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 한 달여가 된 대한바둑협회 실무책임자 김원 전무를 만나 소감과 포부를 들어봤다.
대바협의 수장이 바뀌면서 실무 책임자인 전무도 바뀌었다. 안성문 전무가 물러나고 김원 전무가 취임했다. 지난해 12월에 결정이 되고 1월 초부터 업무를 시작했다. 공식 임명장을 받은 것은 2월 6일. 취임 한 달여가 된 김원 전무를 3월 21일 바둑 카페, ‘바세바’의 아지트 ‘애틱’에서 만나 소감과 포부를 들어보았다. 1967년생 김원 전무는 프로기사 7단이다. 1970년대에 잠깐 있었다가 없어지고 1980년대 초반에 새로 시작된 한국기원 연구생 1기 출신으로 1986년 입단했다. 이창호 9단과 입단동기다. 바둑TV 진행자 김지명 씨는 친형이다. 어릴 때는 ‘천재 형제’로 불렸다.
-바쁘시겠네.
▲정신 없네요. 작년 12월부터 하루도 못 쉬었습니다. 하하.
-아마추어 바둑계 일을 한다는 대바협 전무에 프로기사가 임명된 것을 의아하게 생각하는 팬들도 있는데요.
▲글쎄요. 그런 시각도 있을 수 있겠지만, 일을 하는 건데 프로기사냐, 아니냐는 본질과는 거리가 있다고 봅니다. 일을 잘할 수 있느냐, 잘했느냐, 그게 첫째겠지요. 그리고 전무를 맡아 보라는 말을 듣고 고민도 많이 했습니다. 대바협 회장 선거 사흘 전에야 결심을 했습니다.
-아무튼 뜻밖이지요? 그동안 전혀 거명되지 않았던 걸로 알고 있는데요.
▲한국기원과 대바협이 합해진다는 얘기가 나온 지는 꽤 됐지요. 바둑계로선 좋은 일이니까 순조롭게 진행이 될 걸로들 생각했는데, 그게 순조롭지만은 않았습니다. 큰 문제는 아니지만, 조금 복잡한 이면도 있었습니다. 이런 얘기까지 해도 될는지 모르겠는데…. 아무튼 한국기원과 대바협 사이에서 중재랄까, 그런 게 필요해졌는데, 제가 약간의 역할을 했고, 그게 인정을 좀 받은 것 같습니다.
-한국기원 이사장이 대바협 회장을 겸하게 되었으니 결국 한국기원 쪽을 도와준 셈이고, 프로기사가 전무가 되고, 비판이랄까, 반대랄까, 그래서 말들이 좀 있는 것 같아요.
▲바둑계라는 게 넓은 의미의 바둑계가 있고, 좀 좁은 의미의 바둑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바둑계라고 말할 때는, 실제로는 좁은 의미의 바둑계를 일컫는 것일 겁니다. 간단히 말해서 바둑 관계 일을 하는 사람들, 그들이 바둑계라고 범위를 좁혀놓고 볼 때 그 숫자가 한 1500명 됩니다. 프로기사, 프로기사를 앞세워 죄송합니다. 아무래도 프로기사는 오로지 바둑 두어 생활하는 사람들이니까 양해해 주시기를…. 아마추어 강자, 바둑 도장, 바둑 교실, 바둑 강사, 바둑 언론과 인터넷…요즘 기원은 좀 그렇지요? 그분들이 사실상 바둑계인데, 생활이 걸린 만큼 이해관계가 따르고, 서로 좀 다르고 그렇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한국기원과 대바협의 중재도 그렇고, 제가 이 분들의 바둑계를 비교적 잘 알고 있다고 믿어 주신 것 같아요.
-앞으로 어떤 일을 하실 계획인지.
▲체전, 통합, 교육, 예산, 개혁, 사업, 내셔널리그 등입니다. 일단은 우선 순위대로 말씀 드린 건데, 그렇다고 이것 끝내고 저것 시작하고, 그러는 건 아니고 거의 동시진행인데, 시급한 순서를 제 나름으로 정해 본 것입니다.
-뜻밖의 인선이 아니라, 준비를 하고 계셨네요.
▲임명될 걸 알고 준비한 건 아닙니다. 제가 프로기사 생활 37년째입니다. 그동안 승부보다는 보급활동을 하면서 보고들으며 느끼고 생각한 것이 있겠지요. 아마 전국적인 바둑계 사정을 저보다 잘 아는 사람도 많지 않을 겁니다. 승부는 이창호 9단하고 같이 입단했는데, 이 국수 옆에 있으면 안되겠더라구요. 빛도 안 나고…. 전무 맡기 직전까지도 저는 한 달이면 20여 회 지방 바둑행사에 갑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전무 맡고 나서 수입도 반토막 났습니다.
-전국체전이 맨 처음이군요.
▲네. 제일 중차대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전시종목이거든요. 아니, 아직도 전시종목입니다. 10년째입니다. 빨리 정식종목이 돼야 합니다. 그 전에 시범종목이 돼야 하구요. 2014년 전국체전과 소년체전에 시범종목으로 들어가는 걸 목표로 합니다. 물론 간단치 않은 일입니다. 우선 자격증이 필요합니다. 코치, 심판 같은 것입니다. 그라고 체전에 걸맞은 룰을 정비해야 합니다. 또 전국적으로 초·중·고에 바둑 팀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방 연구생 육성이 필수적입니다. 체전은 메달 경쟁인데, 학교나 지자체에서 그냥 참가하는 데 의의가 있다면서 보통 선수, 약한 선수 내보내려고 하지는 않을 겁니다. 그렇다면 선수 수급이 시급한데, 지방 연구생이 가장 빠른 길일 겁니다.
-일자리 창출 효과도 있겠군요.
▲그렇습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많이 생길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통합이 전제조건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프로기사, 세미프로로 통하는 아마 강자, 바둑 강사나 사범들 등이 서로 조금씩 양보하면서 의견을 모아야 합니다.
-교육은 무엇인지?
▲코치, 심판 양성을 위한 것입니다. 지금까지도 잘해오고 있지만, 미흡한 부분도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교육위원회를 구성해 코치 심판 강사들의 교육을 정례화-체계화할 생각입니다.
김 전무는 실제로도 교육전문가에 속한다. 1994년에 분당, 구리에서 바둑교실을 열어 시쳇말로 대박을 터뜨렸다. 바둑교실 원조 가운데 하나다. 이후에는 바둑도장으로 영역을 넓혀 조혜연 9단을 비롯해 이민진 한해원 유경민 홍성지 김효정 김혜민 한상훈(무순) 등 20여 명의 프로기사를 길러냈다. 제자들의 단 합계가 100단을 돌파했다. 바둑교실 원조이면서 프로기사 꽃미남 원조답게 여자 제자가 많다. 대구 바둑의 대부 하찬석 9단이 2009년 작고한 후 대구에 내려가 활동하고 있다. “프로기사가 지방에 내려오면, 1년이면 자리를 잡는다. 서울에만 있지 말고 내려가야 한다”는 것이 김 전무의 지론이다.
김 전무는 예상 외로 많은 계획을 갖고 있었고 그걸 2시간 이상 열정적으로 답변하며 피력했다. 다문화사업, 노인복지, 세계화사업 등이었다. 2시간도 부족했는데 “내셔널리그 개막이 며칠 안 남아 지방을 돌아야 한다”면서 일어났다.
이광구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