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폼으로 쓰는 거 아닙니다! 김보성은 평소 선글라스를 착용하는 이유에 대해 시각 장애 때문이라고 고백했다. 임준선 기자 |
강원래는 연예계에서도 둘째가라면 서러울 만한 춤꾼이었다. 하지만 2000년 오토바이 사고를 당해 장애 1급 판정을 받아 더 이상 두 발로 무대에 설 수 없게 됐다. 춤꾼에게는 사형선고와도 같았다. 하지만 강원래는 역경을 딛고 ‘휠체어 댄스’를 개발해 다시 무대에 올랐다. 하지만 박탈감은 여전했다. 그를 ‘춤꾼 강원래’가 아니라 ‘장애인 강원래’로 바라보는 시선 때문이었다.
대한민국은 장애인이 살기 어려운 나라다. 연예인에게도 마찬가지다. 때문에 ‘장애를 가진 연예인’이 살기는 더욱 힘들 수밖에 없다. 대중은 연예인을 보면서 웃음과 기쁨을 얻어야 하는데 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로 동정의 시선을 보내기 때문이다. 이런 시선은 연예인들을 더욱 위축시킨다.
▲ 이윤석 |
당시 이윤석의 손을 잡아준 이는 다름 아닌 선배 이경규였다. 이윤석이 장애 판정을 받고 시름에 빠져 있다는 것을 안 이경규는 친한 PD에게 이윤석을 추천했고 덕분에 MBC <대단한 도전>에 출연할 수 있었다. 힘든 몸을 이끌고 죽기 살기로 덤빈 이윤석은 ‘국민 약골’이라는 별명을 얻으며 더욱 활발한 방송 활동을 할 수 있게 됐다. 전화위복이 된 것이다.
이윤석은 “촬영장에 가면 넘어지기 좋은 장소는 어딘지, 넘어져서 다치지 않을 곳은 어딘지 미리 찾아냈다. 못질까지 하며 많이 구상했다”며 장애를 극복하기 위해 숱한 노력을 쏟았다고 고백했다. 자신감이 붙으면서 이윤석은 장애가 몸이 아닌 마음의 병이라는 것을 알게 됐고 이제는 장애 판정을 받은 사실을 떳떳이 말하며 주변 사람들에게 되레 용기를 북돋아주고 있다.
남자 중의 남자로 유명한 배우 김보성 역시 건강해 보이는 모습과 달리 시각장애인 6급 판정을 받았다. 그가 평소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선글라스를 착용하는 것은 터프가이 이미지를 강화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시각 장애를 가리기 위해서다.
김보성은 무려 20년간 이 사실을 감춰왔다. 왼쪽 눈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자신의 배우 이미지에 어떤 타격을 미칠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얼마 전 당당히 장애 사실을 고백한 김보성은 지난 6월 한 주식 서바이벌 프로그램에 출연해 최종 우승을 거머쥔 후 상금 전액을 시각장애인에게 기부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의 용기 있는 고백에 대중은 오히려 박수를 보냈다.
▲ 이덕화 |
군복무를 마치지 않은 연예인의 경우 장애에 대해 말하길 더욱 꺼린다. 장애를 가졌다는 데서 오는 편견을 넘어 군대에 가지 않기 위해 위장한 것이 아니냐는 따가운 시선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여러 작품에서 주연급 배우로 활약했던 A가 대표적이다. A는 과거 교통사고를 당해 다리를 크게 다쳤다. 무려 반 년 넘게 입원 치료를 받았지만 몸에는 지울 수 없는 장애를 안게 됐다. 또래 배우들이 하나둘씩 군대에 가면서 A는 초조해지고 있다. 현재 몸 상태로는 군 면제 사유가 충분하지만 괜한 오해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A의 관계자는 “배우는 작품 속에서 액션 연기를 소화해야 한다. 그럴 때마다 A는 아픔을 참고 연기한다. 하지만 이런 연기 투혼이 오히려 군대 문제와 결부되면 ‘군대에 가기 싫어 아픈 척한다’는 이미지로 비칠 수 있어 조심스럽다. 또한 장애를 가졌다는 사실 자체도 연예인으로 살아가는 데 도움이 안 되기 때문에 고민이 크다”고 귀띔했다.
방송인 B 역시 장애 때문에 군 면제 처분을 받은 후 구설에 오른 적이 있다. B가 수술을 받아야 할 정도로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는 것을 지인들은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B의 이런 상태를 모르는 이들은 B가 군 면제를 목적으로 수술대에 올랐다는 따가운 시선을 보냈다.
B의 측근은 “B가 군 면제를 받은 직후 이 수술을 받아도 군 면제를 받을 수 없도록 법이 바뀌었다. 때문에 B를 바라보는 시선은 더욱 차가웠다. 하지만 B는 연예인이라는 이유 때문에 제대로 항변도 못하고 냉가슴을 앓아야 했다”고 전했다.
▲ 강원래 |
공황장애를 유발하는 주된 요인은 과다한 스트레스다. 여기에 수면부족과 카페인 과다 복용 등이 공황장애를 가중시킨다. 연예인들이 가장 취약한 항목들이다. 하지만 대중의 눈을 통해 확인시켜 줄 수 없는 병이기 때문에 공황장애를 겪는다고 하면 동정 여론보다 비난 여론을 직면할 때가 많다. 하지만 많은 기자들은 김장훈이 독도로 가는 배 위에서 공황장애 증세를 보이며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직접 목격한 적이 있다.
김장훈의 한 측근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공황장애를 겪는 연예인은 부지기수다. 직업적 특성 때문에 드러내놓고 치료를 받을 수 없는 현실이 장애를 가중시키고 있다. 연예인들은 TV나 작품 속에서는 건강한 이미지를 보여줘야 하는 만큼 병을 감추다 더 키우는 형국이다”며 안타까워했다.
강원래는 한 방송에 출연해 “아침에 일어나서 오늘 할 일에 대해 계획을 세우고 나갔는데 마주친 사람들이 ‘아직도 장애를 극복하지 못하셨네요’라며 안타까워하면 힘이 빠진다”며 “앞으로는 절 만나면 ‘잘생기셨네요’라고 해 달라. 그럼 기분이 좋아질 것 같다”고 당부하기도 했다. 대중의 사랑을 먹고 살기 위해 당당해야 하는 연예인이 장애보다 두려운 것은 대중의 동정어린 시선이기 때문이다.
안진용 스포츠한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