 그는 갱 조직이 운영하는 카지노가 열릴 때마다 바람잡이 역할을 했다. 도박장에서 거금을 쏟아 붓는 ‘호구’들을 끌어들였고 자신의 인맥을 동원해 댄서들을 데려와 화려한 쇼를 이끌었으며, 그곳을 찾는 자신의 팬들을 위한 사인회를 열었다. 1940년대엔 미국배우조합에서 마피아를 상대하는 일을 맡아 위협을 받는 배우들과 갱스터 사이에 원만한 관계를 주선하기도 했다.
런던 카지노에 개입했다는 이유로 영국으로부터 입국 금지 조치를 받기도 했던, 어쩌면 갱스터보다 더 갱스터 같았던 배우였던 조지 래프트. 그는 갱스터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천수를 누렸고, 79세의 나이에 평안히 세상을 떠났다.
김형석 영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