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7회 부산국제영화제 최고의 문제작 가운데 하나는 단연 정지영 감독의 영화 <남영동 1985>다. 정 감독은 이미 지난 해 제16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영화 <부러진 화살>을 최초 공개하며 최고 화제작의 주인공이 된 바 있다. <남영동 1985> 역시 부산국제영화제를 통해 국내에 최초로 공개됐다.
<부러진 화살>에 이어 이번에도 정 감독은 실제 사건을 배경으로 한 영화를 만들었는데, 그 강도는 <남영동 1985>가 훨씬 더 세다. 고문을 주요 소재로 한 이 영화는 관객들에게 마치 고문당하는 듯한 고통을 선사할 정도다.
영화 <남영동 1985>는 고 김근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과 고문기술자 이근안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다만 극중 배역들의 이름은 실명이 아닌 김종태(박원상 분)와 이두한(이경영 분)이다.
“이번 작품이 분명 고 김근태 씨의 이야기임에도 실명 대신 ‘김종태’라는 이름을 쓴 이유는 이 이야기가 김근태 한 사람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영화를 위해 다양한 고문 피해자들을 인터뷰했다. 마지막에 그들의 증언을 올렸다. 홈페이지 들어가면 그들의 증언도 볼 수 있다. 오래전부터 고문에 대한 이야기 하고 싶었다. 특히 고문 가해자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부러진 화살> 개봉을 앞두고 한창 기자들과 인터뷰를 갖고 있던 시점에 김근태 씨가 돌아가셨다. 우연치 않게 김근태 씨의 수기 <남영동>을 보고 고문 이야기를 김근태 씨 이야기로 풀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결국 우연이었지 계획된 것은 아니었다.”
영화는 상당히 불편하다. 고문 과정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영화인 터라 관객들은 마치 극중 김종태가 돼 고문을 당하는 듯한 감정을 느끼게 될 정도다. 영화 <남영동 1985>는 제 17회 부산국제영화제 갈라 프리젠테이션 부문에 초청돼 지난 6일 오후 1시 부산 신세계 백화점 센텀시티 문화홀에서 공식 가지회견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도 <남영동 1985>가 <부러진 화살>보다 훨씬 관객이 보기 힘든 영화 같은데 일부러 영화를 하드하게 만들었는지를 묻는 질문이 나왔다.
“시나리오를 쓰면서 가장 고민한 부분은 내가 묘사하는 고문이 그 실제로 고문 받았던 사람들처럼 아플 수 있을까하는 점이었다. 이 작품은 관객들이 그만큼 아파해야 하는데 과연 내가 할 수 있을지 고민이었다. 그런 장면을 찍을 때 실제 힘들었다. 처음엔 힘든지 몰랐는데 점점 쌓여서 영화를 다 찍고 난 뒤 한참을 힘들어했다. 영화 인생 동안 가장 찍기 힘들었던 작품이었고 그만큼 후유증도 오래 갔다. 관객들이 내가 아파한 만큼 아파한다면 이번 작품을 잘 찍은 게 아닐까 싶다.”
“촬영 하면서 감독님이 고문당하시는 것을 봤다. 촬영 현장에서 모니터를 보며 감독님은 당신 스스로 고문당하는 것 같은 모습을 보였다.”
명계남은 다소 흥분한 듯한 모습이었다. 명계남이 기자의 질문을 '왜 이렇게 관객들이 고통스러워하는 영화를 만들었냐'는 것으로 이해한 게 아닌가 싶은 분위기였다. 이에 기자회견을 진행하던 이용관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이 “관객이 고문당하는 느낌을 받았다는 얘기는 그만큼 연출을 잘했다는 칭찬이니 그렇게 받아들일 필요 없다”며 상황을 정리했다.
오랜만에 부산국제영화제 공식 일정에 모습을 드러낸 명계남은 기자회견 내내 장난끼 넘치는 모습이었다. 자리에 착석하자마자 휴대폰으로 카메라 플래시를 쏟아내는 취재진을 촬영하더니 기자회견 내내 정 감독과 이경영 등 함께 기자회견에 참석한 동려들을 촬영했다. 장난끼 남치는 모습을 거듭 보여준 명계남은 이때만 잠시 흥분한 모습을 보였다. 오랜 영화계 동지이자 노사모에서 함께 활동한 정 감독을 지원하기 위해서였다.
사실 영화 <남영동 1985>는 친노 영화인들이 모여서 만든 작품이기도 하다. 정 감독이 연출을 맡고 명계남이 출연했으며 문성근 민주통합당 상임고문도 특별출연했다. 또한 영화에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잠시 등장하기도 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고 노 전 대통령은 아니다. 영화에 실존 인물 김근태 고문 대신 김종태라는 캐릭터가 영화에 등장했으니 영화 속 대통령 역시 현실 속 고 노 전 대통령은 아니다. 문제의 장면은 김종태가 훗날 장관이 돼 대통령이 주제하는 국무회의에 참석한 모습이다. 여기서 국가보안법 철폐와 관련한 논의가 오가는 데 대통령은 뒷모습과 짧은 대사로만 등장한다. 친노 영화인들이 고 김근태 고문을 모티브로 하는 영화를 만들며 고 노 전 대통령도 잠시 등장시킨 것이다.
“개봉을 11월로 정한 까닭은 많은 주위 분들이 대선 전에 개봉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얘기헸기 때문이다. 11월 전에 개봉을 할 생각이다. 나는 이 작품이 대선에 영향을 미쳤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내가 만든 작품이 사회에 반영되고 뭔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면 감독으로서 보람된 일이라 생각한다.”
정 감독은 한 발 더 나아가 대선 후보들이 꼭 이 영화를 봤으면 좋겠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대선 후보들을 시사회에 초청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대선 후보들을 반드시 시사회에 초청할 것이다. 초청에 응해주실지는 모르겠지만 난 이 작품을 대선 후보들이 다 봤으면 좋겠다. 바로 이 작품 통해서 우리 사회가 통합과 화해의 길로 갈 수 있는 것 아닌가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런 과거를 극복하고 우리가 새로운 국가를 만들어 나가야하는 것 아닌가 하고 생각한다.”
부산 =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 김다영 기자 lata133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