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철수ㆍ문재인 후보가 차례로 관람한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의 한 장면. |
▲ 문재인 후보가 지난 12일 <광해>를 관람한 뒤 눈물을 훔치는 모습. |
대선 후보들의 극장 나들이 방식은 의외로 심플하다. 안철수, 문재인 후보는 모두 편한 시간을 정해 직접 영화 관람권을 예매하고 극장을 찾았다. 영화사에도 특별히 편의를 요청하지 않았다. 후보들이 원한 건 관람 시간을 확정한 뒤 영화사를 통해 감독과의 만남을 요청한 게 전부. 서로 큰 부담이 없는 상황이라 영화사도 대선 후보들의 관람을 굳이 제지할 필요도, 이를 전략적으로 이용할 필요도 없다는 입장이다.
<광해>의 홍보사인 퍼스트룩의 한 관계자는 “안철수, 문재인 후보 모두 직접 영화 티켓을 예매했기 때문에 따로 준비하거나 협조한 건 없다”며 “다만 감독님과 만나고 싶다는 뜻을 전해왔고 상영이 끝난 뒤 자연스럽게 영화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짧게 가진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안철수 후보와 문재인 후보가 <광해>를 보는 자리에는 추창민 감독과 제작사 대표가 동석했을 뿐 영화에 출연한 배우나 다른 스태프들은 참석하지 않았다. 영화가 끝난 뒤 감독과 간단히 인사말을 나누는 정도에서 관람 이벤트는 끝났다.
하지만 두 후보의 <광해> 관람은 다양한 방향으로 해석됐고, 효과도 나타났다. 대선 후보들의 <광해> 관람은 의도했든 하지 않았든 영화의 인지도 상승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후보들의 동선이 매일 기사화되는 데다 영화 선택은 당사자의 기호를 드러내기 때문. 대선 후보들의 관람 덕분에 <광해>는 잠시 주춤하던 관객 동원 추세가 다시 올라갔다. 특히 중·장년 관객층의 선택이 늘어났다는 게 영화사의 설명이다.
후보들이 영화를 본 소감을 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자세하게 전하면서 관심이 더해졌다. 실제로 문재인 후보는 <광해>를 본 뒤 페이스북에 장문의 소감을 쓰고 “눈물을 쏟았다”고 말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보며 노무현 전 대통령이 떠올랐다”고 밝힌 문 후보는 “요즘 눈물이 많아졌다. 그래도 다른 사람들 앞에서 그렇게 많이 운 적은 없었는데 <광해>를 보고 도저히 억제가 안 됐다”고 썼다. 굳이 지지자가 아니더라도 <광해>에 호기심이 생길 만한 감상평이다.
안철수 후보가 <광해>를 선택한 데는 주변의 추천이 작용했다. 안철수 캠프에 합류한 변호사이자 영화사 봄의 조광희 전 대표의 중간 역할도 한몫을 했다. “<광해>를 봤으면 좋겠다는 의견이 많았다”고 안철수는 이 영화를 챙겨 본 이유를 설명하기도 했다.
▲ 영화 <피에타>의 한 장면. |
영화 홍보사의 한 관계자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정치인이 이슈가 되는 영화를 볼 때 제작사나 홍보사에 여러 가지를 요청하는 일이 잦았다”며 “이왕이면 주연 배우들이 참석해 달라는 주문도 있었지만 요즘은 최대한 일반 관객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아무리 자신이 주연한 영화라고 해도 정치인으로부터 동반 영화 관람을 요청받는 일은 배우 입장에서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영화에서 주로 활동하는 배우 5~6명이 소속된 한 매니지먼트사의 대표는 “영화 흥행에 도움이 되는 일에는 대부분 참여하지만 정치인이 영화를 관람한다고 참석을 부탁받을 땐 굉장히 망설여지는 게 사실”이라고 밝혔다. 이유는 해당 연예인이 특정 정치 성향으로 비칠 수 있기 때문. 이 대표는 “아무리 순수한 뜻으로 함께 자리를 한다고 해도 대중의 반응이 어디로 튈지 예측할 수 없어서 신중하게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영화 관람을 넘어 영화 관련 국제 행사를 정치 무대로 이용하려는 움직임을 둘러싸고는 영화 관계자들 사이에 의견이 분분하다. ‘부담스럽다’고 얘기하는데도 굳이 국제영화제 레드카펫을 밟으려는 정치인도 있다. 최근 막을 내린 제17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에는 박근혜 후보와 문재인 후보가 참석해 레드카펫을 밟았다.
앞서 2007년 대선 당시 일부 후보가 개막식 레드카펫을 찾아 영화제 본연의 의미가 다소 퇴색돼 논란이 일었다. 대선을 앞둔 올해 영화제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지 않을까 우려를 낳았던 상황. 다만 두 후보 캠프는 영화제 측에 특별한 주문은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개막식 동안 두 후보는 레드카펫을 밟고 좌석에 나란히 앉아 40여 분 동안 행사를 지켜봤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영화인들 축제에 굳이 정치인이 참석해야 하는지 의문”이라는 의견이 나왔다.
이해리 스포츠동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