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중수 총재가 금리 인하 타이밍을 놓쳐 외통수를 자초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연합뉴스
시장에서는 이미 지난 2월부터 이러한 상황을 예상하고 한은이 기준금리를 낮춰야 한다는 의견이 적지 않았다. 한은이 정권 출범 뒤인 3월 이후 기준금리를 낮출 경우 정권의 눈치를 보는 모양새가 되면서 한은 독립성에 대한 문제가 제기될 수 있는 만큼 이보다 앞선 2월, 늦어도 3월에는 기준금리를 낮추는 게 적합하다는 주장이었다. 한은 내부에서조차 기준금리 인하가 불가피하다면 정권 출범 이전인 2월쯤 이뤄지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이야기가 적지 않았다.
그런데 이러한 예상을 깨고 ‘동결 중수’라는 별명답게 김중수 총재가 이끄는 한은 금통위는 경기가 회복세를 보이는 상황이라며 2월과 3월 계속해서 기준금리를 동결했다. 당시 금통위원 중 하성근 위원만 기준금리 동결에 기명으로 반대하며 인하를 주장했다.
이러한 결정에 대해 한은 내외부의 비판이 제기되자 김중수 총재는 한국 경제 상황이 좋아지고 있다는 점과 저금리가 갖고 있는 문제점을 여러 차례 언급하며 기준금리 동결을 정당화했다. 김중수 총재는 3월 14일 기준금리 동결 결정을 발표하면서 “국내 경기는 회복세가 다소 주춤하는 모습이지만 지난해 4분기 이후 완만한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면서 “앞으로 국내경기는 완만한 개선 흐름을 이어가겠다”며 경기 회복에 무게를 뒀다.
김 총재는 또 3월 22일 한은에서 열린 금융협의회에서 “오랫동안 이자율이 낮은 상태가 지속되면서 버블이 생기거나 자금수요가 생산성으로 연결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며 “위기를 빨리 벗어나느냐 못지않게 구조적으로 형성되어 온 문제를 어떻게 처리하느냐 하는 것도 중앙은행의 책무”라고 설명했다. 기준금리를 낮춰 시중에 자금 투입을 늘릴 경우 가계부채와 같은 부작용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와 기준금리를 동결하는 것이 맞다는 이야기를 우회적으로 한 셈이다.
하지만 정부가 3월 25일 올해 경제정책방향을 발표하면서 김중수 총재의 이런 의견에 큰 상처를 입혔다. 정부는 이날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3.0%에서 2.3%로 낮췄다. 한은이 내놓았던 2.8%보다도 낮은 수치. 정부의 경제성장률 전망치에는 정책 의지가 담겨 있기 때문에 항상 한은보다 높았다는 점에서 시장에 준 충격은 상당했다. 정부는 성장률을 낮추었을 뿐 아니라 경기를 살리기 위해 ‘12조 원 플러스 알파’의 추가경정예산(추경)을 편성하겠다는 안까지 내놓았다.
정부가 나서서 대대적인 경기부양을 하겠다고 밝히자 김중수 총재는 가시방석에 앉은 꼴이 돼버렸다. 여기에 청와대와 여당까지 나서 김중수 총재에게 기준금리 인하를 압박하고 있다. 조원동 청와대 경제수석은 3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한은이 금리를 내려주면 더 좋다”며 사실상 기준금리 인하를 공개적으로 요청했다.
이에 앞서 이한구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1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의에서 “한은이 이제는 경제활성화를 위해 역할을 해야 할 때다. 한은은 기준금리 인하 등 경제 활성화를 위한 조치를 적극 검토해 달라”고 밝혔다.
당·정·청의 전방위 압박에는 박근혜 대통령이 가지고 있는 김중수 총재에 대한 불신이 깔려있다는 점에서 정치권 기류 자체도 심상치 않다. 여권 관계자들에 따르면 박근혜 대통령은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으로 일하던 당시 김중수 총재가 시장에 신뢰를 주지 못하고, 기준금리 결정 시기를 항상 실기한다는 비판의식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이를 반영하듯 정치권 일각에서 김중수 총재에 대한 교체론이 솔솔 나오고 있다.
한은 총재는 임기 4년이 보장(한국은행법 33조 2항)돼 있고, 21대 전철환 전 총재(1998년 3월 6일∼2002년 3월 31일) 이후 임기를 모두 채워왔기 때문에 실제 교체가 가능할지는 불분명하다. 심지어 노무현 정부에서 임명된 이성태 전 총재가 성장을 중시하는 이명박 정부와 갈등을 빚었음에도 4년 임기를 마쳤다는 점에서 박근혜 정부가 국내외의 비판을 무릅쓰고 김중수 총재를 교체하지는 못할 것이라는 의견이 다수다. 하지만 이러한 교체설 자체가 나온다는 것만으로도 김중수 총재의 체면은 구겨지게 됐다.
더 큰 문제는 김중수 총재의 체면은 오는 11일, 4월 기준금리를 어떻게 결정하든지 한은 독립성 논란, 정부 정책 공조 논란을 불러올 수밖에 없어 더욱 땅에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김중수 총재가 4월 금통위에서 정부의 경기 부양책에 보조를 맞춰 쓸 수 있는 카드는 크게 세 가지가 있다. 하나는 기준금리를 낮추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한은이 은행을 통해 중소기업 등에 공급하는 자금인 총액한도대출(현재 9조 원)을 증액하는 방법이다. 마지막 하나는 한은이 은행들에게 고객 예금 지급용으로 예금액 중 일정 비율을 보관토록 한 지급준비율(현재 7.0%)을 낮추는 방법이다.
하지만 기준금리의 경우 인하를 하면 그동안 밝혀왔던 지론과 백팔십도 다른 결정을 했다는 시장의 조소를 피할 수 없게 된다. 한은의 독립성을 저버렸다는 비판에도 직면하게 된다. 그렇다고 기준금리를 동결하자니 정부의 경기부양 노력에 한은이 찬물을 끼얹은 꼴이 된다. 경기가 살아나지 않을 경우 세상의 비난을 혼자 다 받아야하는 셈이다.
지급준비율을 건드릴 경우 금융시장에 몰아닥칠 후폭풍은 기준금리 인하보다 더욱 크다. 한은이 공급한 통화가 시중에서 몇 배로 부풀어 오르는 ‘통화승수 효과’를 고려하면 시장에 주는 파장이 너무 큰 것이다. 그나마 체면을 덜 구기고 정부의 경기 부양 흐름에 편승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총액한도대출을 늘리는 것이다. 한은 내부 분위기도 총액한도대출을 증액하는 쪽으로 흐르고 있다. 다만 정부의 압박이 워낙 심해서 기준금리 인하와 총액한도대출 증액이 한꺼번에 이뤄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이러니까 김중수 총재는 매번 ‘실기한다’, ‘시장과 소통하지 못 한다’는 비판을 받는다. 김 총재가 2월이나 3월에 기준금리를 낮췄으면 정부의 눈치를 보지 않고 소신껏 결정한 것이 됐을 텐데 이제는 낮춰도 욕먹고, 안 낮춰도 욕먹는 외통수에 걸려버렸다”면서 “기준금리와 관련해 너무 많은 이야기를 하면서 스스로 퇴로마저도 차단한 상황이 됐다”고 말했다.
이준겸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