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버트 블레이크(오른쪽)는 지난 2002년 4월 아내 리 베이클리를 살해한 혐의로 정식 기소됐다. |
토크쇼에 나온 블레이크는 거침없었고 때로는 화를 냈으며 가끔은 감상에 젖었고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교도소에 있으면서 굳이 토크쇼를 원했던 건 TV를 보고 있을 세 살배기 딸 로지(죽은 아내 보니 리 베이클리가 낳은)를 위한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자신은 교도소에서 나가는 것이 오히려 두렵다고 했다. 그가 끊임없이 보석 신청을 했다는 걸 떠올리면, 매우 의외의 말이었다. “바바라, 내가 이곳을 나가면 어디로 가야 하죠? 나를 노려보며 무섭게 다가올 사람들이 보이는데도, 내가 거리를 제대로 걸어 다닐 수 있을까요?”
토크쇼 덕분인지 아니면 법적 절차에 따른 것인지 알 수 없지만, 로버트 블레이크는 방송이 나간 지 보름 후에 보석 신청이 받아들여서 교도소 문을 나섰고 2004년부터 긴 재판의 여정이 시작된다. 하지만 그 진실은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상태. 아마도 영구 미제 사건으로 남지 않을까 싶다. 그러면 과연 로버트 블레이크는 누구이며, 그의 아내였던 보니 리 베이클리는 어떤 여성이었을까? 일단 그들에 대해 잠깐 살펴보자.
1933년에 태어난 로버트 블레이크는 환영받지 못한 아기였다. 대공황 시절 두 번이나 낙태 수술을 했던 그녀의 어머니는 실수로 로버트를 낳게 된 것. 게다가 그녀의 어머니는 시동생과 부적절한 관계였다. 삼촌이 사실은 아버지일 수도 있었고, 로버트 블레이크에게 아버지는 매우 모호한 존재였다. 아무튼 그의 ‘법적 아버지’는 대장장이였는데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아이들을 쇼 비즈니스의 세계로 진출시키고 싶어 안달이 난 사람이었다. 주말이면 공원에서 자신은 기타를 치고 어린 로버트에게 춤을 추라고 시킬 정도였다. 그렇게 구걸하듯 돈을 벌었고, 로버트 블레이크는 이후 그때를 회상하며 “나는 쇠사슬에 묶인 원숭이와도 같았다”고 말할 정도였다.
▲ 로버트 블레이크가 2003년 교도소에서 진행된 바바라 월터스 토크쇼에서 인터뷰하는 장면(왼쪽). 영화 <머니 트레인>에 출연한 모습. |
1967년에 나온 <인 콜드 블러드>는 그에게 유명세를 안겨주었다. 트루먼 카포티의 유명한 소설이 원작인데 그는 잔인한 살인자 역할을 맡아 격찬을 받았다. 그리고 1975년에 시작된 TV 시리즈 <바레타>는 그에게 큰 명성을 안겨주었다. 거친 형사 토니 바레타는 그에게 안성맞춤인 캐릭터였던 것. 스타가 되었지만 그는 할리우드의 유명한 트러블메이커였다. 토크쇼에 나와 공공연히 영화계를 비난했고 프로듀서와 다퉈 출연 중인 TV 시리즈를 중도 하차하기도 했다. 결국 그는 1990년대에 거의 은퇴 상태가 되었다. 가끔 집 근처의 재즈 바에 들러 원 나잇 스탠드를 즐길 여자를 물색하는 게 유일한 낙이었다.
이때 한 여자가 다가왔다. 로버트 블레이크보다 23세가 어렸던, 보니 리 베이클리라는 여자였다. 역시 어린 시절 부모의 학대에서 자랐던 그녀는 스타들의 화려한 삶을 동경하는 것이 삶의 유일한 해방구였다. 아버지가 죽고 어머니는 재혼하자 그녀는 집을 나와 트레일러에서 살며 주로 누드 해변에서 시간을 보냈다. 그녀의 글래머 바디는 그곳의 자랑거리가 되었고, 이후 성인 잡지의 모델이 되었다. 그렇게 쇼 비즈니스에 들어온 그녀는 셀러브리티나 돈 많고 나이 많은 남자들 주변을 맴돌았다. 서른두 살 때 81세 노인과 결혼한 적도 있었다. 숱한 결혼과 이혼을 반복하던 그녀는 로버트 블레이크를 만났고, 65세의 블레이크는 40대 초반의 그녀에게 빠졌다. 1999년에 베이클리는 임신을 했다. 그런데 문제는 당시 그녀가 양다리를 걸치고 있었다는 것. 또 한 명의 남자는 위대한 배우 말런 브랜도의 아들인 크리스천 브랜도였다. 2000년에 딸을 낳은 베이클리는 결국 DNA 검사를 거쳐 로버트가 아이 아빠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블레이크와 베이클리는 2000년에 결혼했다. 베이클리에겐 열 번째 결혼이었다. 그리고 다음해 5월 결혼한 지 6개월 만에 베이클리는 총에 맞아 사망했고, 11개월 뒤인 2002년 4월에 LA 지역의 검사는 로버트 블레이크를 살인죄로 기소했다. O.J. 심슨 사건 이후 셀러브리티와 관련된 살인 사건에 촉각을 곤두세우던 매체와 대중은 들끓기 시작했다. 블레이크가 친구인 얼 캘드웰을 사주해 아내를 죽였다는 기소 내용은 진실과 상관없이 그 자체로 핫 이슈가 되었다. 물론 블레이크와 캘드웰이 부인하면서 사건은 계속 미궁에 빠졌고 2005년까지 기나긴 법정 공방은 그렇게 시작된다. (2편에 계속)
김형석 영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