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석 점유율 최고 82% “해도해도 너무해”…“스크린 상한제 논의 시작해야” 의견도
그러나 이 같은 흥행에는 결국 ‘스크린 독과점’이 일정 부분 밑바탕이 된 것이라는 비판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앞서 ‘마블 시리즈’나 대형 블록버스터 작품들이 대부분 그랬듯, “흥행이 되는 작품만 상영관에 많이 걸겠다”는 극장의 배짱 장사에 결국 팬데믹 시기 이전보다 영화계의 생태가 더 걷잡을 수 없이 무너질 수 있다는 우려도 이어지고 있다.
4월 24일 개봉한 ‘범죄도시4’는 5월 10일 오전 7시 30분 기준 누적 관객수 900만 명을 돌파하며 2024년 최단기간, 시리즈 최단기간 흥행 신기록을 경신했다. 올해 기대작으로 꼽혔던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혹성탈출: 새로운 시대’의 개봉에도 밀리지 않고 박스오피스 1위를 석권 중이다.
한국 영화 역사상, 그것도 시리즈물로 기획된 작품의 ‘트리플 천만’ 관객 동원은 최초의 기록이다. 2010년대 극장가를 점령하다시피 했던 ‘마블 시리즈’ 등 해외 대형 프랜차이즈 작품들에 밀려났던 국산 영화의 눈부신 약진이라는 데엔 이견이 없지만, 동시에 “해외 스크린 독과점 작품과 바통 터치를 한 것일 뿐”이란 씁쓸함도 피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5월 2일 제25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는 여성영화인모임, 한국독립영화협회, 한국영화제작가협회, 한국영화프로듀서조합, 한국예술영화관협회 등 5개 영화단체가 ‘한국영화 생태계 복원을 위한 토론회’를 개최해 ‘범죄도시4’의 스크린 독과점을 지적했다.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이준동 나우필름 대표는 “독과점을 논의한 지 10년이 넘었지만 달라진 게 없다”며 “이제는 영화계의 합의 단위에 극장은 배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흥행 여부를 최우선으로 두는 극장이 대중의 많은 관심을 받는 대형 블록버스터 영화나 어느 정도 흥행이 보장돼 있는 프랜차이즈 형태의 영화 위주로 상영관을 분배하면서, 그 외의 작품은 상영관도 적지만 그마저도 터무니없이 이르거나 늦은 시간대에 배정돼 관객의 선택을 받을 수조차 없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범죄도시4’와 비슷한 시기 개봉한 영화 중 국내 관객들에게도 큰 호평을 받았던 ‘챌린저스’의 경우 평일 오후가 아니면 조조, 심야에만 몰린 극단적인 상영 스케줄로 영화 팬들 사이에서 불만이 일기도 했다.
현재 독주를 이어가고 있는 ‘범죄도시4’의 상영 점유율은 한때 최고 82%까지 올라갔다. 상영점유율은 영화관의 전체 상영 횟수에서 한 영화가 차지하는 비율을 말한다. 스크린 수도 개봉 첫 주(4월 26~28일) 전국 기준 2980개가 배분돼 영화계에서 “독과점을 넘어선 광기”라고 비판 받았던 ‘군함도’(2017년·스크린 수 2027개), ‘신과 함께: 인과 연’(2018년·2235개)을 훌쩍 넘어섰다. 전체 상영관 좌석 중 ‘범죄도시4’에 배정된 좌석의 비중을 가리키는 좌석점유율은 최고 85.9%를 기록했다.
영화계에서는 “2010년대엔 ‘마블’을, 2020년대엔 ‘범죄도시’를 피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어벤져스 시리즈’로 전세계적 인기를 누렸던 마블 스튜디오의 영화가 개봉된 시점을 피해야 상영관 확보가 수월했었던 것처럼 이제는 ‘범죄도시 시리즈’와 맞붙지 않아야 그나마 관객의 선택을 한 번이라도 더 받아 볼 수 있다는 자조 섞인 한탄인 셈이다. 특히 팬데믹 시기를 겪으며 줄어든 관객 수와 그에 따른 수익 감소를 최대한 빠르게 회복하려 하는 극장이 중소 규모 영화에 이전보다 상영 기회를 주지 않아 제작사와 배급사에 고스란히 피해를 떠안긴다는 게 영화계의 지적이다.
익명을 원한 한 영화 제작사 관계자는 “아무리 잘 만들고 재미있어서 관객들의 입소문을 충분히 탈 수 있는 작품이라고 하더라도 스크린을 배분 받지 못하면 그 장점을 뽐낼 수 있는 기회조차 없다”며 “이전에도 흥행이 불분명한 중소규모 영화에 극장이 소극적으로 상영관을 내주는 경우가 많았지만, 팬데믹 이후에는 마치 단기간에 손해를 메우려는 듯이 흥행 보증 수표인 대형 작품에만 내주는 일이 더 잦아졌다는 걸 체감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한편으로는 팬데믹을 겪으며 작품 선택에 더 민감해진 관객들의 태도 변화도 흥행작의 스크린 독과점에 영향을 끼쳤다는 분석도 있었다. 팬데믹 이전에는 이런 논란을 두고 관객들 역시 극장과 대형 배급사에 비판적인 시각을 가졌다면, 팬데믹 이후 상승한 티켓 가격에 걸맞은 결과물과 경험을 원하는 관객들은 오히려 이런 대형 작품이 일정 상영 기간을 가져야 극장을 찾는 전체 관객 수가 늘어난다는 데 의견을 모은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한 영화 배급사 관계자는 “영화에 대한 기대치나 눈높이가 높아진 것도 있지만 아무래도 티켓 가격의 상승이 관객들로 하여금 잘 알려지지 않았거나 재미가 검증되지 않은 작품을 소극적으로 선택하게 만든 것 같다”며 “지금의 스크린 독과점 논란을 두고 일반 대중들 사이에선 ‘다른 작품들도 대중성 있고 재미있는 작품을 만들면 되는 거 아니냐’는 냉소적인 반응이 나오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라고 본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결국 팬데믹 이후 대다수의 관객들은 ‘비싼 돈값(내가 낸 티켓 값)을 하는’ 작품만을 보길 원하고, 오히려 극장이나 배급사가 그 니즈에 적극적으로 따라가는 모양새”라며 “다만 선택을 받지 않는 것과 받지 못하는 것은 엄연히 다른 만큼 건강한 영화 생태계를 위해서라도 최소한의 스크린 상한제에 대한 논의가 다시금 이뤄져야 하지 않을까 싶다”고 우려했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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