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드니 코샤크. |
만약 할리우드와 갱스터의 관계를 알고 싶다면 반드시 봐야 할, 아니 많은 분들이 이미 봤을 영화가 있다. 바로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의 <대부>(1972)다. 원작자인 마리오 푸조는 현실의 마피아 이야기를 다루면서 소설엔 단 한번도 ‘마피아’라는 단어를 쓰지 않는 우회적인 방법을 사용했는데, 이것은 몇몇 캐릭터에 대한 묘사에도 유용한 것이었다. 그는 대부분 현실의 인물을 토대로 캐릭터를 만들어나갔다. 마이클(알 파치노)가 서부 진출을 위해 만나는 모 그린(알렉스 로코)이라는 인물은 라스베이거스의 카지노 사업을 일으킨 벅시 시겔이 모델. 그는 마이클에 의해 죽는데 <대부 2>(1974)에서 그에 대한 복수를 계획하던 하이만 로스(리 스트라스버그)는 1930년대 갱 세계의 전략가로 이름 높았던 마이어 랜스키를 토대로 했다. 여기서 주목할 만한 인물은, 비토 코르레오네(말런 브랜도)의 양자이며 패밀리의 법적 문제를 해결했던 변호사 톰 하겐(로버트 듀발)이다. 그는 1940년대 이후 LA에 실존하며 엄청난 힘을 과시했던 변호사 시드니 코샤크에서 영감을 얻은 캐릭터다.
1907년에 부유한 유태인 집안에서 태어난 코샤크는 로스쿨을 졸업한 후 시카고에서 변호사 개업을 했고, 곧 당시 ‘밤의 대통령’이었던 알 카포네 조직의 일을 하게 된다. 이후 그는 카포네에 의해 LA 지역으로 파견되어 갱 조직과 할리우드의 가교 역할을 한다. 코샤크의 전문 분야는 노동 문제였는데, 스튜디오에 노조 문제가 생길 때 사장들은 코샤크에게 의존했다. 협상의 달인이었던 그는 곧 ‘해결사’(the fixer)라는 별명을 얻었고, 고액의 수임료를 받게 되었다(그가 받은 돈은 일단 시카고로 입금된 후 조직 내의 배분 후에 그에게 전달되었다).
시드니 코샤크는 불법과 합법 사이의 박쥐 같은 존재였다. 힐튼호텔, 하얏트호텔, MGM, 플레이보이, 유니버셜, 다이너스 클럽, LA 다저스 같은 엔터테인먼트 세계의 유명 브랜드들이 그가 오른손으로 잡고 있는 양지의 고객이었다면, 코샤크의 왼손은 갱 보스들과 연결되어 있었다. 흥미로운 건 그에겐 사무실이 없었다는 사실. 베벌리힐스의 호화 레스토랑인 ‘비스트로’의 탁자가 그의 업무실이었고, 그곳에서 스튜디오의 사장들을 비롯해 프랭크 시내트라, 로널드 레이건, 워런 비티, 휴 헤프너 같은 거물들을 만났고 여배우들과 시시덕거리기도 했다. 대신 모든 문제는 전화 한 통으로 해결했다.
▲ 시드니 코샤크의 압력에 <007 다이아몬드는 영원히> 본드걸은 그가 사랑하던 질 세인트 존스로 낙점됐다. |
여기서 다시 <대부> 이야기를 꺼낸다면, 영화 도입부의 결혼식 장면에 축하 공연을 하는 자니 폰테인(알 마티노)이라는 캐릭터가 있다. 당사자는 물론 부인했지만, 이 캐릭터의 모델이 프랭크 시내트라였다는 건 공공연한 사실. ‘My Way’로 유명한 국민 가수였지만 시내트라의 엔터테이너 인생은 갱스터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했다. 야망으로 가득 찬 신인이었던 1930년대, 그는 첫 아내인 낸시 바바토의 사촌인 존 바바토가 ‘뉴저지의 알 카포네’로 불리던 윌리 모레티와 친분이 있다는 인연으로 큰 무대에서 설 수 있었고 그 사례로 출연료의 일부를 조직에 상납했다. 그 무대를 발판으로 조금 인기를 얻자 1939년에 토미 도지라는 음반 제작자와 계약을 하는데, 1940년대에 빅 스타가 된 시내트라는 그를 벗어나 더 큰 회사와 계약하고 싶었지만 토미 도지는 절대 놔주지 않았다. 시내트라는 모레티에게 도움을 청했고, 모레티가 도지의 목구멍에 총을 쑤셔 박은 후 협박하자 일은 해결됐다.
▲ 프랭크 시내트라. |
갱과의 인연을 놓고 이야기하자면 빼놓을 수 없는 또 한 명의 인물이 바로 ‘플래티넘 블론드’로 유명했던 여배우 진 할로우. 그녀의 계부는 의붓딸을 갱에게 소개시켜 주면서 자신에게 떡고물이 떨어지길 바랐고, 진 할로우는 애브너 즈윌만(그는 시내트라의 친구였던 윌리 모레티와 한패였다)이라는 갱과 연인이 된다. 의외로 순정파 젠틀맨이었던 즈윌만은 매달 할로우에게 수표를 보내며 사랑을 고백하기도 했다. 하지만 여기서 진 할로우의 파란만장하면서도 굵고 짧았던 삶에 대해 이야기하려면, 부득이하게 다음 주로 그 기회를 넘겨야 할 것 같다.
김형석 영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