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일합섬 인수를 지휘한 추연우 부사장이 배임 혐의 등으로 구속되면서 동양그룹과 검찰 간에 묘한 기류가 형성되고 있다. 사진은 검사 출신 현재현 회장. | ||
부산지검이 동양메이저의 한일합섬 M&A에 대해 수사를 시작한 것은 지난 6월경이다. 동양메이저 추연우 부사장이 한일합섬 임원에게 거액의 돈을 제공했다는 첩보를 입수했기 때문이다. 추 부사장은 투자사업본부장 재직 당시(2001~2005년) 그룹의 구조조정을 총괄하는 등 현재현 동양그룹 회장의 각별한 신임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인물. 한일합섬 인수를 사실상 진두지휘하기도 했다.
수사 결과 검찰은 추 부사장이 한일합섬 건설부문을 맡고 있던 이 아무개 부사장에게 ‘동양메이저를 인수기업으로 추천해 달라’며 수차례에 걸쳐 총 19억 원을 줬던 것을 밝혀냈다. 동양메이저가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될 수 있었던 것도 추 부사장으로부터 돈을 받은 이 부사장의 로비가 힘을 발휘했기 때문이라는 게 검찰의 판단이다.
하지만 동양메이저는 추 부사장이 이 부사장에게 준 돈이 ‘적정한 수준의 경영자문료’라고 주장했다. 이 부사장이 동양메이저 측에 한일합섬 인수를 권유해 인수의 계기가 됐고 인수 후에도 타사와 마찰을 빚고 있던 시공권 문제 등을 해결하는 데 역할이 커 지급했다는 것. 동양메이저의 한 관계자는 “한일합섬 매각은 법원에서 주관했기 때문에 이 전 부사장은 매각에 개입할 권한이 없었다. 따라서 돈을 줄 이유가 없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만약 뇌물이었다면 어떻게 자문료 계약서까지 작성하고 돈을 이 부사장 통장에 넣었겠느냐”라고 반문하기도 했다.
여기서 주목할 만한 것은 이 부사장이 먼저 한일합섬 인수를 권유했다는 부분이다. 검찰에 따르면 추 부사장이 이 부사장에게 돈을 준 것은 법원에 인수기업으로 추천을 해달라는 명목이었는데 만약 이 부사장이 먼저 인수를 요청했다면 동양메이저가 굳이 이러한 이유로 돈을 줄 필요가 없었다는 것으로도 풀이할 수 있다.
현재 검찰은 이 부분에 대한 확인 작업과 함께 반박자료를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법조계의 한 관계자는 “동양메이저 주장이 사실이라면 뇌물로 보기 어려울 것 같다. 따라서 검찰은 M&A 과정에서 이 부사장이 추 부사장에게 건넨 것으로 알려진 자료들과 정보들에 대한 대가성을 입증하는 데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라고 밝혔다.
추 부사장 구속을 둘러싼 두 번째 논란은 동양메이저가 한일합섬을 인수하는 데 들어간 자금의 조달방식이다. 검찰은 동양메이저가 M&A 대상 기업의 자산을 담보로 자금을 차입해 기업을 인수한 후 다시 그 기업의 자산으로 상환하는 ‘LBO(Leveraged Buy Out) 방식’으로 한일합섬을 인수했다고 밝혔다. 이러한 LBO 방식은 미국과 일본 등지에서는 빈번하게 사용되는 M&A 기법이지만 아직 국내에서는 불법으로 여겨지고 있다. 대법원도 ‘LBO 방식에 의한 M&A는 배임’이라는 판례를 남긴 바 있다. 증권거래소의 한 관계자는 “IMF 당시부터 투기 자본을 막는다는 취지에서 LBO를 통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반면 동양메이저는 “한일합섬 인수는 LBO 방식이 전혀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한일합섬 자산을 담보로 자금을 빌린 것이 아니고 인수 주체인 동양메이저산업의 주식을 담보로 자금을 조달했다는 것. 동양메이저산업은 동양메이저가 지난해 2월 1일 설립한 회사로 동양메이저가 지분 100%를 가지고 있다.
또한 대출금 4600억 원 가운데 2700억 원을 한일합섬 자산으로 상환했다는 검찰의 수사 결과에 대해서도 동양메이저는 “그 자산은 한일합섬 자산이 아닌 동양메이저의 자산”이라는 논리를 펴고 있다. 대출금을 상환한 것이 지난 5월 14일인데 이미 4월에 한일합섬은 해산되고 동양메이저에 흡수합병됐기 때문에 한일합섬의 자산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검찰은 동양메이저의 이러한 주장에 대해 “동양메이저가 인수 후에 한일합섬 부동산을 집중적으로 판 것에 대해 수사를 더 진행 중이다. 곧 결과를 발표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영진M&A연구소의 김영진 소장은 “한일합섬 인수는 LBO로 보는 것이 맞다. 하지만 LBO를 부정적인 것만으로 평가해서는 안 된다. 주주들에게 피해를 끼쳤는지 여부가 핵심이다. 기존 대법원 판례도 이 부분을 고려해 배임으로 본 것”이라고 평가했다. 김 소장은 이어 “국내 대부분의 M&A에서 사실상 LBO는 직·간접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데 이것을 일률적으로 평가해서는 곤란하다. 순수한 자기 자본만으로 M&A를 하는 것은 힘들다”라고 보탰다.
검찰과 동양의 싸움은 결국 법정에서 판가름 날 것으로 보인다. 흥미로운 점은 이번에 동양을 향해 창을 겨누고 있는 부산지검은 검사 출신인 현 회장이 마지막으로 몸담았던 곳이라는 것이다. 과연 현 회장이 ‘친정’이라고 할 수 있는 검찰을 상대로 이 난국을 어떻게 돌파할지 재계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