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건희 회장. | ||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 편법증여 의혹 사건 항소심 선고공판이 3월 이후로 미뤄졌다. 햇수로 5년째 접어들고 있는 에버랜드 재판의 끝을 보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당초 1월 18일로 예정돼 있던 에버랜드 전·현직 사장단에 대한 선고공판이 연기되고 추가 심리를 위한 공판 일정이 3월 8일로 잡히면서 이 재판이 자칫 올해를 넘길 수도 있다는 이야기마저 들려온다. 3월 이후에나 선고공판이 가능할 것이며 결과에 따라 삼성 혹은 검찰이 항소를 할 것이 분명해 보인다. 5년째 접어들어도 2심결과조차 얻어내지 못한 이 재판을 대법원 판결까지 끌고 가려면 해를 넘겨야 할 것이란 관측에 제법 무게가 실린다.
이번 공판 연기 배경을 두고 말들이 많다. 삼성의 법조계에 대한 로비전이 먹혔다는 지적이 있는가 하면 이로써 이건희 회장 소환이 사실상 완전히 물 건너갔다는 이야기도 들려온다. 삼성의 사장단·임원 인사 시기와 묘하게 맞물린 점 또한 호사가들의 입을 바쁘게 만들고 있다.
재판부가 선고공판을 연기한 까닭은 새롭게 드러난 사실에 대한 경위 파악 때문이라고 한다. 삼성 측에서 ‘숨진 비서실의 아무개 전무가 전환사채 인수절차를 담당했고 총수일가는 자세한 경위를 모른다’는 진술을 했고 이에 대한 구체적인 조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재판을 연장시키기 위한 삼성 측의 의도가 반영된 것’이란 진단을 내리기도 한다. 삼성은 지난 1월 16일 사장단 인사에 이어 이튿날인 1월 17일 임원급 인사를 단행했다. 당초 삼성의 신년 정기인사는 1월 18일 삼성에버랜드 전· 현직 사장 허태학 박노빈 씨 선고공판 이후에 이뤄질 것으로 관측돼 왔다. 공판 예정일 직전에 이뤄진 삼성의 인사는 업계 인사들 사이에 다소 의외로 받아들여지기도 했다. 공판 결과에 따라 인사 구도에 변수가 있을 것이란 예측 때문이었다.
삼성의 사장단 인사가 발표되자마자 재판부가 에버랜드 전·현직 사장단에 대한 선고 연기 결정을 내렸다. 우연의 일치일 수도 있다. 그러나 ‘삼성 측이 재판이 연기될 것을 미리 알고 인사를 단행한 것’이란 이야기가 업계 인사들 사이에 자연스레 나돌 법한 분위기가 조성돼 버렸다.
이번 재판 연기 결정의 직접적 원인은 비서실에 있던 숨진 아무개 전무가 전환사채 발행과정을 총괄했는지 여부를 조사하기 위해서다.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에선 ‘고인에게 다 뒤집어씌우려…’라는 식의 관측마저 제기된다.
재판부는 다음 심리 일정을 3월 8일로 잡았다. 이 날짜에 대한 논란도 가열되고 있다. 그 전에 있을 지도 모르는 설날 특사와 3·1절 사면을 미리 염두에 둔 재판 연기라는 관측이 대두되는 것이다. 설날과 3·1절의 사면·특사를 거치면서 정·관·재계 인사들이 대거 수혜를 받을 경우 이는 이건희 회장 소환의 명분을 어느 정도 희석시킬 수 있다는 계산을 가능케 했을 것이란 지적이다. 이번 공판 연기가 결국 소환설에 시달려온 이건희 회장에게 면죄부를 주기 위한 수순 밟기로 해석될 여지가 있는 셈이다.
검찰 측이 ‘에버랜드 전·현직 사장단에 대한 선고공판 이후 이건희 회장 소환 시기를 조율하겠다’고 밝혀온 것이 재판 과정 장기화를 불러왔다는 지적에도 눈길이 쏠린다. 현대차 비자금 사건으로 구속수감 됐다가 보석으로 나온 정몽구 현대차 회장에 대한 1심 선고공판은 1월 29일로 예정돼 있다. 정 회장에 대한 이번 선거공판 결과는 에버랜드 사장단이 지난 1심에서 집행유예 판결을 받았던 것에 비해 다소 무거울 것이란 관측이 대두된 바 있다. 만약 정 회장이 에버랜드 측 인사들보다 높은 형량을 선고받는다면 형평성 논란이 야기될 수도 있다. 이렇게 되면 수사당국 입장에선 이건희 회장 소환에 대한 더 큰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게 된다.
재판부의 공판 일정 연기 배경엔 론스타 사건 관련 영장 기각 사태 등으로 표면화된 검찰-법원 간 알력다툼이 한몫 했다는 평가도 제기된다. 물론 이러한 분위기를 조성한 것은 삼성 측일 것이란 평가가 지배적이다.
이에 대해 삼성 측은 “현재 에버랜드 담당 부장판사(조희대 판사)는 대쪽으로 소문난 분”이라며 “재판 연기 여부에 대해 미리 알지 못했다. 우리가 어찌 먼저 알 수 있었겠나”라 반박한다. 이번 재판 연기 결정이 항간에 떠도는 것처럼 ‘삼성의 대 법원 로비’ 결과물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삼성의 로비전이 결국 공판 연기를 불러왔다고 보는 인사들은 법원의 기류 또한 삼성 측에 어느 정도 기울어져 있다는 진단을 내리기도 한다. 게다가 선고 공판을 앞두고 삼성에 부담되는 사건이 연이어 두 건이나 터졌다. 삼성에버랜드에서 인명사고가 터지고 삼성이 운영하는 성균관대학교의 학내 문제에서 비롯된 ‘석궁 테러’ 사건이 일어났다. 석궁 테러 사건으로 네티즌 사이에서 대학 측의 재임용 탈락 사유에 대한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법원과 관련된 이 사안이 삼성으로선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게다가 법원의 정기인사가 2월 중에 예정돼 있다는 점을 들어 에버랜드 담당 재판부가 교체될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까지 제기되고 있다. 이미 지체될 대로 지체된 에버랜드 항소심 결과가 법원 정기인사 이전에 나오는 것이 순리였겠지만 결국 3월 이후로 미뤄진 것은 결국 에버랜드 재판 장기화 관측으로 이어진다.
지난해 법원은 에버랜드 항소심 재판장을 2월과 8월 두 차례에 걸쳐 교체했다. 재판장 교체 이후 속행공판은 늘 연기됐다. 새 재판장이 관련기록을 검토할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결국 이번 선고공판 연기로 인해 재판부가 또 교체되고 그로 인해 재판이 장기화되면서 설날과 3·1절 특사, 그리고 대통령 선거전 열기에 묻혀버릴 가능성마저 거론된다. 이는 에버랜드 항소심을 담당하는 서울고법에 이재용 전무와 이학수 부회장과 학연 지연 등으로 얽힌 인사들이 많다는 점과 삼성의 호화 법무라인의 로비전 약발이 통했다는 관측을 전제로 한 것이다.
천우진 기자 wjch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