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용만회장 | ||
두산그룹 측은 매각 이유를 “핵심 사업에 역량을 집중하고 지주사 전환 요건을 충족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재계에서는 그동안 유동성 위기설에 시달려왔던 두산이 ‘자금 확보를 위해 주류부문을 내놨을 것’이라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번 매각을 두산 총수 일가의 역학구도와 관련짓기도 해 관심을 끈다.
두산의 주류사업 부문 매각설은 그리 새로운 것이 아니다. 몇 해 전부터 매각설이 끊임없이 불거졌지만 그때마다 두산은 강력하게 부인해왔다. 하지만 진로에 밀려 번번이 쓴잔을 마셨던 두산이 주류업계에서 곧 물러날 것이란 말은 쉽게 수그러들지 않았다. 특히 지난 2006년 출시돼 점유율 15%를 기록하며 진로 ‘참이슬’의 아성에 도전장을 내밀었던 ‘처음처럼’이 올 들어 점유율이 다소 하락하자 매각설은 다시 고개를 들었다.
이번에도 두산은 ‘사실무근’이라고 일축했다. 지난 9월 한기선 주류부문 사장은 “주류사업이 두산그룹의 뿌리 격인 데다 이익을 내고 있는데 매각할 이유가 없다”며 진화에 나섰다. 총수 일가인 박용만 두산인프라코어 회장도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 주류 매각은 없다”며 지원 사격했다.
그러나 10월 중순 M&A업계에서는 ‘두산이 1조 1000억대 가격에 인수자를 찾고 있다’는 구체적인 소문이 돌았다. 게다가 두산이 11월에 테크팩사업 부문을 4000억 원가량에 팔자 주류사업의 매각설은 더 힘을 받았다. 테크팩의 핵심 중 하나가 바로 소주 용기를 만드는 것이었기 때문. 또한 몇몇 사모펀드가 주류부문 인수 의사를 나타낸 것으로 알려지면서 매각설은 기정사실화하는 분위기였다. 결국 두산은 지난 5일 공시를 통해 ‘주류사업 부문에 대한 매각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두산의 주류부문 매각은 일단 그룹의 사업영역을 재편하려는 의지가 담긴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동안 두산은 한국코닥 오비맥주 종가집김치 등 소비재부문을 정리해왔다. 반면 중공업 및 중장비 기계부문을 집중 육성했다. 지난해 세계 1위 소형 중장비 건설업체인 밥캣과 올해 국내 최대 굴착기 핵심부품 업체 동명모트롤을 인수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듯하다. 두산 관계자는 “미래의 성장성 및 수익성을 감안해 향후 핵심사업 위주로 구조를 정리해 나갈 것”이라고 귀띔했다.
이처럼 두산은 ‘사업 재편’과 ‘지주사 전환’을 주류부문 매각 이유로 밝히고 있지만 재계에서는 이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분위기다. 총수 일가까지 나설 정도로 강한 애착을 보였던 사업을 포기한 데에는 뭔가 다른 배경이 있을 것이라고 관측하고 있는 것. 비록 소비재부문 비중을 줄인다는 게 그룹 방침이었지만 ‘주류사업만큼은 유지한다’고 여러 차례 천명했을 뿐 아니라 지주사 전환 역시 굳이 사업 매각이 아니더라도 차입금을 줄이는 등 다른 방법으로 총자산을 줄여 요건을 충족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이번 매각이 유동성 위기를 해소하기 위한 것이라는 견해가 설득력을 얻고 있다. 올해 두산은 지난해 인수했던 밥캣의 실적이 저조한 탓에 자금 압박에 시달렸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로 인해 단기차입금이 지난해보다 두 배 이상 많은 2조 원대, 부채는 7조 원으로 늘어났다. 지난 10월 M&A업계에 퍼졌던 매각 이유도 ‘자금난이 그만큼 심각하다’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두산 관계자는 “과장된 측면이 있다”고 해명했다.
그렇다고 얼어붙은 M&A 시장에 딱히 내놓을 매물도 없었다. 하지만 주류부문은 비교적 알짜배기로 평가받고 있다. 수도권에 구축해 놓은 유통 및 영업망도 인수 즉시 실전 활용이 가능하다. 여기에 몇몇 기업과 사모펀드로부터 입질도 있었다. 그래서 결국 매각 가능성이 가장 높은 주류부문을 마지못해 내놨다는 것이다. 현재 주류부문 매각금액으로 추산되고 있는 6000억~8000억 원가량의 실탄을 확보하면 두산의 자금 사정은 원활해질 전망이다.
한편 주류부문을 매각하는 과정에서 총수 일가 사이에 이견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특히 ‘형제의 난’ 이후 사실상 두산을 대표해왔던 박용만 인프라코어 회장이 매각을 강하게 반대했다는 전언이다. 하지만 박 회장은 미국의 건설경기가 급랭하기 시작한 때에 밥캣을 인수해 그룹의 위기를 초래했다는 책임론이 불거지면서 의지를 굽혔다고 한다.
반면 두산가 3세 장자인 박용곤 명예회장 장남 박정원 부회장은 주류부문 매각에 찬성한 것으로 알려져 묘한 대조를 이룬다. 이 때문인지 재계 일각에서는 삼촌과 조카가 그룹 경영권을 놓고 대결구도를 벌일 것이라는 다소 성급한 관측도 나오고 있다. 두산 관계자는 이에 대해 “처음 듣는 얘기”라고 일축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