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배우 음모 노출이 논란이 된 <은교> 한 장면. |
10월초 열린 제17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성기 노출이 영화인들 사이에서 새삼 화제가 됐다. 문제작이라 꼽히는 정지영 감독의 영화 <남영동 1985>에서 주연배우 박원상의 성기가 고스란히 드러났기 때문이다.
극중 민주화 투사인 김종태 역을 맡은 박원상은 고문을 당하는 장면에서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모습으로 카메라 앞에 섰다. 이 영화에서 박원상은 절반 이상은 옷을 걸치지 않은 채 등장한다. 실감나는 장면을 만들기 위한 필수적인 설정이었고, 성기 노출 역시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이뤄졌다.
▲ <남영동 1985> 고문 장면에서의 성기노출은 영상물등급위원회에서 필수성을 인정받았다. |
이런 제작진의 의중을 헤아렸기 때문일까. 보수적이기로 유명한 영상물등급위원회는 23일 이 영화에 대해 ‘15세이상 관람가’ 판정을 내렸다. <남영동 1985> 속 성기 노출을 예술의 영역으로 분류한 셈이다.
▲ 송강호의 노출이 논란이 되었던 <박쥐> 스틸 컷. |
당시 송강호는 “꼭 필요한 장면이었다. <박쥐>가 하고자 했던 가장 강렬하면서도 정확한 표현의 장면이었기 때문에 전혀 이견이 없었다. 순교적인 행위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자극적인 장면일 수 있지만 굉장히 숭고한 느낌이 들었다”고 소감을 전했다.
하지만 당시 칸국제영화제 출품작인 <박쥐>가 보다 강렬한 인상을 남기기 위해 불필요한 노출을 넣었다는 지적도 적지 않았다. 굳이 송강호의 하반신 노출 장면을 정면에서 보여주지 않아도 해당 장면을 충분히 설명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비판이 일었다.
이에 대해 한 영화 관계자는 “감독이 영화를 만들며 굳이 평론가나 대중의 의견을 구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적어도 영화를 본 이들이 고개를 끄덕일 만한 당위성은 갖춰야 한다. 당시 <박쥐>는 칸국제영화제 심사위원상을 받으며 작품성을 인정받아 논란은 잠잠해졌지만 해당 장면에 대해서는 여전히 이견을 제기하는 이들이 많다”고 꼬집었다.
여성의 성기 노출은 남성의 그것에 비해 더욱 엄격하게 다뤄지는 경향이 있다. 남성은 신체 구조상 성기가 겉으로 드러나지만 여성의 경우는 다르기 때문에 더욱 은밀한 영역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여배우의 경우 체모 노출만으로도 남성의 성기 노출과 비견될 만한 여파를 가져온다.
올해 초 개봉됐던 영화 <은교>가 대표적이다. 박범신 작가가 쓴 동명의 베스트셀러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은교>에서는 타이틀 롤을 맡은 신인 배우 김고은의 음모가 드러난다. 파격적인 설정이었지만 영상물등급위원회는 ‘19금’ 등급을 주고 개봉을 허락했다. <은교>가 단순히 상업적 이익을 노린 야한 영화가 아니라는 것은 인정한 것이다. 하지만 극장 상영이 끝난 후 VOD 등을 통해 공급되는 <은교>에서는 해당 장면이 블러모자이크(뿌옇게 처리하는 방식)로 가려졌다. “가정에서 미성년자들이 볼 수 있기 때문”이라는 단서를 다는 이들이 있지만, 이중 잣대라는 비판까지 피하지는 못했다.
2010년작인 <나탈리>에 여주인공 박현진의 체모가 노출된다. 이 영화는 국내 첫 3D 멜로영화라 화제를 모았지만 흥행과 평가 면에서는 체면을 구겼다. 결국 <나탈리>를 기점으로 3D 대작 <현의 노래>를 만들려던 주경중 감독의 계획까지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체모 노출로 화제를 모으는 데는 성공했지만 관객과 평단이 납득할 수 없는 맥락에서 이뤄진 노출이라 관심은 이내 혹평으로 바뀌었다.
또 다른 영화 관계자는 “여배우의 체모 노출 장면이 담긴 <나탈리>는 예술적으로 평가받을 만한 영화가 아니었음에도 국내 상영이 허락됐다. 그만큼 영화를 바라보는 시선이 유연해졌다고 받아들이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돌려 생각하면 여전히 노출 영화의 등급 판정에 명확한 기준이 없다고도 해석될 수 있다”고 말했다.
국내에서 성기 및 체모 노출에 대한 활발한 논의가 시작된 시점은 2004년 프랑스 영화 <팻걸>의 등장부터다. 이 영화는 여성의 음모가 드러나지만 결국 ‘19금’ 등급을 받아 당시로서는 파격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후 <색,계> <숏버스> <몽상가들> 등 역시 성기 및 체모 노출 장면이 담긴 영화들이 삭제 없이 국내 개봉됐다. 하지만 제한상영가 판정을 받은 영화들과 국내 상영이 허락된 영화들 간의 정확한 차이를 찾기는 어렵다는 평가가 여전히 존재한다.
한 영화계 관계자는 “‘노출이 외설이냐, 예술이냐’를 둘러싼 논쟁은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와 같은 논쟁처럼 명확한 답을 내리기 어렵다. 하지만 ‘노출에만 초점을 맞추지 말아 달라’는 제작사나 수입사조차 노출에 초점을 맞춰 영화를 홍보하는 것은 매한가지다. 시각의 차이만 있을 뿐, 대중이 노출에 관심을 보인다는 것은 불변의 진리이기 때문에 노출 장면이 담긴 영화의 제작과 등급 논쟁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안진용 스포츠한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