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현은 수술 후유증으로 익상견 증상이 나타나 오른손으로 패스하는 데 불편함을 느끼고 있다. 사진은 김승현이 드리블 돌파를 시도하고 있는 모습. 사진제공=KBL
프로농구에서 우승 횟수가 가장 많은 구단은 전주 KCC로 통산 다섯 차례 정상 등극의 위업을 달성했다. 하지만 꾸준함에 있어서는 삼성을 따라올 구단이 없다. 삼성은 2002-2003시즌부터 2010-2011시즌까지 9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의 역사를 썼다. 부자는 망해도 3년을 간다고 했다.
하지만 삼성의 몰락에는 낙하산이 없었다. 삼성은 2011-2012시즌을 끝으로 포스트시즌 연속 진출 행진을 마감했다. 13승41패, 승률 24.1%로 창단 이래 처음으로 최하위의 수모를 겪었다. 안준호 감독이 떠나고 중앙대 52연승 신화의 주역 김상준 감독을 야심차게 영입했지만 결과는 대실패였다.
이런 일화가 있다. 삼성이 구단 역대 최다기록인 14연패 늪에 빠져있었던 지난 2011년 말, 삼성 스포츠단에 소속된 구단 감독들이 모여 송년회를 치렀다. 삼성 야구를 정상에 올려놓은 류중일 감독, 명문 배구단 삼성화재의 신치용 감독의 틈에서 김상준 감독은 진땀을 뺐다. 그러나 분위기는 따뜻했다. 감독들은 건배 제의를 할 때마다 김상준 감독에게 격려의 메시지를 건넸다. 김상준 감독은 당시를 떠올리며 “고마웠지만 조금은 약이 올랐다”라고 말했다. 묘하게도 송년회 이후 삼성은 연패를 끊고 연승 가도를 달렸다. 하지만 잠깐이었다.
오로지 최고를 추구하는 삼성 스포츠단에서 꼴찌라는 성적표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김상준 감독은 부임 1년 만에 자리에서 물러났다. 대신 2000-2001시즌 삼성을 정상으로 이끌었던 김동광 한국농구연맹(KBL) 경기 이사를 새 감독으로 선임했다. 화끈한 투자가 뒷받침됐다. 비운의 천재 가드 김승현을 데려왔고 이동준, 황진원 등을 영입해 전력을 강화했다.
삼성은 2012-2013시즌 첫 20경기에서 11승을 올리며 나름 순항하는 듯 보였다. 하지만 이후 17경기에서 2승을 수확하는 데 그쳤다. 주축 선수들의 부상과 부진이 겹치면서 내리막길을 걸었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포스트시즌 진출을 장담할 수 없는 처지가 됐다.
삼성의 이성훈 단장은 실업 삼성 농구단 출신으로 사무국장을 거쳐 단장의 자리까지 오른 구단 역사의 산 증인이다. 1998년부터 사무국장을 맡았고 2011년 4월 단장에 올랐다. 그런데 요즘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이 단장은 지난 1월 23일 서울 잠실학생체육관에서 열린 서울 SK와의 잠실 라이벌전에 삭발을 한 채 모습을 드러냈다. 부진에 대한 책임감을 크게 느꼈다. 비슷한 시기에 스포츠단 윗선의 압박도 있었다는 후문이다.
삼성은 지난 3일 안양과의 홈경기에 패해 8연패의 수렁에 빠졌다. 경기종료 후 선수들이 허탈한 표정을 지으며 코트를 빠져 나가고 있다. 사진제공=KBL
1999년 프로 데뷔 후 줄곧 삼성에서 뛰었던 강혁을 헐값에 인천 전자랜드로 떠나보냈다. 아이러니하게도 프로농구단 역사의 산 증인을 파는 순간 삼성은 옛 영광을 뒤로한 채 꼴찌로 곤두박질쳤다.
삼성은 지난 시즌 도중 ‘매직핸드’로 불리는 천재 가드 김승현을 영입했다. 맥을 짚은 수준을 넘어 자기 능력만으로 경기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능력자다. 올 시즌을 위한 장기 프로젝트였다. 그러나 불운이 찾아왔다. 김승현은 시즌 개막을 코 앞에 두고 목 디스크 진단을 받아 수술대에 올랐다. 석달 동안 코트를 밟지 못했다. 설상가상으로 수술 후유증의 일종인 익상견(winging scapula) 증상이 나타났다. 오른쪽 어깨 날개뼈가 튀어나온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자연 치유될 수 있는 증상이지만 당장 오른손으로 패스하기에 불편함을 느끼고 있다.
지난 비시즌에는 팀 분위기가 다소 뒤숭숭했다. 한 선수는 구단과의 연봉 협상에 불만을 품고 잠시 팀을 이탈하기도 했다. 이적생(이동준 4억 원, 황진원 2억 5000만 원)에게는 비교적 후한 대우를 해줬지만 기존 선수들은 연봉 협상에서 고개를 들지 못했다.
카리스마 넘치는 지도 스타일을 가진 김동광 감독과 비교적 부드럽고 선수들과 융화를 잘 이루는 김상식, 이상민 코치의 조화는 많은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성적표는 감독과 코칭스태프의 명성에 비해 턱없이 모자란다. 꼬여버린 선수 구성과 끊임없이 반복된 가드들의 부상, 게다가 외국인선수 농사의 실패 등 악재가 끊임없이 반복된 올 시즌이다.
박세운 CBS 체육부 기자
명가의 부활 히든카드는? 대어급 신인 잡기에 ‘명운’ 경희대 김민구(오른쪽). 삼성이 올해 포스트시즌에 진출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그렇다면 국가대표 센터 김종규, 제2의 김선형으로 평가받는 김민구(이상 경희대)가 등장하는 올해 드래프트가 명가 부활의 시작점이 될 수도 있다. 삼성은 9년 동안 포스트시즌에 진출했다. 이 기간에 A급 신인을 영입할 기회가 많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언젠가 고비가 찾아온다. 어느 프로스포츠 구단이나 마찬가지다. 삼성에게는 그게 요즘이다. 과거 동부도 비슷한 일을 경험했다. 한 번의 포스트시즌 탈락, 그 해 드래프트에서 윤호영을 얻고 다시 부활했다. 삼성에게 찾아올 수 있는 최상의 시나리오도 이와 비슷하다. 박세운 CBS 체육부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