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랐다. 이 정도일 줄 몰랐다. 지난 10월 1일, 집 거실에서 TV를 보고 있는데 한 집에 사는 옆방 남성 서니(가명·35)가 다가와 묻는 것이었다. “(싸이의) 강남스타일 들어봤어?” 인도계 출신의 영국인 서니는 직업이 의사로 평소 대중 음악에 관심이 전혀 없다. 전형적인 모범생 타입이라 할 수 있다. “어떻게 아냐?”고 그에게 묻자, 대답이 ‘역시나’다.
“유튜브를 통해 봤지. 뚱뚱한 남성이 나와 춤을 추는 게 귀엽고 신나더라고. 물론 가사는 전혀 이해하지 못 하지만, 보는 것만으로 즐겁더군. 그(psy)는 영국 넘버 원이라고!”
그렇다. 싸이는 6집 앨범의 타이틀곡인 ‘강남스타일’로 영국 ‘넘버 원’이 됐다. 지난 9월 30일 영국 음반 순위 집계 업체인 오피셜차트컴퍼니(OCC)에 따르면,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10월 첫 주 싱글 부문 1위에 올랐다. 영국 차트에 진입한 지 6주 만에 이룬 정상이다.
가수든 운동선수든 해외에서 활동하는 한국인에 대해 한국 언론은 부풀리기 십상이다. 유럽에 불어닥친 K팝 열풍 정도의 제목이 붙은 한국 기사는 현지 사정을 보면 과장됐다. 일례로 지난해 7월 런던 관광지인 트라팔가 광장에 YG엔터테인먼트 소속 가수들의 현지 공연을 요구하는 ‘플래시몹’이 개최됐을 때 모인 인원은 50여 명에 불과했다. 당시 한국 보도는 1000여 명이 모였다고 오보를 냈다.
하지만 싸이는 다르다. 일단 세계 주요 언론에서 언급하고 있다. 미국 <워싱턴포스트>는 “엄청나게 우스꽝스러운 싸이의 말춤은 쿨하기 그지없다”고 평 했고, 미국 AP통신은 “싸이는 팝 문화의 중심이 됐다. 어딘가 기이하지만 강남스타일의 뮤직비디오는 살아 숨쉬듯 화려하다”고 전했다. 음악 전문 주간지 <빌리지 보이스>는 “강남스타일의 뮤직비디오는 짝퉁 느낌이 나지만 세련되고 정교한 구성으로 만들어졌다”고 전했다. 이처럼 한국 가수가 독자적으로 해외 주요 언론의 ‘평’을 받은 경우는 이례적이다.
싸이가 영국 음반 차트에서 제친 가수도 살펴보자. 미국 힙합가수 플로라이다 등이다. 해외 음악에 관심 없는 이라도 한번쯤 들었을 법한 거물들이다. 영국 외에도 호주 벨기에 캐나다 덴마크 핀란드 룩셈부르크 네덜란드 뉴질랜드 노르웨이 등등에서 음반 차트 1위를 차지했다. 팝의 메카 미국 빌보드에서도 1위를 향해 질주하고 있다. 말그대로 세계를 석권하고 있다. 강남스타일은 다국적 온라인 백과사전인 ‘위키피디아’에 영문으로 등록되었고 유튜브 조회 건이 3억을 돌파하고 있다.
싸이의 인기 비결은 무엇일까. 일단 뮤직 비디오 덕을 크게 봤다. 무겁고 진지하게 내용을 담기보다 쉽고 가벼운 내용으로 누구에게나 공감대를 사고 웃음을 자아내게 한다. 런던에서 만난 사람에게 ‘강남스타일’을 아냐고 물어보라. 대다수가 싸이의 말춤을 흉내낼 것이다.
런던 중심가 옥스퍼드 서커스에 있는 음반 업체인 ‘HMV’에서 만난 닉 어윈(51)도 싸이 관련 질문에 말춤을 추며 웃음을 지었다. HMV에서 음반 관리 직원으로 25년 동안 일했다는 어윈은 싸이의 성공을 자신했다.
“보통 영국 싱글 부문에서 정상을 차지한 가수는 적어도 1년은 관심을 받는다. 싸이의 정규 앨범이 ‘HMV’에 진열되면 큰 성공을 거두리라고 예상한다.”
싸이의 또 다른 성공 비결은 후덕한 외모에 있다. 한국 아이돌같이 잘생기고 잘 빠지고 춤 잘 추는 가수는 서구에 널려 있다. 길 가는 청년 숙녀 중에 ‘연예인급’은 차고 넘친다. 서구의 기준으로 외모를 평가하는 이상 한국인, 동양인들은 외적으로 서구인을 넘어설 수 없다. ‘HMV’에서 일하는 에드(44)는 “싸이를 보면 신기하다. 자꾸 눈이 간다”고 말했다.
세계가 경제 위기를 겪는 상황도 싸이의 가치를 드높였다. 최근 영국은 국가신용등급 하락 경고를 받는 등 경제가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살림살이가 팍팍하면 일단 고민일랑 털고 싶기 마련이다. 싸이의 강남스타일을 접한 영국 사람들의 반응은 하나같이 “재밌다”다. 런던 남동부에 사는 조 스티븐(30)은 “일하다 스트레스 받을 때, 머리 아플 때 싸이 음악을 들으면 신이 난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싸이는 음악인이다. 아이돌처럼 기획돼 만들어진 상품이 아니라, 스스로 음악을 생산해 낸다. 한국 특유의 후크송을 자신의 스타일에 맞게 연출했다. 스티븐은 “다른 K팝 가수의 음악을 들을 때는 별 감응이 없지만, 싸이의 강남스타일은 일단 귀에 친숙하다”고 말했다.
싸이에 대한 세계의 관심이 언제까지 이어지질 모를 일이다. 그렇지만 슬슬 어두운 면도 나타나고 있다.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인기를 끌자 김정일 국방 위원장을 풍자한 동영상도 동시에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싸이 관련 해외 기사에 달린 댓글에 엉뚱하게 ‘북한’ 얘기가 나오곤 한다. 이와 관련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싸이의 강남스타일을 보고 단순히 웃을 수 없는 이유다. 그의 모습은 슬쩍 독재자의 모습과 겹쳐진다”고 평했다.
사실 지난 8월만 해도 싸이는 ‘해외 토픽감’이었다. 미국 유명 쇼프로에 나와 브리트니 스피어스에게 춤을 가르쳐 주는 모습에서 사람들은 낄낄거렸지만, 이제 영국 차트 정상에 올라 음악적으로도 인정을 받았던 것이다. 싸이가 영국에 왔을 때 단순히 웃음만을 주기보다 음악인으서 가치를 인정받을지 주목할 만하다.
이승환 영국통신원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