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총재님은 출장 중 김중수 총재가 국제회의 참석 직전 기준금리를 낮추는 것은 글로벌 정책 공조와 관계가 깊다는 분석이다. 사진은 합성. |
한국은행에 따르면 김중수 총재는 지난 2010년 4월 취임 이후 지금까지 2년 7개월 재임 동안 49번의 해외출장을 다녀왔다. 이는 전임 이성태 총재가 재임 4년 동안 다녀온 29회를 훌쩍 뛰어넘은 것이다. 출장이 잦다보니 해외에 나가있는 기간도 길다. 김중수 총재가 지금까지 해외출장으로 보낸 날은 230여 일. 연간 평균으로 따지면 대량 90일 정도, 나흘에 하루꼴로 해외출장을 가 있었던 셈이다. 이성태 전 총재의 출장일수가 총 170일, 연 평균 42.5일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기간도 벌써 2배를 넘어섰다.
당연히 출장비용도 만만치 않다. 김중수 총재가 지금까지 해외출장에 사용한 비용은 교통비가 3억 7530만 원, 체재비 2억 686만 원 등 총 5억 8216만 원. 역시 이성태 전 총재가 사용한 출장비 2억 6758만 원의 2배가 넘는 금액이다. 더 큰 논란을 일으킨 것은 이 비용 중 상당액인 1억 1942만 원이 부부동반 해외출장에 사용됐다는 점이다.
김중수 총재는 2010년에 3번, 2011년에 1번, 2012년에 2번 부부동반으로 해외출장을 다녀왔다. 특히 회의 참석 초청장에 배우자 동반에 대한 공식 요청이 없었던 점과 부부동반 출장이 휴가철에 집중됐다는 점에서 의구심을 샀다. 2010년에 다녀온 3번의 출장은 6월 23∼29일(스위스), 7월 20∼23일(호주), 8월 24일∼30일(미국) 등이었다. 2011년에도 6월 22∼29일(스위스·네덜란드), 2012년에는 7월 14∼18일(일본), 8월 29∼9월 3일(미국) 등 모두 휴가철에 몰렸다.
이에 대해 김중수 총재는 “모든 회의에는 배우자 프로그램이 있으며, 초청장에 배우자 동반을 명시하지 않은 회의는 이미 관례와 관행상 부부동반 회의여서 명시돼 있지 않은 것일 뿐”이라며 “부부동반 출장에서 규정과 관행을 벗어난 것은 단 한 차례도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마일리지 우선 사용 규정을 제대로 지키지 않아 이러한 해명은 빛이 바랬다. 공무원 여비규정과 한국은행 여비처리 지침을 보면 ‘본인 또는 부양가족이 공무상 국내 또는 국외를 여행해야 할 경우 우선 과거에 획득한 공적 항공마일리지를 활용해 항공좌석을 확보’하도록 되어 있다. 만약 이것이 불가능할 경우 ‘이를 입증할 수 있는 서류를 소속 부서장에게 제출’해야 한다.
하지만 김중수 총재는 잦은 해외출장으로 누적된 71만 마일 중 14만 마일(4회)만 사용하고 57만 마일을 사용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한은 관계자는 “총재 임기 중 쌓인 마일리지는 임기 중 공적인 용도로만 사용되도록 관리된다”면서 “성수기 동남아시아 및 미주·유럽 왕복항공권 1등석 마일리지가 각각 13만, 24만 마일인 점을 감안하면 3회 정도 출장이면 소진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해명했다.
이처럼 잦은 출장이 어떤 효과가 있을까. 한은 측에서는 김중수 총재가 부임한 뒤 우리나라의 국제적 위상이 높아진 점을 해외출장의 장점으로 꼽는다. 국제무대는 철저하게 국력이 지배하는 곳이다. 중앙은행 총재 회의를 하면 30명 정도가 몰리지만 앞 테이블 좌석에 앉을 수 있는 숫자는 20명에 한정되고, 토론에 참가할 수 있는 이는 6, 7명에 불과하다. 대부분 미국과 유럽, 중국, 일본이 순서대로 발언을 하고 브라질이나 인도 정도가 끼어드는 것이 관례였다.
그런데 김중수 총재가 회의에 참석하고부터 한국도 발언권을 사용하게 됐다고 한다. 중앙은행 총재단에서 발언을 하려면 경제적 지식뿐 아니라 상당한 영어실력이 없으면 어렵다보니 과거 한은 총재들은 발언을 거의 하지 않았다. 반면 김중수 총재가 다른 국가 중앙은행 총재들의 눈치를 보지 않으며 회의에 끼어들기 시작했고, 지금은 다른 국가 중앙은행 총재들도 한은 총재의 발언을 기다린다는 것이다.
기준금리 결정과 해외출장의 상관관계도 눈길을 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10월 기준금리를 0.25%포인트(p) 내린 날은 김중수 총재가 IMF와 세계은행 그룹 연차총회를 참석하기 위해 출국한 날이었다. 지난 7월에 41개월 만에 기준금리를 0.25%p 내렸을 때도 해외출장이 맞물렸다. 기준금리를 결정한 이틀 뒤인 14일에 EMEAP(동아시아·태평양중앙은행기구) 출장이 있었던 것이다. 이에 반해 기준금리 인하설이 무성했던 6월은 물론 8월과 9월에는 해외출장이 없었고, 기준금리도 시장의 예상을 깨고 동결됐다.
6월 이전에는 해외출장과 기준금리가 반대로 움직였다. 해외출장이 있는 달은 기준금리가 동결되고, 해외출장이 없는 달에 기준금리가 상향조정됐던 것이다. 기준금리가 2.50%에서 2.75%로 인상된 지난해 1월에는 김중수 총재의 해외출장이 없었다. 역시 기준금리가 각 0.25%p씩 인상된 2011년 3월과 6월에도 역시 해외출장 건이 없었다.
이에 비해 기준금리가 동결 행진을 했던 지난해 하반기와 올 상반기에는 거의 매달 해외출장이 있었다. 8월에는 몽골중앙은행 방문이, 9월에는 BIS 총재회의가, 10월에는 G20 재무장관 및 중앙은행 총재회의가, 12월에는 IMF·중국 인민은행 공동 주최 고위급 심포지엄 등이 줄줄이 이어졌다. 이에 대해 시장 관계자들은 기준금리 인상의 경우 국내 물가와 밀접한 관계가 있어서 다른 나라와 공조를 벌일 필요가 없기 때문으로 해석하고 있다.
반면 기준금리 인하는 다른 국가들과의 정책 공조로 보이는 사항인 만큼 해외출장에 앞서 인하를 해놓는 것이 국제회의 참석 시 껄끄러움을 덜어줄 수 있다는 분석이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세계 각국이 경기 부양을 위해 기준금리를 낮추고 있는데 한국만 기준금리를 동결하고 나서 국제회의에 참석하면 민망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국제회의에 참석하기 전에 기준금리를 낮춤으로써 다른 국가들에게 글로벌 위기 극복을 위한 정책 공조를 하고 있다는 모습을 보이려는 것이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이준겸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