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1년 8월 31일 광교신도시에서 거행된 CJ제일제당의 통합연구소 기공식. 이 연구소는 2014년 말 완공돼 2015년 이후 연구원 수가 1200명 이상으로 늘어날 예정이다. |
CJ제일제당은 애초 인천 송도의 경제자유구역에 통합연구소를 설립할 계획이었다. 각종 세제 혜택을 받을 수 있고, 자동차로 15분 거리에 인천국제공항이 위치한다는 점 외에도 이곳에 대규모 바이오산업단지(바이오메디파크)가 조성되면서 관련 업체들 간 시너지 효과도 기대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실제 송도 국제도시는 셀트리온, 삼성, 동아제약 등이 잇따라 자리를 잡으며 국내 바이오산업의 메카로 발돋움하고 있다.
인천경제자유구역청과 경기도청에 따르면 CJ제일제당은 지난 2010년 4월 6일 인천경제자유구역청과 통합연구소 건립을 위해 송도의 2만 2546㎡ 부지에 대해 토지 매매 계약을 체결했다. CJ제일제당은 계약금으로 10억 8000만 원을 경제자유구역청에 납부했다. 1㎡당 150만 원의 조성원가를 적용 받아 총 토지매매 대금은 108억 원이었다. 이 금액의 10%인 계약금이 계약 당일 경제자유구역청으로 들어갔다. 이후 3개월 뒤에 중도금을, 6개월 뒤에 잔금까지 모두 납부한 CJ제일제당은 2010년 11월 4일 경제자유구역청으로부터 해당 토지에 대한 소유권을 완전히 이양받았다. 이제 그 땅 위에 통합연구소를 짓는 일만 남은 듯 보였다.
그런데 이후 진척을 보이지 못했다. CJ제일제당은 송도 바이오메디파크 ‘입주 예정’ 기업으로만 계속 이름을 올렸을 뿐이다. 그러던 CJ제일제당이 이듬해인 2011년 6월 경기도시공사와 다시 계약을 맺어 경기 수원의 광교신도시에 통합연구소를 짓기로 최종 결정하고, 그 해 8월 31일 광교 첨단산업연구단지 내 3만 7530㎡ 부지에 15층 규모의 ‘CJ제일제당 ONLYONE R&D센터’ 기공식을 했다. 그리고 올 초에는 인천경제자유구역청에 계약 해지를 공식 통보했다.
▲ 이재현 CJ 회장. 제공=CJ그룹 |
CJ제일제당은 나머지 97억 2000만 원은 돌려받을 수 있지만 언제 받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경제자유구역청 관계자는 “사후 매수자가 나타나서 새로운 계약이 체결돼야 CJ제일제당과의 계약이 해지되고 그 이후 계약금을 제외한 나머지 90% 대금을 돌려주게 돼 있다”며 “하지만 여러 가지 여건상 사후 매수자를 구할 때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제약·바이오업계에서는 적어도 2~3년은 걸릴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삼성, 동아제약 등 대기업의 잇단 바이오사업 진출로 이 시장이 한때 열기를 띠었지만 지금은 일단 지켜보자는 분위기에 열기가 한풀 꺾인 상황”이라며 “경제자유구역청도 투자 심사를 강화하고 있어 단기간에 새로운 입주자가 들어가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앞서 언급했지만 CJ제일제당은 이미 지난 2010년 10월 모든 토지대금을 경제자유구역청에 완납한 상태다. 즉 CJ제일제당으로서는 2년간 이자로만 수억 원을 더 잃은 셈이다. 사후 매수자가 들어올 때까지 계속 추가 손실이 발생한다.
그렇다면 인천경제자유구역청과의 계약 후 경기도시공사와 새로운 계약을 맺기까지 7개월 동안 CJ제일제당에는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 경제자유구역청 관계자는 “CJ 연구원들의 생활권이 주로 서울이었는데 인천으로 연구소를 옮긴다고 하니 반발이 심해서 계약을 해지하게 됐다는 게 CJ 측 입장이었다”며 “회사에서 연구원들의 파워가 세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설명했다.
CJ제일제당은 현재 식품(서울 구로), 생물자원(인천 신흥동), 바이오(서울 가양동), 제약(경기 이천), 총 4개의 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 다른 연구소에서는 200명 안팎의 연구원들이 일하고 있는 반면 인천의 생물자원 연구소에서는 약 30명 정도의 연구원들이 근무 중이다. 지리적 상황만 놓고 봤을 때 딱히 반대할 이유가 없을 것으로 추정되는 인원은 생물자원연구소에서 일하는 30명 정도다. 반면 송도 대신 광교로 근무지를 옮기게 될 경우 서울 두 곳의 연구원들은 큰 메리트가 없을 수 있지만, 이천에서 근무하던 제약연구소 연구원들의 경우 생활권 변경의 부담감이 적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연구원들은 직접 임상에 참여하기 때문에 그 사람들이 만약 이직을 하게 될 경우 그 때까지의 임상 과정도 모두 경쟁사에 함께 넘어갈 수 있다”며 “또 요즘 연구원 수요는 많은데 공급이 제한돼 있어 연구원들의 퇴직시 대체 인력을 구하는 것도 어렵다”고 말했다. 이 정도면 연구원들은 회사의 결정에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을 만큼의 힘이 있는 것으로 추정되며, 회사로서는 연구원들의 눈치를 봐야 하는 상황임을 짐작해 볼 수 있다.
CJ제일제당 관계자는 이에 대해 “누구나 기존 근무지에 최적화돼 있기 때문에 어느 곳이나 근무지 이전에 대해선 반발이 있다”며 연구원들의 반발이 있었음을 간접 시인했다. 하지만 이 관계자는 “송도에서 광교로 연구소 부지를 변경한 것은 처음에 필요 공간 예측을 잘못했기 때문”이라며 “광교가 송도보다 면적이나 층고 제한 등에서 유리했기 때문에 부지를 바꿨다”는 입장을 내놨다. CJ제일제당 측의 주장대로라면 잘못된 부지 선정으로 공사 지연이라는 무형의 손실뿐 아니라 수십억 원까지 손해를 본 셈이다.
이연호 기자 dew901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