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신문] “강남스타일, 영어 버전 생각 없다.”
유튜브 조회수 2억 건을 돌파하고 아이튠즈 월드 차트 1위를 기록하며 세계를 접수한 ‘강남스타일’의 돌풍 이유가 이 한마디에 녹아 있다. 특권과 부의 상징인 강남을 우습게 만들어 버리더니, 팝의 제국 미국에서 먼저 ‘물건’을 알아보고 싸이를 모셔갔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라더니 딱 요즘 싸이 돌풍을 두고 하는 말 같다.
우스꽝스럽고 촌티 나는 싸이의 ‘강남스타일’ 뮤직비디오는 극과 극을 연결하는 묘한 메타포가 있다. ‘강남’을 논하는 노래 제목과 이를 표현하는 한없이 가벼운 ‘말춤’이 보는 이들로 하여금 낄낄거리게 만든다. 권위 있는 것을 별 거 아닌 것으로 풍자하는 통쾌한 비트가 전 세계인의 심장 박동수를 기꺼이 뛰게 만들었다.
최근 웹툰에선 이말년으로 대표되는 ‘병맛 만화’가 인기를 끌더니 문학계에선 엄마들의 포르노라 불리는 유럽 소설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가 전 세계적으로 대히트를 쳤다. 가볍고 어수룩한 6인방이 출연하는 <무한도전>은 MBC 노조 파업 기간 동안 결방돼 ‘무한빠’들을 뿔나게 만들었다.
아, 이들도 있다. 유세윤, 뮤지의 그룹 UV는 ‘쿨하지 못해 미안해’ ‘이태원 프리덤’을 통해 ‘개가수’의 탄생을 알렸다. 최근에 선보인 ‘그 여자와 살래요’ 뮤직비디오에선 록커 윤도현이 출현해 A급과 B급의 경계를 간단히 허물었다. 싸이는 “이들보다 더 웃긴 뮤비를 만들어야 겠다고 작심하고 ‘강남스타일’을 만들었다”고 밝힌 것처럼, 이젠 B급 문화의 피가 사회 구석구석에 충만해 색다른 문화 스타일을 향해 수혈되고 있다.
주변을 보면 애든 어른이든 유명스타든 싸이의 말춤을 춘다. 심지어 민주당 대선후보로 선출된 문재인 후보가 경선 참여를 독려하는 CF에서 말춤을 췄다. 물론 진짜 문 후보가 말춤을 췄다는 건 아니다. 말춤 추는 싸이의 얼굴 위에 문 후보의 얼굴이 살포시 포개진 합성일 뿐. 어쨌거나 ‘쌈마이’ 싸이는 잘 만들어진 ‘B급 콘텐츠’가 A급 대접을 받는 시대의 아이콘이 됐다.
싸이의 인기는 미리 계획된 것이 아니라 SNS를 통해 수억 명의 대중이 먼저 그를 찜했다. 현실감 없는 먼 나라의 세계적 스타 브리트니 스피어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싸이와 친구가 됐다. 하지만 싸이는 이 인기가 시들해진다 해도 ‘싸이스러움‘은 그대로일 것이라는 믿음이 간다.
누군가의 입맛에 맞추려는 순간 스타는 지루해진다. B급 문화의 요체는 자신의 개성을 온전히 드러내는 것이지, 업그레이드하려는 순간 힘을 잃는 아이러니의 세계다. 싸이는 한국에 있든 미국에 데려다 놓든 똑같은 싸이다. 그는 쫄지 않는다. 그게 아름답다.
김수현 기자 penpop@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