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남호 회장 | ||
지주회사 체제는 지배구조의 투명성을 높이고 경영효율성을 극대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모든 기업의 선호대상이지만 막대한 비용의 투입을 감수해야 한다. 얼마 전 SK가 지배구조 개선을 위해 지주회사제 전환을 발표했지만 ‘최태원 회장→SKC&C→(주)SK→나머지 계열사들’로 이어지는 구조를 개선하기 위해선 적지 않은 비용을 들여야 할 전망이다. 금호아시아나는 양대 지주회사 체제 전환 발표 이후 대우건설 빌딩 매각을 통한 자금 조달 논란에 휩싸였다. 순환출자구조를 근간으로 삼아온 삼성그룹은 지배구조 개선 요구를 받고 있지만 삼성전자 등 핵심계열사 지분 매입 비용이 만만치 않은 관계로 지주회사 전환을 서두르지 못하고 있다.
반면 한진중공업그룹은 한진중공업이 다른 계열사들의 지분을 골고루 갖고 있는 구조로 유지돼 왔기 때문에 계열사 간 지분정리 작업에 공을 들일 필요가 없다. 한진중공업은 현재 자회사인 한일레저(99.99%) 한국종합기술(95.11%) 한진도시가스(100%) 등의 지분을 대부분 보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지주회사로 가는 데 걸림돌이 없다. 다른 재벌그룹처럼 돈 때문에 골머리 앓을 걱정이 없는 셈이다.
오히려 한진중공업은 지주회사제 전환과정에서 엄청난 돈을 거둬들이게 된 것으로 보인다. 사전 자사주 매입을 통해 한진중공업과 조남호 회장이 상당한 시세차익을 취한 것으로 보여 논란이 예상되는 것이다.
한진중공업그룹의 지주회사제 전환 선언은 출총제 대상 제외와 기업 규모 확대를 노린 포석으로 풀이된다. 그런데 한진중공업은 자사주를 매집해놓은 뒤 지주회사제를 발표해 주가를 높여 이익을 취한 것으로 드러나 ‘사전 자사주 매입’ 논란에 휩싸이게 됐다.
한진중공업은 2004년 7월 이후 2년 반 동안 자사주 지분율을 18.08%로 유지해 왔다. 그런데 올해 들어서 집중적으로 자사주를 매집하기 시작했다. 지난 1월 31일 5220주 매입을 시작으로 지난 4개월간 약 98만 주의 자사주를 사들인 것이다. 이로써 한진중공업 자사주 지분율은 종전의 18.08%(1172만 주)에서 19.59%(1270만 주)로 1.51% 늘어났다.
한진중공업이 자사주 매집 기간 동안 주가는 종전의 2만 9000원에서 5만 3900원(5월 23일 종가 기준)으로 치솟았다. 4개월 사이 주가가 두 배 이상 뛰어오른 것이다.
한진중공업의 주가 상승엔 한미 FTA 체결과 물량 수주 실적 등이 반영됐겠지만 무엇보다도 지주회사제에 대한 기대감이 효자 노릇을 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한진중공업그룹의 주력사인 한진중공업은 지난 5월 15일 이사회를 열고 8월 1일자로 순수 지주화사(가칭 한진중공업홀딩스)와 사업 자회사(한진중공업)로 분할해 그룹을 지주회사체제로 전환하기로 의결했다.
지난 1월 말부터 5월 초까지 한진중공업이 사들인 자사주의 주가는 2만~4만 원대였던 반면 5월 23일 현재 주가는 5만 3900원에 이른다. 다른 재벌그룹들이 지주회사제 전환에 진통을 겪고 있는 까닭에서인지 일각에선 한진중공업이 5월 중 지주회사제 전환 발표를 계획해놓은 상태에서 4개월 전인 1월부터 작정하고 자사주를 사들였을 가능성에 주목하기도 한다. 즉, ‘미공개 정보를 통한 시세차익 취득’ 가능성이 거론되는 것이다. 그러나 한진중공업의 자사주 매입 사실이 공시를 통해 알려져 왔으며 지분 매매를 통해 현금 이익을 실현한 내역이 없기 때문에 감독 당국이 문제 삼을 여지는 없어 보인다.
자사주 매집 직전인 1월 말까지 한진중공업이 보유하고 있던 자사주 지분율은 18.08%(1172만 주)였다. 이를 1월 31일 당시 주가 2만 9000원으로 환산하면 총 평가액은 3400억 원이 된다. 그런데 지주회사제 선언 이후인 5월 23일 현재 한진중공업 자사주 지분(19.59%, 1270만 주)의 총 평가액은 5월 23일 종가 5만 3900원 기준으로 환산할 때 6800억 원이 된다. 1월 말 당시 지분 평가액보다 3400억 원 늘어난 것이다. 지난 4개월간 한진중공업이 자사주 98만 주를 매집하는 데 375억 원을 투자하는 동안 투자액의 9배 이상인 3400억 원의 평가이익을 거둬들인 셈이다.
이러한 예는 조남호 한진중공업그룹 회장의 지분율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조 회장은 한진중공업 지주회사 전환 선언보다 한 달가량 전인 4월 5일~4월 6일 사이 9만 1180주를, 지주회사 발표 직후인 5월 17일 1만 3450주를 매입했다. 조 회장의 이번 지분 매집에 들어간 금액은 총 39억 원이다. 이로써 조 회장의 한진중공업 지분율은 종전의 15.37%(996만 7853주)에서 15.53%(1007만 2483주)로 늘어났다. 조 회장 지분 총 평가액은 종전의 3480억 원에서 1950억 원이 늘어나 5월 23일 현재 5430억이 됐다. 불과 두 달 사이에 1950억 원의 평가차익을 실현한 셈이다. 조 회장 부인과 장남 장녀도 지주회사 전환 발표 다음 날인 지난 5월 16일 1억 1200만 원을 들여 2300주를 매입했다.
한진중공업이 지난 1월 말 자사주 매집을 시작할 때 공시한 명분은 ‘주가 안정’이었다. 지난해 11월 말 3만 2600원까지 올랐던 주가가 12월부터 하락하기 시작해 1월 22일 2만 7200원까지 떨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1월 말 한진중공업의 자사주 매집 시작을 계기로 주가가 상승세를 타기 시작해 결국 회사와 조 회장이 수천억 원의 평가이익을 챙기게 됐다.
이는 조 회장 일가가 누릴 이익의 곁가지에 불과하다. 조 회장의 한진중공업 지분은 15.53%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20%에 가까운 자사주와 전문경영인 등의 지분을 합친 특수관계인 지분 36.49%에 불과하다. 일단 유사시 외부의 경영권 공격을 받을 경우 자사주를 우호세력에 넘기지 않는 한 방어할 방법이 없다. 우호세력에 블록 세일을 할 수도 있으나 공짜는 없는 법이다. 하지만 주력사를 지주회사와 자회사로 나눌 경우 남에게 아쉬운 소리를 할 필요도, 추가로 돈들일 일도 없다는 ‘답’이 나온다.
한진중공업의 비율은 사업자회사와 지주회사의 분할비율이 73 대 27이다. 간단히 말하면 한진중공업 지분 100주를 갖고 있던 사람은 한진중공업 지분 73주와 (가칭)한진중공업홀딩스 지분 23주를 받을 수 있게 된다.
경영권을 가져야 하는 조 회장의 경우 73주를 팔고 한진중공업홀딩스 지분을 더 사들이면 된다. 즉 조 회장은 추가 부담없이 한진중공업 그룹의 지배력을 현 15.53%의 두 배인 30%까지 끌어올릴 수 있는 것. 만약 사업자회사인 한진중공업이 분할 뒤 주가가 ‘훨훨 날아다니면’ 그 이상의 지분도 바라볼 수 있다. 회사 분할 하나로 꿩 먹고 알 먹는 셈.
때문에 지주회사 분할 시기에 대한 의혹이 일고 있다.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에서는 조 회장이 “지주회사 전환 공시 한 달 전인 4월 초 한진중공업 주식 9만 여 주를 장내에서 사들여놓고도 이 사실을 지주회사 전환 발표 직전에 공시한 것은 미공개정보 이용금지 위반에 해당할 수 있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금융당국에서 어떤 행보를 취할지 궁금해진다.
천우진 기자 wjch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