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승연 회장 | ||
다른 재벌그룹에 비해 김 회장 1인 독주체제 성향이 강했던 한화그룹이지만 총수의 경영공백 상태에서 주요 계열사의 실적은 호조를 보였고 주가는 상승곡선을 그렸다. 김 회장이 자리를 비운 사이 일단 외형상으로는 잘 해나가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정작 안에서는 파열음이 들려오고 있다는 지적이다. 김 회장 사태를 둘러싼 책임공방과 비방전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총수의 구속시기에 집안사람끼리 서로 얼굴을 맞대고 싸우는 볼썽사나운 장면이 연출되는 것이야 아니겠지만 특정 인사들에게 김 회장 사태에 대한 책임을 물으려는 목소리가 들려온다는 전언이다. 이렇다 보니 김 회장 경영복귀 시기에 맞춰 칼바람이 불 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마저 나돌고 있다.
김승연 회장 부재 상태에서 그룹 내 책임론이 불거지는 것은 이미 업계 인사들 사이에서 예상된 일이었다. 한화에선 삼성의 이학수 부회장처럼 총수를 대신해 그룹 전반을 통제할 만한 임원을 찾아보기 어려운 까닭에서다. 폭행 사건 공개 직전인 지난 3월 말 김 회장은 한화종합화학 한화갤러리아 한화건설 한화테크엠 드림파마 등 5개 계열사의 대표이사직에 새로 올랐다. 당시 한화 측은 ‘5개 사의 해외진출 움직임에 발맞춰 국제인맥이 넓은 김 회장이 전면에 나선 것’이라 밝혔던 바 있다. 이는 그룹 내에서 김 회장의 글로벌 경영 리더 역할을 대신할 인사가 없다는 방증이기도 했다.
선장이 배를 비운 형국이다 보니 내부에서 책임공방이 잦아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특히 한화 법무라인에 영향력을 행사해온 고위인사 A 씨에 대한 비난여론이 봇물처럼 터지는 것으로 알려진다. A 씨는 수사당국 고위간부 출신으로 김 회장 폭행 사건 초기부터 그룹 차원의 법적 대응 과정에 관여해왔다. 그런데 김 회장이 구속수감 되고 검찰이 실형을 구형할 가능성이 거론되면서 ‘A 씨의 전략이 잘못 먹혀 일이 이렇게 됐다’는 이야기가 한화 주변에 퍼지게 됐다. 경찰 수사 초기 김 회장과 한화 측에 대해 ‘경찰에 무성의하게 대한다’ ‘진술과정에서 비협조적이다’는 식의 이야기가 경찰 주변에 퍼졌던 바 있다. 한화 안팎에서 A 씨를 비난하는 인사들은 한결같이 ‘A 씨가 경찰을 다소 무시하는 전략을 짰다가 결국 화를 불렀다’고 입을 모은다.
김 회장 폭행 사건 직후 유시왕 한화증권 고문이 고교 동창인 이택순 경찰청장과 연락을 주고받은 사실이 드러난 점도 한화 안팎을 시끄럽게 만들고 있다. 유 고문과 이 청장이 보복폭행 사건 이후 골프회동을 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골프장 3곳을 검찰이 압수수색하면서 이 청장의 입지가 약화됐고 퇴진 논란에 휩싸이게 됐다. 이 불똥은 유 고문에게도 튀고 있다. 이 청장과의 접촉 배경엔 김 회장의 안위를 살피려는 목적이 있었겠지만 결과적으로 한화에 대한 비난여론만 부추긴 셈이 됐다며 유 고문을 성토하는 목소리가 한화 안팎에서 들려오는 것이다.
한화 고문인 최기문 전 경찰청장도 가시방석에 앉은 기분일 것으로 보인다. 수사과정에서 불거진 논란에 대한 책임을 지고 물러난 장희곤 전 남대문경찰서장과 폭행 사건 직후 수차례 연락을 주고받은 사실이 드러난 까닭에서다. 남대문경찰서와 서울지방경찰청 고위 인사들이 최 전 청장과 막역한 사이인 것으로 알려져 이번 사건을 둘러싼 최 전 청장의 경찰인맥 동원 논란도 끊이지 않고 있다. 유 고문의 예와 마찬가지로 목적이야 김 회장을 위한 것이었을지언정 한화에 대한 여론을 악화시키는 결과를 불렀다는 비난론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됐다.
김 회장의 각별한 예우와 신임을 받아온 이들 인사들에 대한 비토론이 불거지는 것을 일종의 충성경쟁이라 보는 시각도 있다. 김 회장의 조기 경영 복귀 가능성이 점쳐지는 까닭에서다. 김 회장 측이 재판부에 보석 청구서를 제출한 지난 6월 12일, 보복폭행을 당한 피해자 6명이 재판부에 김 회장 선처를 호소하는 탄원서를 제출했다. ‘이미 합의가 됐고 용서도 했으니 선처를 바란다’는 내용이었다고 한다. 이에 앞서 피해자들은 김 회장 측이 법원에 공탁한 9000만 원을 모두 찾아갔다고 한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공탁금 외에 다른 물밑 합의 가능성을 거론하기도 한다.
김 회장 사건 재판과정은 다른 재벌 관련 재판들에 비해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는 전언이다. 골치 아픈 경영권 승계나 비자금 문제와는 달리 가해자와 피해자가 확실한 폭행 사건인 점에서 지체될 것 없이 검찰의 1심 구형과 재판부의 1심 선고가 조만간 이뤄질 전망이다. 법조계 인사들은 ‘폭행 사건의 경우 피해자들의 선처 호소가 재판부 판결에 미치는 영향이 적지 않다’며 검찰이 실형을 구형하더라도 재판부가 실형을 선고할 가능성엔 반신반의하고 있다. 만약 김 회장이 1심 선고공판에서 실형에 못 미치는 선고를 받게 될 경우 검찰의 항소가 곧바로 이어지겠지만 경영 복귀엔 걸림돌이 될 수 없다.
만약 김 회장의 경영복귀가 조기에 이뤄진다면 불 같은 성정으로 유명한 김 회장이 책임을 물어 사정의 칼날을 휘두를 가능성에 주목할 수밖에 없다. 상황이 이렇게 전개되다보니 그룹 내에서 김 회장에 대한 충성경쟁 차원에서 상호 비방 경쟁이 벌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노릇이란 지적이 뒤를 따른다.
천우진 기자 wjch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